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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31. 2021

내 감정은 죄가 없다 #2

나는 억울하다!

세계적으로 꽤나 유명한 행복 심리학자인 서민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이란 책을 통해 자신의 지도교수가 쓴 논문에 나오는 문구 하나를 소개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꽤나 유명한 문구라서 들어 본 적이 있는 분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설명하자면, 큰 행복을 한번 경험하는 것보다 작은 행복을 더 자주 경험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더 낫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바로 ‘행복의 적응 현상’ 때문에 그렇다.


행복도 일종의 자극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약해지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강렬한 행복을 경험했더라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점차 잊히고 만다. 그래야 우리가 또다시 그런 행복을 경험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단 한 번의 행복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면 과연 누가 열심히 살겠는가?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유행하는 것이 바로 ‘소확행’이다. 과거와 달리 오랜 시간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당장 경험할 있는 작고 확실한 행복이 낫다는 생각이 요즘 시대엔 훨씬 더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편이다.


이제 이 표현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불행으로 바꿔보자.


“불행은 강도가 아닌 빈도이다.”


해석하면 큰 불행을 한번 경험하는 것보다 작은 불행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더 불행할 것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맞는 표현일까?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삶보다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고, 아토피 피부염이 있으며, 한 달에 한 번은 치과에 가서 이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삶이 더 불행할까? 집에 불이 나서 다 타서 잘 곳도 없는 삶보다 자주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새로 산 제품을 망가뜨리거나, 친구에게 돈을 꿔줬다가 돈을 떼이는 일을 당하는 것이 더 불행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작은 불행들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더 낫지 큰 불행을 한번 경험하는 것은 너무 치명적이다. 한 순간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 한번 떨어진 나락에서 죽을 때까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채 삶이 마감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행복과 달리 불행은 강도보다는 빈도가 낫다.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들은 각자 살아가면서 과연 얼마나 잦은 강도가 높은 불행을 경험하게 될까? 얼마나 자주 죽을병에 걸리고, 얼마나 자주 집에 불이 나고, 얼마나 사업이 망해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얼마나 자주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시험을 망치고, 얼마나 자주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게 될까?


각자마다 한두 번씩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과연 그 이유들 때문에 불행할까? 물론 지금 현재 그런 커다란 불행은 통과하는 중이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현재 몸에 큰 문제도 없고, 직장도 있고, 잘 수 있는 집도 있고, 가족도 있고, 가끔 여행도 가고, 게임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사는데도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 아니, 불행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불행은 분명히 강도가 중요한데, 큰 불행을 겪은 일도 없거나 있더라도 이미 많이 지난 과거의 일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왜 지금 현재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느끼는 것일까?


거기엔 행복이 적응이란 현상 때문에 강도보다 빈도가 더 중요해지듯, 불행 역시도 매우 독특한 특징 하나 때문에 강도가 빈도가 오히려 더 크게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증폭’이다. 그렇다. 불행은 증폭이라는 고유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작은 불행으로 끝날 일이 커다란 불행으로 번지고 만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부부가 이혼 법정 앞에 섰을 때 아마도 수 없이 많은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결혼 당시 서로를 향해 품었던 애정이 도대체 언제쯤 미움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크게 별 것도 아닌, 그것이 이혼 사유가 될 것 같지도 않은 사소한 것들로 시작되었다. 아내가 감기에 걸려 끙끙 앓았던 날 남편은 그날도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다. 남편은 회사에서 직장 상사에게 된통 깨져서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왔는데, 그날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는 친구 남편 연봉 얘기를 하면서 남편 잘 만난 친구를 부러워한다.


이 사소한 사건들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주고받으며 증폭되어 결국엔 서로를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그 친구가 약속시간에 20분 늦게 나와서 조금 화가 났다. 친구에게 그것을 따졌는데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냥 늦었으니 오늘은 내가 밥을 쏜다,라고 하면 될 것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거나 아니면 너도 예전에 늦지 않았었냐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그때부터 사소한 화는 그냥 지나가면 잊혀질 사소한 일이 아닌 커다란 분노로 증폭되기 시작한다. 서로 계속 과거에 상대가 잘못한 것을 끄집어내다가 결국엔 그날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고 만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 그냥 좀 재수 없었던 사건, 노력했지만 얻지 못한 결과, 누군가의 무신경한 말, 명절날 친척들이 하는 한마디,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당한 일, 생각하면 바보 같은 실수 등은, 사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혀서 결국엔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냥 두지 않는다. 찢고, 부수고, 재조립하고, 덧붙이고, 뒤집는다. 결국엔 원래 어떤 모습인지조차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괴상한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후 친구에게 보여준다. 원래 모습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친구는 그 기괴한 모습을 보고는 오히려 더 화를 낸다. 그런 인간이랑은 즉시 관계를 끊어 버려야 한다고 몹시 흥분해서 말한다.


내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끝없이 말하면서 복수심에 불타고, 나는 항상 왜 이 모양인지 한심해하다가 결국 우울해져 버린다.


그렇게 ‘별 일도 아닌 것’이 내가 불행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변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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