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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n 20. 2021

안전함과 불안함 사이에서 #마지막

일곱 가지 무기들 – 2

다섯 번째, 우리는 이제 각자마다의 고유한 매력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엔 누군가에게 느낄 수 있는 매력의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예쁘다든지, 성격이 밝다든지, 재미있다든지, 공부나 운동을 잘한다든지, 집이 부자라든지, 단지 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들은 다들 팔색 팔조의 매력을 가진 존재들로 거듭났다. 책을 많이 읽었거나, 글을 잘 쓰거나, 게임을 잘하거나, 많은 곳을 여행해봤거나, 역사나 과학적 지식을 많이 쌓았거나, 생활 상식이 풍성하거나, 음식을 잘하거나, 음식을 잘 먹거나, 좋은 영화를 볼 줄 알거나,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들은 어린 시절엔 별로 끌리지 않는 매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그것들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을 때 분명히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외모나 지적 능력과 같은 전통적인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겠지만, 그것보다 조금은 더 ‘자기다움’과 ‘결 맞음’에 끌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타고난 선천적 매력들은 마치 연예인을 바라보듯 그저 동경에 머무르겠지만, 후천적으로 얻은 매력들은 분명히 호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린 예쁘고 인기가 많은 친구가 여전히 좋지만,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가 훨씬 더 좋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딱히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영역에 가서 힘들게 적응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했지만, 그곳을 벗어난 후의 우리는 이제 선택의 자유가 생겼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고유한 특징들이 조금이라도 더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글 쓰기나 책을 좋아하면 독서 모임에 나가면 되고,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 모임에 가입하면 된다. 산을 오르는 것이 좋으면 등산 모임에 가면 되고, 여행을 좋아하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 가면 된다.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여섯 번째, 우리는 삶의 여유와 분별력이 생겼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전처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타인의 평가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도 타인의 삶에 무의미한 평가를 내리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각자 옳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엔 할 말, 안 할 말이 수 없이 뒤섞였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잔인하다. 누군가의 단점을 애써 숨겨주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느끼면 그것이 그대로 입을 통해 나온다. 그것들은 나쁜 의도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상처가 되고 말았다.


어른이 된 우리들은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말을 조심하는 분별력이 생겼다. 물론 아직도 아이처럼 입 밖으로 내는 사람들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끊을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여전히 아이처럼 군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끊으면 된다. 사실 딱히 그들과는 관계를 이어 갈 가치도 없다.


일곱 번째,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제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끝남을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니 언제나 무엇이든지 사라질 수 있음을 어느 순간에도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소중함은 오직 마지막이 있기에 생겨나고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나나 너의 삶도 결국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들에게 연결된 많은 존재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물론 떠나는 우리는 별 상관이 없다. 죽음의 이별은 오직 남은 자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와의 이별로 인한 상처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충분히 괜찮았던 것이다. 설령 그것이 아픈 것이라도 말이다.


나는 내일 떠날 수 있고, 너는 모레 떠날 수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우리와 맺어진 모든 존재는 결국 사라지고 잊히고 만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하지만 그런 결말이 있다고 해서 사는 동안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생이 끝나갈 때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존재가 적어도 우리의 죽음을 처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나 무생물은 아니길 바란다.


일곱 개의 무기를 손에 쥔 우리는 과거처럼 서투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히 여유롭고 차분하게 떠날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챙기자. 그것은 이 모든 과정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금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갖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숙제를 제대로 마칠 때 우리는 온전히 준비를 끝낼 수 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과 타인은 객관적으로 경험되지만 나 자신은 언제나 주관적으로만 경험되기에 그렇다.


숲 속에 있을 땐 숲이 보이질 않는다. 숲에서 빠져나오는 그 순간에만 오직 숲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바로 나에게서 빠져나와 나를 객관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다소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그 결과는 꽤나 마음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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