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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03. 2021

채움과 비움

두꺼비의 부재

김광석 씨가 노래한, ‘서른 즈음에’를 훌쩍 지난 서른의 끝자락쯤에 삶이 갑자기 난관에 부딪혔다. 아니, 내 삶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도 그럴 법했다. 일어난 즉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딱히 큰일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늪에 빠지듯 서서히, 내가 눈치를 챘을 땐 이미 가슴 부근까지 빠져서 턱 밑까지 차올라 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직장문제였다. IT 분야에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으로 먹고살던 나는, 그 직업 특성상 몇 차례 직장을 옮겼는데, 그 나이쯤 되니 이력서 하나 내기가 버거웠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나이가 문제였다. 40대만 되어도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 분야였던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집에 관한 것이었는데, 딱히 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아 둔 것도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전세를 살면서 이사를 다니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 정착을 해야 하는데, 서울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삶의 방향을 잃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사람을 만나던 행복을 추구했던 나는 딱히 흥미가 생길만한 새로운 대상도 없고,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도 없고,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나는 또 다른 이유들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더해서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문제들도 많았다. 결국 나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강제로 설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인가?”


흔히 철학에서 화두로써 주어지는, 실존에 관한 그런 고급스러운 질문이 아니었다. 정말로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존에 관한 물음이었다.


한참을 고민을 한 끝에 세 가지 결론을 정했다. 하나는 45세까지만 일을 하고 은퇴를 한다, 둘은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시골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최소한의 생활비로 거기에서 산다, 셋은 별 사진 찍기라는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한다.


그나마 목표가 정해지니 사라졌던 의욕이 조금은 돌아왔다. 최대한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고, 틈나면 집을 지을 땅을 보러 다니고, 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장비를 사고 공부를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땅을 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또한 그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회사의 위치가 지금 살고 있었던 집과 9Km 정도 거리가 되었다. 나는 운동 삼아서 걸어 다녔다. 사실 꽤 긴 거리였다. 두 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그것을 출퇴근으로 걸었으니, 하루에 네 시간씩을 걸은 것이다. 홍수처럼 비가 오는 날엔 방수가 되는 작업화를 신고 걸었고, 눈이 쌓인 날엔 아이젠을 끼고 걸었다.


당시엔 꽤나 절박했기에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걸었다. 걷는 중에 수많은 잡념들이 오갔다. 그중에서 나름 새로운 이해가 되는 것들을 골라서 글로 옮겼다. 그렇게 몇 년이 훌쩍 흘렀다.


그 사이 집이 완성되고, 별 사진도 제법 찍었고, 블로그에 글도 꽤나 쌓였다. 그러다가 운 좋게 한 출판사 사장님과 알게 되어서 블로그 글을 모아 책도 한 권 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다들 나를 꽤나 부러워했다. 제법 대단한 일을 해 낸 사람으로 봐줬다. 그도 그럴 만했다. 많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시골에 집을 짓는 로망, 흔한 로망 중 하나인 별을 보는 취미, 한 개인이 책을 낸다는 경험은, 그것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꽤나 먼 얘기였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구렁텅이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되어 절망에 빠졌던 나는,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느새 꽤나 많은 것을 채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겉보기엔.


집을 짓고 2년도 채 되지 않아서, 내가 땅을 산 곳에 군부대가 이전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나는 반대를 했고, 주민들도 반대를 했지만, 최종적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결국 나는 집을 지은 지 오 년 만에 그곳에서 나와야 했다.


별 사진을 찍는 것도 몇 년이 반복되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래서 처음 가졌던 열정도 많이 줄어 버렸다. 그나마 장비를 바꾸면 어느 정도 유지는 되겠지만, 그러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한참 열정이 있을 때 찍었던 안드로메다 은하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낸 책은 1쇄조차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딱히 눈에 띄는 반응도 없었고, 그저 책을 냈다는 사실만 주변 지인들의 축하 정도로 끝났다.


나는 나를 제법 채웠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 내가 채운 것은 콩쥐의 밑 빠진 항아리였다. 더군다나 나는 콩쥐처럼 착하지도 않아서 나를 도와줄 두꺼비도 없었다.


두 번째 좌절이었다. 그런데 이 좌절은 딱히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어갔다. 처음 그런 것들을 계획했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유들로 인해 그랬다.


가끔 시골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이 보여 준 ‘행복한 미소’가 나를 지탱해주었다.  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주변에 다른 집 한 채 없는 적막한 곳을 고른 탓에 얻을 수 있었던 한없이 고요하고 맑은 장소가 가진 공간의 힘이었다.


또 하나는 집을 짓고 남은 땅에 짓기 시작한 농사였다. 매해 새롭게 자라나는 옥수수, 고구마, 고추, 상추, 토마토, 수박, 호박, 파 등등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삶이 좋았다. 비록 봄철이면 발을 일구느라 꽤나 힘들었지만,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자라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그리 좋았다.


아이러니한 결과였다. 내가 목표로 정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채운 것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고,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서 텅 비어버린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 후로 수 많은 생각들이 이어지고, 더 많은 글들이 쓰여지고 난 후 어느 순간 나는 문득 삶에 관한 작은 진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집은 비어있을수록 그 쓰임새가 있는 것이고, 삶은 채움이 아닌 비움의 과정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은 채움의 과정이었지만,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은 비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강렬한 경험이다. 힘들지만 한걸음 디딜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껏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이었다. 누군가와 부딪히는 충돌의 경험을 통해 나를 부각시켜 눈에 띄게 하려는 삶이었다.


이제는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딱히 뭔가 힘들게 할 필요도 없는 삶이다. 충돌이 아닌 흐름에 어울리고 주변과의 조화를 통해 나 자신의 존재를 점점 희미하게 만드는 삶이다.


그 후로 또 시간이 흘러 나는 새로운 시골집을 구했다. 이번엔 지어져 있던 집을 샀다. 통나무와 황토벽돌로 지어진 제법 근사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또다시 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준비 중이다. 무엇보다도 텃밭엔 이미 옥수수와 고구마, 파, 양파, 토마토, 고추, 호박과 수박이 자라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비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비움과 내려놓음은 제법 그럴듯 해보이지만, 사실 선택이 아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살아온 삶이 살아갈 삶보다 조금 더 길어질 때쯤이 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삶의 평범한 진실이다.


내가 그것을 잊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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