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나누던 중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같은 순수한 호기심을 갖기도하고 무의미한 유머들로 낄낄거리는 일종의 거부반응을 보이다가 종국엔 주검이 된 동료의 시체를 뒤져 쓸만한 물건이나 음식을 가져가는 등 ‘무감각’에 이른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느낀 점을 얘기하던 한 멤버가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해지고 싶다는 심정을 나눠주었다.
상처가 나면 닿을 때마다 불편하고 아프다. 그냥 두면 자꾸 쓸리고 누가 건들지 않아도 욱신욱신할 정도로 번지기도 한다. 늦지않게 소독을 해주고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면 다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내면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차리고 치료하면 된다. 그런데 내면의 상처는 보이지 않기에, 방치되기도 하고 알아도 어떻게 조치해야할지, 어느 지점이 다친건지 몰라 덧나기도 한다.
서운함, 갑갑함, 불안함, 초조함, 좌절감이 찾아올때면 스스로 돌볼 수도, 꺼내봐도 알아봐주는 이가 없었다. 이런 감정들이 느껴질 때면 내가 못나 보였다.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마음을 채우고 있으니 터져버릴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는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나는 점점 무감각해졌다. 상처를 들여다보기를 포기한 것이다. 들키지 않게 괜찮은 척 하다보니 어느 순간 정말 괜찮은 줄 알게 되었다.
무감각은 나를 구해준 것 같았다. 왠만해서는 기분 상할 일도 없고 ‘욱’할 일도 없는 쿨한 사람이 된 듯 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상처받기 싫고 고통스러워 온몸을 꽁꽁 동여매고 살았다는 것을. 내 아이를 맨살로 안았을 때, 센서가 둔해진 엄마는 보드랍고 따뜻한 아이의 체온을 느끼지 못했다. ‘무감각’은 안전을 보장했지만, 아픔과 동시에 기쁨도 앗아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상처받는 것은 당신이 소심해서가 아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자꾸 쓸리고 있거나, 곪은 상처가 주변까지 아프게 하고 있진 않은가 살펴보자. 사랑하는 이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처럼 상처난 부위를 돌봐주자. 그 감정이 왜 찾아왔는지 말을 건네보자. 따뜻한 눈길과 친절한 말이면 충분하다. 잘 상처받는 당신에게는 달란트가 있다. 감정의 선이 생생하기에,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도 반응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 감정을 진하게 느끼고 고요히 바라보는 것이다. 상처의 아픔은 쓰리다. 그러나 부디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온몸을 붕대로 감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