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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n 19. 2021

안전함과 불안함 사이에서 #4

일곱 가지 무기들 - 1

그것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충무공의 절실한 외침 속의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여유롭고 원하는 만큼 기다리며 쓸 수 있는 그런 무기들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상처들은 분명히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우리는 분명히 성장했다.


첫 번째, 우리는 이미 각자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정착지를 가지고 있다. 그 존재가 우리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잘 자란 텃밭이거나, 집에 돌아가면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어 대는 강아지이거나, 비록 온라인 커뮤니티이지만 가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남겨도 되는 그런 공간이든 상관없다. 그러니 우린 딱히 피할 곳이 없었던 학창 시절과는 달리 언제든 지치고 힘들면 언제든 그곳으로 가서 쉴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 피난처는 결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은 누군가와 얽히는 것보다는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 대안이면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런 착각이 일어나게 되면 취미, 독서, 글쓰기, 텃밭, 여행 앞에서 멈추고 만다. 그것들이 내 운명이 되고, 내 삶이 되고, 결국엔 나의 모든 것이 되고 만다.


그것은 집착이다. 그러니 잊지 말자. 우리는 그저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잠시 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와야 한다. 그 대안들을 통해 충분히 회복되었다면 이제는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붙여 놓은 그곳은 우리들에게 숨겨 놓은 마지막 한 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우리는 이제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다. 이제 과거와 달리 당장 눈에 끌리는 것만으로 사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어릴 시절처럼 우리가 동경하는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을 고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잘난 외모나 인기가 많은 친구나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에게 끌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잘난 아이들은 자기 잘난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매력에 끌려 다가오는 아이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간다. 그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행복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행복한 일을 같이 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친구는 등을 돌렸다. 그러니 상처를 입은 것이다.



우리는 반항적이거나 보이시한 매력을 지닌 아이에게도 끌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것들은 그저 한때의 치기이거나 타고난 둔함의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한때 그런 매력에 끌렸으나, 운이 나쁘면 그것이 거친 사포가 되어 우리를 상처 입힐 수 있음도 경험했다.


우리는 이제 끌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눈높이가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기준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관계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노력하면서 살다가 보면 결국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그 숫자가 적지만 분명히 존재하고는 있다.


세 번째, 우리들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 사실은 모든 무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많은 상처를 입은 나는 이제 설명하기 힘든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움직여야 할 땐 조심스럽게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우리는 즐겁기 위해서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안정적으로 되는 것임을 이제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를 그렇게 맺지는 않는다. 그래서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가볍게 알고 지내는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는 그동안 좀 더 신중해졌고 좀 더 너그러워졌다. 우리는 이제 눈 앞에서 당장 벌어지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올라오는 감정을 날것으로 반응하던 조바심 많던 그 시절의 아이가 아니다. 우리는 영리하게 한 템포를 늦출 줄 알고, 상대방이 왜 그랬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네 번째, 우리는 이제 과거에 받았던 상처들에 대해 다른 관점의 이해를 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은 것은 맞지만, 정확히 말해서 그 상처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받은 것이다. 이제는 그들은 그저 자신이 좀 더 행복하고자 그런 식으로 움직인 것이지 우리를 일부로 상처 입히려고 그런 식으로 행동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원래 사람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이다. 우리가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가능하면 밝게 웃는 이유이며, 별로 재미가 없어도 정색하며 재미없다고 면박을 주지 않고 억지웃음이라도 짓는 이유이다.


그러니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해 우리의 미움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의도는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저 우리와 함께 하는 것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행복했던 것뿐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우리가 그랬다. 그러니 과거에 대한 미움은 이제 그만 흘려보내자. 그것들은 밤송이와 같아서 세게 쥘수록 우리 손만 아프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새롭게 만나게 될 관계 속에서도 그 점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일부로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을, 우리들 자신 역시도 일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하지 않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괜한 오해나 섭섭함을 만들어 내지 않게 해 줄 것이다. 불필요하게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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