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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25. 2021

먹기 위해 산다 #8

나도 사실은 꼰대다

우리는 암에 걸리거나, 배고픈 호랑이를 만난 일과 같은, 생존에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당하면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단 그 상태가 되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오늘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싸게 사는 법을 알아볼 수는 없다. 당장 호랑이가 쫓아오는데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고 느낄 여유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현대 문명은 그런 두려움이 발생하는 상황을 최소화시켜준다. 암도 나을 수 있고, 호랑이는 만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예전과는 달리 꽤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다.


만약 딱 여기에서 끝났다면 우리 인간은 지금쯤이며 다들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영리하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엔 금세 지루함이 자리를 잡는다.


지금 여유 시간이 생겼으니 미래의 나에게 닥칠 두려움을 – 궁극적으로는 늙음과 죽음 - 대비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봐, 라는 욕구가 밀려온다. 처음엔 심심함을 느끼다가 곧 지루해졌다가 결국엔 우울해지고 만다.


우리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움직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루함은 두려움과 달리 처리 방법에 대한 명확한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암에 걸리면 치료를 해야 하며, 호랑이가 쫓아오면 도망치는 방법만이 유일하지만 지루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여행, 영화, 게임, 쇼핑, 취미활동과 같은 것들은 흔히 선택되지만, 서예 쓰기, 외발 자전거 타기, 자격증 따기, 러시아어 공부하기 등과 같은 해결책들은 흔하지 않다.


지루함의 해결책이 그렇게 다양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지금 한 행동이 미래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고, 원래부터 지루함은 시간이 남아서 생겨났으니 시간 자체를 때우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해결 방법 중에서 여행을 가서 직접 보는 것이 TV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느끼지만,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느끼는 ‘가치’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가치라는 말은 ‘그것이 얼마나 생존에 큰 도움이 되느냐’, 라는 화두에서 시작해서 ‘이것이야 말로 미래를 위해서는 훨씬 큰 도움이 될 거야’, 라는 믿음으로 완성된다. 그러니까 TV를 보고 있는 것보다 직접 여행을 가서 보는 것이 훨씬 더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행에서는 TV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이 쌓이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는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여행을 갔다가 크게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때도 여전히 집에서 TV를 보는 것보다 여행을 가는 것이 무조건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 자신이 지루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 행동이 실제로 미래에 도움이 될지 여부 자체도 확실하지도 않은데,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 최고로 좋다는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 시간, 돈, 노력을 투자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홍보하고, 남들에게 자신의 선택이 가진 장점을 과시하며, 남들에게 자신의 선택을 따라 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이런 행동들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니 자꾸 주변에 말해서 공감이나 동의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노력을 해도 사람마다 각자 가치를 먹이는 방식은 결코 같아질 수가 없다.


누군가는 책은 10점, 여행은 20점, 게임은 -5점 식으로 먹여진다. 다른 누군가는 운동은 100점, 여행은 0점, 게임은 -50점, 책은 5점으로 먹인다. 누군가는 게임은 70점, 여행은 -20점, 집안일은 10점으로 먹인다.


이런 식으로 가치의 순위를 정하게 되면 ‘아, 내 가치가 좋구나’ 하면서 끝날까?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 즉시 내 가치에 대한 우월함과 타인의 가치에 대한 혐오가 생겨난다. 또한 자신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을 보면 추종이 생긴다.


사람을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을 기준으로 해서 분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얼마나 옳은 것일까? 생각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말로도 한다.


책을 읽어라, 역사를 알아라, 운동을 해라, 여행을 떠나라, 게임은 하지 마라, TV는 바보상자이다, 사람은 많이 사귀는 것이 좋다, 등등의 조언을 가장한 참견 질의 대가인 꼰대들이 나타난다. 주변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강연에서나, 책을 쓰거나, 유튜브 영상을 찍어서 말한다.


꼰대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가치 순위는 옳고, 다른 사람들이 정한 가치 순위는 다 개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입으로 꺼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은 꼰대들과 뭐가 다를까? 우리도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욕먹지 않으려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각자의 머릿속에는 내가 선택한 해결책이 남보다 더 낫다고 생각이 늘 떠돌고 있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왜 힘들게 돈, 시간, 노력을 투자하고 있겠는가?


우리는 지루해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여행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라고 믿는다. 우리는 지루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이야 말로 삶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지루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야 말로 나라는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반대로 비싼 카메라나 가방을 사는 사람을 보면 무슨 돈 낭비인지, 아이돌 스타에게 덕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무슨 쓸데없는 짓인지, 쉬는 날 하루 종일 집에서 TV만 보는 사람을 보면 한심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지 말고 좀 더 나은 것을 하면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은 소중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가 지금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제법 괜찮고, 그것을 했을 때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되는 편이고, 제대로 해냈을 때 꽤나 큰 행복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루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단지 당신에게만 가치가 있다. 또한 다른 이들 역시도 그들에게만 가치가 있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지루함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에 대해서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잘 이해가 가질 않을지는 몰라도 그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지루함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과는 다를 뿐이다.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만약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참견을 하게 되고, 다르다고 생각하면 조언을 하게 된다.


지금 그리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삶을 잘못 산 것이 아니라, 단지 지루함에 관해 당신에게 제일 잘 맞는 해결책일 아직 찾지 못한 것뿐이다. 운 나쁘게도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는 해결책이 당신에게 잘 맞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찾으면 된다. 지금부터 그것을 찾는 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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