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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01. 2021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사도 된다 #8

털을 고르는 고양이

고양이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생물체가 있다. 이 작고 귀여운 녀석은 호기심이 많고 예측하기 힘들며, 가끔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서 보고만 있어도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몹시 질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이다. 그래서 씻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분명히 할 말이 있다. 경쟁자인 개와는 달리 자신은 스스로를 끝없이 깨끗하게 하며 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틈만 나면 혀로 자신의 몸을 핥는다. 털 고르기를 하는 것이다. 개는 하지 않는 짓이다.


고양이는 무리를 지어서 살았던 개와는 달리 홀로 사는 것에 적응된 생명체이다. 그래서 동료의 개념이 없고, 사람과 같이 지내긴 하지만 개처럼 복종하거나 충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개와는 달리 자신의 건강에 부쩍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무리 속에 살아왔던 개는 잠시 몸이 아파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버텨낼 수 있지만, 혼자 살아야 했던 고양이는 아픈 순간이 바로 죽음이다.


그런 이유로 개는 동료와 함께 잘 지내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 되었고, 고양이는 가능하다면 최대한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 되었다.


사람은 고양이보다는 개와 비슷한 삶을 산다. 그것도 수십 마리로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개보다 훨씬 큰 수백만 단위로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 그것을 통해 얻는 이득은 정말로 크다. 하지만 단점도 그만큼이나 크다.


가장 큰 단점은 바로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와 경쟁이다. 그 결과로 생겨나는 열등감, 질투심, 자괴감 등의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은 오히려 혼자 사는 것보다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결코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타고난 것들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감정들을 경험할 일들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눈을 옆으로 돌려 보자. 그러면 물을 싫어하고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있는 흥미로운 생명체가 보일 것이다. 그동안 개의 삶을 살면서 힘들었으니 이제 잠시만 고양이의 삶을 살아보도록 하자. 우리는 사람이기에 개이면서도 고양이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양이처럼 나 자신을 최대한 깨끗하게 다듬으면 된다. 어떤 이유들로 인해서 무리 속에서 힘듦은 겪어야만 했다면 무조건 거기에서 버티려고 노력하지 말고 잠시 한 발자국만 물러나 조용히 내 털을 고르도록 하자.


우리는 고양이처럼 혀로 고를 털은 없지만, 예쁜 옷을 사서 잘 꾸밀 수 있다. 또한 예쁘게 머리를 할 수도 있고, 예쁜 귀걸이나 네일 아트를 할 수도 있다. 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신을 해서 바꿀 수도 있다. 괜히 나이 핑계 댈 필요 없다. 고양이는 늙어도 계속 털을 고른다.


외모를 가꾸는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나를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것을 하면 된다. 단지 한 가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고양이가 자신의 털을 고르는 것은 결코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양이는 살기 위해서 반드시 털을 골라야 한다. 그래서 털을 고르는 것을 포기한 듯 보이는 길거리의 고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모습이 보이질 않게 된다.



우리가 자신을 가꾸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행동 역시도 선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고양이의 털 고르기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오래된 고정관념 하나를 깨뜨려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서 고민을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본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고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갈등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해야 할 일을 선택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로 바뀐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그 즉시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의 갈등으로 바뀐다. 그렇게 되면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라는 이유로 포기되었던 많은 것들이 선택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제 화장지를 사듯이 영화를 보러 가야 하고, 쌀을 사듯이 화장품을 사야 한다. 세제를 사듯이 여행을 떠나고, 콩나물을 사듯이 옷을 사야 한다. 딱히 살 이유가 없어도, 그것이 단지 예뻐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사도 된다. 그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기 위해서 따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것을 잊는 순간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털 고르기를 멈춘 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된 길고양이의 삶을 살게 된다.




단,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남이 하고 싶은 일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이 하고 싶은 일일 때 집착과 무리가 생겨난다.


내 행복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경험된다. 하지만 내 행복을 타인에게 설명할 때는 언어라는 수단을 통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콩나물국을 먹고 느낀 행복과 동네 뒷산에 올라 느꼈던 행복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기란 무척 힘들다. 실제로 그 국을 먹지도 않았고, 그 뒷산에 올라 작은 단풍나무를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공감시키는 일이 원래 쉬울 리가 없다.


그나마 글을 잘 쓴다면, 적절한 단어들과 감성적인 표현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자신이 느낀 소소한 행복을 공감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바로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행복 경험을 하는 일이다.


그것은 콩나물국의 행복이 아닌 스테이크의 행복이어야 하고, 뒷산을 오르는 행복이 아닌 2박 3일의 지리산 종주 정도는 되어야 하는 행복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다들 ‘행복했구나’하고 인정해준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이 되기 시작하면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밥을 먹어야 하고, 에베레스트 산에는 올라야 할 상황에 놓인다.


결국 무리를 하고 집착을 하게 된다.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많은 신경을 쓰고, 더 많은 노력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행복하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더 불행을 부르고 만다.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맞추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고양이가 털을 고르는 것은 자신의 외모를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다를 바 없다. 나를 최대한 가꾸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에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그것들이 나를 ‘반짝거리며’ 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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