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조건
삶에서는 참 많은 것들이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것도 별로 없다. 다들 잘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으며, 그로 인해서 다들 각자마다 힘듦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아예 혼자 사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매일, 매 순간 사람에게 끌린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어울리고 싶고,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힘듦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여전히 그런다.
사실 그건 우리가 바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외로워서 그렇다. 그나저나 우리는 왜 그렇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매우 건조한 답이지만,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은 타인과 어울려 살 때 정말로 많은 것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그 이득은 도대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은 다들 돈을 선호하긴 하지만, 사실상 돈도 관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돈이 많은 부자와 사람이 많은 부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많은 사람들이 돈만 많아도 혼자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그 행복이 몇 년이나 갈까?
세계여행, 진귀한 물건, 비싸지만 맛난 음식, 다양한 볼거리, 우주여행, 심해 여행까지, 그런 것들을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즐길 수 있을까? 그러다가 지난번 타이타닉 보러 갔던 부자들처럼 죽을 수도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그 모든 것들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장 낫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행복해지긴커녕 오히려 반대로 불행해지고 만다. 상처를 받거나 갈등으로 인해 많은 부정적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분명히 난 행복하고 싶었다. 누구와도 나쁜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남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선한 의도로 만났다. 그런데도 우린 왜 그런 결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그 과정엔 뭔가 복잡한 이유들이 있는 듯 보인다. 참 다양한 사연들이 있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많은 입장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이유가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알고 나면 어이없을 정도이다.
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갈등을 겪는 이유는 바로, 서로가 서로를 조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조종'이란 단어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조종은 인간관계를 맺는데 아주 기본적인 조건이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만날 장소라도 정해야 한다.
그 순간, 만날 장소를 어떻게 정할까? 사람들마다 다양한 의견 교환이 이뤄지겠지만, 결국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조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유리한 장소로 정해질 수도 있고, 서로 간에 합당한 장소로 정해질 수도 있으며, 나보다 상태가 안 좋은 상대를 위한 배려로 정해질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둘 모두 원하는 공통의 장소가 있어서 거기로 정해지기도 한다.
이 중에서 공통적으로 원하는 장소가 있을 경우엔 딱히 조종이 필요 없지만, 나머지 모두는 일종의 조종이 일어난 상황이다.
조종은 인간관계를 맺을 때 반드시 일어나는 과정이며, 이것이 자주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관계 속에서 불행을 경험한다. 쉽게 말해서 남이 하자는 대로만 하다가 보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심지어 남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들조차도 그 안엔 늘 불안함이 존재한다. 그저 스스로 잘 못 느낄 뿐이다.
조종당함에 대한 불쾌한 느낌이 내면에 머무르면 상처가 되고, 외적으로 드러나면 갈등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덜 실망하고, 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내 욕구를 파악하고, 상대의 욕구를 바라보고,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조종하려고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참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
지금부터 간단히 우리가 어떻게 타인을 조종하는지에 대한 방법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 * *
누구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방법 중 하나는'읍소'이다. 빌거나, 애원을 하거나, 무릎을 꿇는 등, 굴욕적으로 부탁을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상대를 반드시 조종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쓰는 행동이다. 실상 잘 통하지도 않지만, 어쩌다 통할 때조차 자존심이 무척 상하고 그것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아주 오래 남는다.
'협박'은 읍소와 비슷한 조건이지만 행위 자체가 매우 강제적이란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목숨을 위협하거나 혹은 비행기에 테러를 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면 이보다 확실히 통하는 방법도 없다. 협박은 강약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날 수 있는데, 총을 들고 대놓고 하는 방법도 있고 회사 같은 경우엔 진급이나 연봉을 가지고 은밀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사람을 조종을 하는 방법들 중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바로 '공감'이나 '연민'이다. 이 방법은 최종 결정을 상대방이 하긴 하지만, 일단 통하면 이후 일어나는 과정은 대단하다. 제대로 공감을 하거나 연민을 느낀 사람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상대방을 돕는다.
아주 큰 공감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늘 '배려'를 하려고 하기에 상대방의 처지를 알게 되면 어느 정도 알아서 움직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다들 가능하다며 자신의 처지를 상대방에게 털어놓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이 간혹 넘쳐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이어져 뒤통수라는 상처를 받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다. 평소에 적당한 선을 지켜서 나의 부정적 상황을 상대에게 얘기해 놓으면 언젠가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대방이 조종된다. 그것도 배려라는 과정을 통해 알아서 된다.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 그리고 공감 중에서는 공감을 가장 선호하는데, 동정이나 연민은 상대적으로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은밀하게 조종해서 도움은 받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대등한 관계일 때는 '협상'이나 '계약'을 할 수 있다. 확실하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꼭 사업적인 관계가 아니라도 친구가 만나서 영화는 네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밥은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먹는다, 뭐 그런 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사업상의 관계라고 해도 한쪽은 딱히 아쉬운 것이 없을 때는 '설득'이란 방법이 이용된다.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여 줄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움직이도록 해야 할 때 쓴다. 설득과 협박은 사실상 종이 한 장 차이인데,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빠지면 협박이고, 기분이 딱히 변하지 않으면 설득이 된다. 이때 얼마나 합리적인 근거를 대느냐와 명분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부족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들리거나 혹은 기분 나쁜 협박으로 들린다.
설득이 잘 통하지 않을 때는 '부탁'이란 방법도 있다. 단지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빚을 지는 것이기에 결국 갚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 여유가 있을 때 최대한 상대방에게 잘해 둔다. 간단한 일들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돕기도 한다. 그럴 경우 나중에 부탁을 할 때 조금 덜 빚을 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것에 대한 정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간 자신이 해줬던 것들에 대한 본전생각이 나면서 큰 배신감을 느끼고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넘어서 '회유' 하거나 아예 '세뇌'시키는 방법도 있다. 설득이 일시적이라면 회유나 세뇌는 훨씬 그 효과가 오래가며 더해서 당한 사람은 자신이 상대의 뜻대로 조종되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한번 잘못 빠지게 되면 당한 사람이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감정을 이용하는 방법들도 자주 쓰인다.
나이나 성별에 따라 '귀엽게 굴거나', '서럽게 우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주로 상대적으로 약자가 쓰는 방법인데, 사실 우리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이 방법을 썼다. 귀여운 것은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라 쉽지 않지만, 우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했었다.
크게 '화'를 내는 방법도 있다. 우린 누군가 크게 화를 내면 가능하다면 그 사람에게 맞춰주려고 한다. 그래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득을 얻는 경우도 제법 된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거의 공감과 비슷한 수준으로 좋은데, 원래 사람은 기분이 좋으면 인심이 후해지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은 딱히 해줄 필요가 없는 일이라도 단지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도 해준다. 이것이 바로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 원리이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방법 중 가장 흔하게 잘 통하는 것이 바로 좋은 외모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 외모에 집착하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예쁘고 잘 생기면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움직여준다. 연예인들이 누리는 삶이며, 외모적으로 큰 매력을 지닌 사람들이 쉽게 행복하게 사는 이유이다.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능력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뛰어난 노래 실력, 운동 능력, 지적 능력, 유머 능력 등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남달리 뛰어난 사람들에겐 '팬'이 만들어지고, 팬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득이 되는 쪽으로 스스로 조종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매우 자주 쓰이지만 조종하는 사람도 조종당하는 사람도 잘 못 느끼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대방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내가 예전에 너에게 잘해줬던 것을 말하면서 부탁하거나, 친구들은 다 가졌다는 말로 뭔가를 사달라고 하거나, 친구라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말로 상대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아주 쉽게 죄책감을 느끼며 심지어 자신이 딱히 느낄 필요가 없는 순간조차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방법은 아주 자주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이 방법은 조종당하는 사람에게 아주 큰 문제를 만들기도 하는데, 조종되지 말아야 할 순간들도 조종되어서 결국 그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특히 유심히 살펴야 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조종이 되는데, 그것이 정말로 내가 당할만한 조종인지를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 특히 죄책감을 유발한 경우가 그렇다.
"불안감"을 자극시키는 것도 흔하게 쓰이고, 죄책감만큼 잘 통한다. '다들 했다는데?', '너도 해야 하지 않아?', '너 이번에 못하면 영영 못한다', '이 정도 못하고 살면 어떻게 하니', 이런 말들이 불안감을 자극시킨다. 하지만 이 경우엔 조종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불안함을 상대에게 전염시키는 역할이 더 크다. 아무튼 어떤 의도든, 조종이 되는 것은 동일한 효과를 낸다.
평소에 '자기희생'을 해두는 방법도 있다. 누가 봐도 손해를 보는 짓을 자주 해두면 아주 가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조종되는 경우도 제법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이득은 되지 않는 방법이지만, 또한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일도 흔히 일어나지만, 딱히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없을 경우 써 볼만한 방법이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읍소나 협박을 빼고는 괜찮은 편이다. 실제로 진짜 갈등이나 배신감 그리고 상처를 만들어 내는 것들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가능성에 관한 '희망고문'이다.
사람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잘나거나 남다르게 쓸모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매력이 아주 많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선한 사람일 경우엔 별 상관이 없지만, 이기적인 경우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네가 나에게 잘하면 네가 어떤 이득을 얻을 가능성은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것을 절대로 입 밖으로 약속하지는 않아'라는 태도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강한 권력, 남다르게 많은 돈, 큰 명성이 있다면 훨씬 더 쉬워진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돈, 권력, 명성을 원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조금 방식은 다르지만, 그렇게 다들 관심, 인정, 인기, 사랑받기를 등을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나에게 조종되도록 유도하는 것, 이것은 더 많은 돈, 더 강한 권력, 더 높은 명성, 더 많은 인기, 더 잦은 관심, 더 많은 사랑이 가져다준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이제 스스로를 부풀리기 시작한다. 바로 허세가 시작되는 이유이다.
허세는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서, 그것도 알아서 조종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있는 것보다 좀 더 대단한 존재로 포장하는 행위이다. 가끔은 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들켜서 신뢰를 잃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방법도 말고도 아마 많은 것들이 또 있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계를 맺는 과정엔 늘 '조종'에 관한 보이지 않는 거래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 * *
우린 인간관계라는 틀에서 끝없이 누군가를 조종한다. 혹은 조종당한다. 하는 쪽을 '갑'이라고 하고, 당하는 쪽을 '을'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단어의 어감이 그리 좋지 않아서 그렇지 조종을 당하는 것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분이 좋을 때도 꽤나 자주 있다. 반대로 누군가를 조종을 하는 것이 늘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떨 땐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경우도 꽤나 많다.
조종이란 단어가 가진 기분 나쁨만 제거한다면, 자신이 그 많은 관계 속에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필수적으로 조종을 하거나 당하는지를 차분히 지켜볼 수 있다. 만약 그 안에서 자신의 입장과 역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이 얻고 있는 것들과 뺏기고 있는 것들에 대한 꽤나 자세한 계산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더해서 누군가 스스로 인식도 못하는 사이에 나를 조종하고 있음을 우연히 깨닫거나, 나는 상대를 순수하게 대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항상 조종하고 있음도 자각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과도한 죄책감, 과도한 선함, 과도한 잘함, 과도한 상처, 과도한 갈등, 과도한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도록 해줄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한다면 삶 그 자체가 변화될 수도 있고, 관계에 대한 인식 그 자체가 변할 수도 있다.
그것은 아마 오직 각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