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찬우 Jul 20. 2021

먹기 위해 산다 #5

낚시꾼에게 물고기를 주다

우리가 누구나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끝없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여름밤에 모기 소리를 듣거나, 현실이 아닌 공포 영화를 보거나, 냉장고에 썩어가고 있는 오래된 오이를 발견했을 때처럼 생존하고는 거의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 두려움들은 이후 불안, 분노, 짜증 등의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기쁨, 즐거움, 재미처럼 두려움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긍정적 감정들은 왜 느끼게 될까?


웃기는 질문이긴 하다. 지금 당신이 왜 행복하냐고 묻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유를 꼭 이유를 알아야 할까? 부정적 감정들은 그 원인을 알면 해결해 볼 수나 있지, 긍정적 감정은 처음부터 해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말이 나온 김에 한번 알아나 보자.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자. 토요일에 당신은 집에 혼자 있다. 밖의 날씨는 몹시 덥지만 집 안에는 에어컨이 돌고 있고, 냉장고에는 시원한 수박과 아이스크림이 있다. 방금 밥을 먹어서 배가 부르고 샤워를 하고 났더니 여름 치고는 정말로 상쾌한 느낌이다. 지금부터는 당신이 좋아했던 드라마의 시즌2를 볼 계획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갑자기 문자 연락이 왔다. 친구들이 모인다고 한다. 너도 나오라고 한다. 그런데 모이는 장소가 최소 한 시간은 가야 할 거리이다. 고민이 된다. 덥고 습한 날씨를 뚫고 지하철을 탈 일도 걱정이지만, 지금 너무도 좋은 상태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기도 힘들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상황을 바꿔보자. 비슷한 상황이지만 몇 가지 조건이 다르다. 일단 에어컨이 없다. 냉장고에 수박과 아이스크림도 없다. 밥은 먹었지만 그로 인해 땀이 났다. 그래서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습해서 여전히 땀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 할 일이 없다. 아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그래서 그냥 멍하게 있다.


그 순간 친구에게서 나오라는 문자로 연락이 왔다. 자, 이젠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아마도 나갈 것이다. 가는 동안 덥고, 비싸지는 않지만 지하철 요금도 내야 하고,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돈을 쓰게 되고, 가서 기분 좋은 일도 많지만 누군가로부터 은근히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노래방에 끌려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갈 것이다.


왜 나가게 될까? 일단 더위도 더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나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집에 혼자 있을 때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심심함이 반복되면 결국 삶이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유럽 6개월 여행을 떠나는 것과 집 안에서 홀로 6개월을 뒹굴 거리는 행복이 완전히 동일하다면 어떤 것을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우리 머릿속은 당연히 여행이 더 낫다고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돈을 많이 써야 하고, 위험하기도 하고, 재수가 없으면 실패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단점들을 훌쩍 뛰어넘는 행복을 기대할 수 있기에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집에서 혼자서 노는 것을 통해서 그만큼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때도 여행을 떠나게 될까?


결국 우리가 집에 혼자 있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해지고 결국 지루해지며 마지막엔 ‘우울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 우울함이 반복되면 우울증에 걸리고 무엇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 복구 불가능한 의욕 상실증 환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덥고, 힘들고, 고생스럽고,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얻는 것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그런 수고스러움들이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보통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밖으로 나가는 진짜 이유는 안에서 홀로 있으면 결국 심심하고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집에서 혼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좋다면 왜 나가서 힘들게 번 돈을 쓰겠는가?


문제는 이 세상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들 나간다.


지루함은 우리를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본질적 원인이다. 그러니 만약 지루함만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삶은 참 편해질 것이다. 쉬는 날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되고, 본 영화를 또 보고 또 보고 해도 되고, 같은 사람을 만나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해도 된다. 연인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늘 처음 만났을 때처럼 행복하고 수십 년을 함께 해도 권태 따위는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어제 먹은 음식을 오늘 또 먹어도 되고, 일 년 내내 먹어도 된다. 어제 한 일을 오늘 똑같이 반복하고, 내일 또 반복할 예정이라고 해도 전혀 기분이 나빠지지가 않는다. 한번 깬 게임을 또 깨도 똑같이 즐겁고, 이미 가 본 여행지를 또 가도 여전히 처음처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그 어떤 것도 첫 경험의 순간을 따라올 수는 없으며, 반복될수록 점점 자극의 강도는 약해져서 오히려 안 하는 것이 나아질 때가 오게 된다. 그렇기에 연인은 헤어지고, 음식은 매번 바뀌고, 새로운 영화를 보러 가고, 최대한 가보지 않은 여행지로 떠나게 된다. 지루함만 없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해서 그놈의 지루함만 없다면 삶은 정말로 많이 단순해지고 편해질 것이다. 한 명의 친구, 한 편의 영화, 한 장소, 한 가지 종류의 음식 만으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철학자들 중에서 지루함에 대한 본질을 가장 깊게 사유한 사람은 바로 파스칼(Blaise Pascal)이다. 그는 토끼 사냥을 떠나는 사냥꾼에게 이미 잡힌 토끼를 주는 행동을 하면 그가 화를 낼 것이란 예를 들면서, 토끼 사냥을 떠나는 사냥꾼은 그가 믿고 있는 것처럼 토끼 사냥 그 자체가 아님을 일깨워줬다.


맞는 말이다. 토끼 사냥을 떠난 사람의 목적은 처음부터 토끼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토끼를 사냥하는 과정 속에서 삶의 지루함을 없애는 것이다.


만약 그가 정말로 토끼고기로 먹고 살 처지였다면 누군가 미리 잡아 놓은 토끼고기를 줬을 때 그 자체로 엄청난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그럴지 않다. 낚시를 하러 떠나는 사람에게 시장에서 물고기를 사다가 주면 과연 고마워할까? 아니다. 정말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여행을 떠나든, 토끼 사냥을 하든, 낚시를 떠나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엔 끝없이 생겨나고 있는 지루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도대체 왜 지루함을 느껴서 고양이처럼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자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먹기 위해 산다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