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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n 18. 2021

안전함과 불안함 사이에서 #3

또다시그곳으로

그간 우리들은 각자마다의 사연으로 떠돌았지만 다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같다. 그곳은 파랑새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처음에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우리가 긴긴 시간 동안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헤맸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두 번째 출발의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도 많은 상처들을 받아 온 우리들은 출발지점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와 굵고 단단한 줄을 만들려고 했던 어린 시절의 용기는 이미 사라져서 흔적조차 없다. 누군가와 연결되었던 끈이 강제로 끊어졌을 때 감당했던 고통의 기억으로 인해 지금 자신이 붙이고 있는 대상에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더 나서질 하려 않는다.


서로 다가오길 기다리지만 서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그 사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은 사람들은 그나마 낫다. 부모님들은 결국 돌아가지만, 자식들은 대부분의 경우 부모보다 오래 살기에 결국 자신이 죽어서 스스로 끊을 때만 유일하게 끊어지게 된다. 가족과 연결된 끈만큼 단단하고 안정적인 것도 드물다.


하지만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사람들도 꽤나 많고,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한 사람들도 제법 되는 세상이다. 심지어 비록 결혼을 했어도 특정 조건만 따져서 결국엔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을 고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보다 오히려 결혼 후 더 외롭고 불안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끔 들려온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 대안으로 이용해왔던 여행, 취미, 독서, 일, 텃밭, 개와 고양이로는 부족하다. 그것들은 비록 사람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분명히 삶을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 태생적 한계는 뛰어넘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 더 안정적이고 제대로 된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다시 출발해봐야 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멋모르고 나섰다가 불필요한 상처 받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제 중고등학교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관계의 홍수 속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숨이 막혀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런 철없는 시절의 아이가 아니다. 힘들게 겪어 온 수많은 상처로 인해서 경험과 관록으로 무장된 베테랑들이다.


이제 좀 다르게 접근해 볼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든지 상관없이 살아온 경험이 우리를 한 단계 성장시켰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충분히 준비해서 나간다면, 우리가 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한다면, 과거와는 달리 상처로부터 자신을 최대한 보호하며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지금껏 누군가와의 연결된 선을 최대한 얇고 약하게 만들어 언제 끊겨도 될 상태로 만드는 일에 집중해왔다. 최대한 쿨한 사람이 되길 원했으며, 쿨하다는 것은 최고의 칭찬으로 들렸다. 우리는 가능한 한 세상의 숨겨진 이면을 아는 존재가 되길 원했으며, 표피적인 이해보다는 그것의 부정적인 면을 냉소적인 태도로 의견을 내는 사람을 더 똑똑하고 현명한 존재로 느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모두 날카로운 가시다. 그 가시는 오랫동안 타인과 우리 사이를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만들어 냈다. 원한대로 쿨하고 냉소적인 사람은 되었지만 결국 고립되고 외로워지고 말았다. 누군가와 함께 체온을 나누지 못해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함께 하는 따뜻한 이야기에 끌린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과는 달리 우리의 마음은 따뜻함을 원한다는 뜻이다.


이제 바꿀 수 있다. 단지 준비를 잘해야 한다. 두 번째로 출발선에 선 것은 분명히 기회이지만, 만약 두 번째 실패가 반복되면 그것은 우리를 완전히 주저앉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첫 번째 시도보다 두 번째 시도가 훨씬 더 중요하고 미치는 영향도 크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행히도 우리는 과거엔 없었던 일곱 가지의 강력한 무기를 이미 손에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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