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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Aug 01. 2021

내 감정은 죄가 없다 #3

너는 안 그랬냐?

우리는 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나쁜 감정들을 붙잡고 증폭시켜서 결국 스스로 불행해지고 마는 것일까? 꽤나 머리도 좋고 이성적이며 충분히 논리적인 내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고 있을까?


남자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속으로는 좀 화가 나도 그냥 웃으며 “늦었으니까 오늘 영화 볼 때 팝콘 세트는 네가 사.”, 정도로 넘기지 않고 왜 그렇게 늦었냐고 화를 내게 될까? 그 결과가 결국엔 둘이 싸워서 영화는커녕 기분만 잔뜩 상해서 헤어지는 것으로 이어지고 마는데.


우리가 그렇게 이상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살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사소한 불행들이 겹치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이 시작점이다.


살다 보면 회사 동료가 배탈이 나서 휴가를 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사람 일까지 해야 하는 날, 식당에서 밥을 시켰는데 주문이 누락되어 한참을 기다린 날,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 나서 오후 내내 한 일을 날린 날,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이 그날따라 정기 휴일인 날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 일들이 일어난 저녁에 남자 친구와 영화를 볼 약속이 있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남자 친구가 30분을 늦게 온다. 이미 기분이 많이 나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그렇게 되면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 그날따라 안된다. 결국 심하게 화를 내고 만다.


만약 그 시점에서, 우리가 객관적 시점으로 자신의 감정 움직임을 알고 있어서 낮에 있었던 나쁜 일들, 그러니까 동료 일을 대신해야 했거나, 컴퓨터가 고장 나 파일을 날려먹은 일로 이미 많이 짜증이 나서 조금만 건드려도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상황은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런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이미 화가 폭발한 시점엔 그런 객관적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가 난 순간부터 목표는 단 하나,  내가 지금 화가 난 이유가 온전히 너의 잘못이라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남자의 입장에서 한번 보자. 일단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은 잘못이다. 퇴근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일이 터져서 바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리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오는 중에도 지하철 갈아타는 과정이 꼬여서 평소보다 좀 더 늦을 수밖에 없었다.


약속에 늦었으니 미안함을 느끼며 쫓기는 기분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여자 친구가 평소와 달리 많이 화를 낸다.


남자는 분명히 미안하긴 하다. 그런데 그 정도로 화를 낼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일단은 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변명을 한다. 하지만 여자의 화는 줄이긴커녕 변명을 하면 할수록 점점 커져만 간다. 결국엔 남자도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내고 만다.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우리는 비록 남자가 약속에 늦은 것은 잘못이지만, 여자의 반응이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여자는 그런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없다. 사실 그런 순간엔 그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제삼자이기 때문이다.


말싸움이 진행될수록 여자는 남자가 매우 큰 잘못을 했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그것을 위해서 1년 전 있었던 일, 3년 전 있었던 일들을 끄집어낸다. 남자라고 가만히 있을까? 똑같다. 과거 있었던 여자가 약속에 늦었던 기억을 줄줄이 꺼낸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서로를 이해시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까? 아니다. 결국 둘이 폭발하도록 만들고 만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왜 과거 얘기를 꺼내서 상황을 더욱더 나쁘게 만드는 것일 것일까? 그래 봐야 얻는 것은 결국 더 화가 날 뿐이며, 아주 운이 나쁜 경우엔 둘은 결국 헤어지고 말 것이다. 


동료가 배탈이 나고 회사 컴퓨터가 고장 나서 사랑하던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고 말았다.


이런 어이없는 결과가 생겨 난 이유는, 우리는 누구나 부정적 감정들을 느끼게 되면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그것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정 정당성 확보’라는 절실한 목적으로 인해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과정들을 통해서 느꼈던 상관없이, 일단 나쁜 감정을 느끼는 순간부터 그 감정이 정당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그것의 근거를 찾으려고 애쓴다.


내가 화난 이유를 상대방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단순하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그것이 내 탓이 아닌 네 탓이 될 수 있다. 너 때문에 헤어지고, 너 때문에 내가 아프고, 너 때문에 내가 손해가 된다. 법정에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안 그럴까? 그 사람 역시도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니 서로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주장해야 하니 과거 증거들을 끄집어낸다. 하지만 상대가 승복할까? 아니다. 그 사람은 더 오래된 과거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이 입에서 나와 상대방에게 전달될수록 해결은커녕 서로 화만 증폭되고 만다.


이런 일은 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싸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어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밤에 자기 전에 낮에 있었던 기분 나빴던 일을 곰 씹으며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평소에도 틈만 나면 그런 생각들이 끝없이 머릿속을 헤엄쳐 다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기분 나쁜 감정들이 정당성을 찾고자 하는 집착 때문에 사라지는 대신 오히려 증폭되고 만다. 물론 좋은 면도 있긴 하다. 잘 이용하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엔 반드시 치명적인 단점가 나타나게 된다.


다리가 무너졌을 때 원인을 조사하려면 그 다리를 직접 만든 시공자를 보내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별도의 전문가들을 보내는 것이 맞을까?



당연히 별도의 전문가를 보내야 한다. 다리에 대해서 제일 잘 안다는 이유로 직접 만든 사람들을 보냈다가는 설계 실수, 자재 문제, 시공 불량 등의 문제는 쏙 들어가고 과적 차량이 너무 많이 지나가서 다리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다.


자신이 느낀 기분 나쁜 감정의 원인을 스스로 분석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내가 감정을 느끼고, 내가 그 원인을 분석하는데, 처음부터 그 목적이 정당성 확보라면 과연 제대로 된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그 결과는 이미 처음부터 뻔하게 정해져 있다.


내가 정당해야 하니,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잘못은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내 잘못은 점점 사소한 것이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 감정이 정당해지는 결과는 얻었지만, 그만큼이나 상대방의 잘못도 커져서 결국엔 괴물이 되고 만다.


내 머릿속에서, 약속에 30분 늦은 남자 친구는 인간쓰레기가 되고 그로 인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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