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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02. 2021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사도 된다 #끝

해석이라는 자유의지

우리는 지금 현재의 우리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특징이 유전과 환경에 의해서 거의 대부분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알던 상식과 다르게 외모, 성격, 지적 능력, 신체 능력, 성향, 취미, 기호까지도 부모의 유전자와 부모가 만들어 준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타고난 것들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엔 착각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노력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타고나는 것이며, 거기엔 타고난 지적 능력이 아주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지금 이미 다 고정되어 버린 세상이니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살지, 어떤 세상이든 상관없이 내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지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옐로우스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해야 삶이 반짝거릴 수 있게 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털을 고르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 우리의 과거는 이미 결정되어서 되돌릴 수 없지만, 삶에 관한 다른 관점을 갖게 된 우리는 이제 과거와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 이제는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이 쌓였기에 우리들의 미래는 관성처럼 살아온 궤도를 바꾸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괜찮지만, 기쁘게도 더 좋은 소식이 하나가 있다.


짜장과 짬뽕을 선택한다는, 착각에 의한 자유의지 말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진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점만이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결과의 해석에 대한 자유이다. 우리는 짜장을 먹고 만족할 수도 있고, 욕을 할 수도 있다. 짬뽕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짜증이 날 수 있다.


물론 그런 반응들은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인데 어떻게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된다는 소리를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어떤 결과를 받았을 때 어떤 감정 반응이 나오게 할 수 있을지를 미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헛소리 같지만, 분명히 가능하다.


배가 너무 고픈 날인데 돈도 없다. 그런데 지나던 길에 중국집 사장님이 불러서 짜장 한 그릇을 주었다. 사실 면도 많이 불어서 그리 맛이 없는 짜장면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따뜻함으로 인해 베풀어진 한 끼 밥은 누군가를 눈물 나도록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뭔가를 많이 먹어서 이미 배가 터질 지경이다. 그런데 너무도 맛있다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엄청 비싸다. 그럼에도 유명해서 다들 줄을 서서 먹으니 나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먹어보니 그렇게 비싸고 유명할 정도는 아니다. 배만 더 부르고 결국 화가 나고 만다.


모든 선택은 그것에 따른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다. 크게 보면 만족이거나 불만족이다. 기대에 부흥하면 만족하게 되고, 기대에 못 미치면 불만족하게 된다. 만족할수록 행복하고, 불만족스러울수록 불행하게 된다.


이 차이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어떤 결과가 주어졌느냐일까? 아니다. 사실 결과는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답은 처음에 품은 ‘기대치’이다. 얼마나 기대를 했느냐에 따라서 얼마큼 만족할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그래서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사람이 배고픈 날 공짜로 얻어먹는 불어 터진 짜장면을 먹고 눈물이 날만큼 행복해지는 것이고, 잔뜩 기대를 한 사람이 돈 내고 먹은 맛난 짜장면은 오히려 짜증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최대한 반짝거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배웠다. 그것을 위해서는 최대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가 동일하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답은 이미 나왔다. 그것은 바로 최초에 품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그것이 낮아질수록 우리가 어떤 주어진 결과에 조금 더 만족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아 든 결과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는 돈이 아깝고, 누군가는 돈이 아깝지 않다. 같은 여행지를 방문해도 누군가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고, 누군가는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느껴진다. 이런 현상들은 매일 매 순간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돈을 들이고, 같은 노력을 해서 똑같은 결과를 얻었어도 그것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수준은 전혀 다르다. 


설령 그 결과가 전혀 기대와 다르더라도 적어도 화나 짜증은 안 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기대치를 품었다면  그 누구라도 화가 나지 않기는 힘들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각자가 가진 기대치를 낮추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동일한 조건 하에서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는 기대치를 낮추는 선택을 함으로써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모든 결과들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들 시도하고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사실상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다. 이미 선천적으로 주어진 요소들에 의해서 자동으로 선택이 되고 그때그때 생겨나는 운에 의해서 최종 결정이 되고 만다. 하지만 어떤 동일한 결과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것인지, 부정적으로 해석할 것인지는 온전히 선택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이다. 그것을 위해 그저 기대치를 낮추는 방법만 알면 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품게 되는 기대치를 낮출 수 있을까?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권리’에 대한 착각만 걷어 내면 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최대한 감사함의 대상으로 바뀌면 된다. 물론 알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몹시 어렵다. 그럼에도 그렇게 될수록 더 행복해질 수 있으니 미리 포기하지만 말자. 지금부터 함께 그 길을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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