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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24. 2021

먹기 위해 산다 #7

나는 늘 돈이 필요하다

소소한 일상이 지나고 있다. 낮엔 회사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엔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주말이 오면 친구를 만나서 맛난 것을 먹거나 영화를 보곤 한다. 특별한 걱정은 없고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다. 하지만 살짝 지루한 감이 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여행 경비가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일단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나자 소소하던 일상이 기대화 흥분으로 가득 찬 새로운 하루가 된다. 친구들과 장소를 정하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많은 검색을 해 본다. 


주말엔 영화를 보는 대신 서점에 가서 자신이 가는 여행지를 미리 다녀온 사람들이 써 놓은 ‘여행 에세이’를 한 권 사 본다. 근사한 사진을 보고 감성 충만한 글들을 읽다가 보니 지금이라도 당장 그곳에 가고 싶다.


회사 인사 팀에서 건강검진 공지가 왔다. 그래서 날을 잡아서 검사를 받는다. 그런데, 의사가 다소 심각한 얼굴로 아무래도 암일 수도 있는 조직이 있다고 한다.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오는 내내 의사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머릿속에 미래에 닥칠 수많은 상상들이 떠돌며 언제 회사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이 날질 않는다.


며칠 후 병원에 연락을 하고 예약을 잡는다. 3일 후에 오라고 한다. 그 3일이 지옥이다. 매일 잠을 설치고 회사에서도 멍하게 있게 된다. 오늘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에 비친 푸석푸석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하지만 누군가 들어오는 바람에 더 이상 울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 자신과는 달리 세상은 여전하다.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친구들은 점점 더 신나고 기대감을 표현한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볼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서 잘지, 그곳 날씨가 어떤지, 그곳 남자들이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지, 하지만 바람둥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수많은 채팅이 오고 간다. 


며칠 전까지 자신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해 있는 느낌이다. 


예약된 날짜가 오고 검사를 받는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이틀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때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면서도 그날이 오는 것이 두렵다.


결국 검사가 나오는 날이 다가온다. 아침에 씻는 동안 불안함의 상태는 훨씬 심해져서 결국 토하고 말았다. 힘들게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향한다.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30분이나 일찍 오게 되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육 개월이란 시간이 주어진 삶을 다룬 영화가 떠오른다. 방사선 치료를 받아서 머리가 다 빠진 자신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직 한참 젊은데… 억울하면서도 두렵다.


시간이 되어 방에 들어가자 의사는 이름을 확인하고는 잠시 모니터만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후 웃으며 말을 한다. 종양이 발견되긴 했는데, 다행히 악성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냥 혹이란 뜻이다. 그래도 위험하긴 하니 날을 잡아서 절제 수술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추천한다.


‘절제 수술’도 분명히 수술이지만 그 말은 귀에 전혀 들어오지도 않는다. 순간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다. 방을 나서는 내내, 그리고 병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다른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고 오직 기쁜 마음만 든다.


집에 오는 길에 평소엔 비싸서 잘 못 사 먹던 파스타 집에 들러 제일 비싸고 제일 맛있는 파스타를 주문해서 먹는다. 지난 일주일 고생한 자신을 떠올리면 그 정도 보상은 받아야 할 것 같다.


기분이 좋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심심하지도 않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자 자신도 모르게 폰을 꺼내 그동안 읽지 않았던 친구들이 쓴 글들을 읽는다.


여행이 떠오른다. 이제 다음 주면 떠난다. 암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정말로 편하게 떠나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살짝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다음날이 되어 회사에 출근해 일을 했더니 금세 사라졌다. 여행을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며칠 전 겪었던 시간들은 서서히 잊히고 그 자신도 친구들처럼 되어간다.




우리의 삶은 매일 매 순간 바뀌긴 하지만 분명히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일단 두려움의 상태, 두려움이 해결된 상태, 지루함의 상태, 지루함이 해결된 상태, 이렇게 총 네 가지가 기본이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몇 가지 추가적인 것들이 더 붙는다. 모든 것들이 다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그렇다.


두려움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경우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이 생겨난다. 공포, 불안함, 분노, 억울함, 신경질, 짜증, 실망감, 좌절, 중압감, 슬픔, 외로움 등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면 안도감, 평온함, 충만함, 기쁨 등을 느낄 수 있다.


암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고 난 후 진짜 암이었다면 공포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암이 아니었다면 기쁨과 같은 긍정적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루함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경우엔 우울함, 권태 등을 느끼게 되는데 반대로 해결되었다면 즐거움, 재미, 흥미, 자부심, 호기심, 흥분 등의 수많은 긍정적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다.


좀 지루한 일상이 반복될 경우 우울함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여행을 떠나는 듯의 새로운 경험의 기회가 생기면 많은 기대와 흥분과 같은 긍정적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해결한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해결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될수록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삶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가 결정된다. 또한 이 원리를 이해할수록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내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정확한 답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두려움이나 지루함을 회피하거나,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두려움이나 여유 시간이 있으니 미래에 닥칠 두려움을 대비하라는 지루함은 늘 제대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능력은 가끔 쓰면 좋게 작용하지만 남용하게 되면 큰 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생각보다 이 방법을 자주 이용한다. 힘들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처리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암일 수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도 가지 않은 채 의사가 얼마나 자주 오진을 하는지를 찾아보고, 일상이 지루해도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으며 여행이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만 계산하고 있다.


만약 두려움을 직면하고, 지루함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면, 설령 그 결과가 별로일지라도 우리가 불행하게 살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꽤나 자주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면, 힘들게 해결을 하는 대신 단지 그 기분만을 바꾸려고 한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잠시라도 기분이 나아지면 그 순간만큼은 넘어갈 수 있어서 그렇다.


문제는 기분을 좀 더 빠르게, 더 많이 나아지게 하려고 할수록 평소와는 다른 수준의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극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그것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높아진다. 더 강한 자극을 얻으려면 더 비싼 음식을 먹어야 하고, 더 먼 곳으로 여행을 가야 하고, 더 고급스러운 제품을 사야 한다. 그로 인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 되어간다.


나중엔 두려움이나 지루함과 상관없이 돈이 없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되며 결국 커다란 불행의 원인이 되고 만다.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 잘린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것도 아닌데, 어제까지도 없었고, 아마도 내일도 없을 돈 때문에 오늘 갑자기 친구가 큰돈을 벌었다는 말을 듣고는 불행해지고 만다.


우리는 지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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