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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Aug 07. 2021

내 감정은 죄가 없다 #9

논리 왕


미국의 UCLA 심리학과 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박사는 『Silent Messages』란 저서를 통해서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정보는 시각(몸짓, 표정) 55%, 청각(음색, 목소리, 억양) 38%, 언어(내용) 7% 라는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 할 때 내용 그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7%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 설명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도 매일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누군가 나에게 실수를 한 후 “미안해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상대가 사과하고 있는지 여부를 과연 그 내용 자체로 판단할까?


전혀 아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말투 그리고 표정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비웃은 표정으로 하면 그것은 사과가 아닌 오히려 나에게 욕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내가 말을 할 때는 자꾸 언어 자체, 그러니까 그 내용에 집착한다. 내가 사실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잘 말하면 상대가 내 의도를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말하는 내용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나의 진짜 목적이라고 착각한다.


상대가 약속 시간에 늦거나, 별 것도 아닌 내 부탁을 거절했을 때 화가 날 수 있다. 그때 우리가 진짜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화를 낼만한 정당한 이유를 상대가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일까?


일단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내가 느낀 화를 상대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이용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쓴다. 만약 성공할 수 있다면 기분이 풀리면서 기분이 다시 좋아질 것 같아서 그렇다.


일단 상대방이 찍소리를 못하게 만들면 기분이 좀 풀리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때 상대는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내가 약속에 늦거나 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서 진심으로 미안할까?


거꾸로 생각해보자. 어떤 일이 있었든 상관없이 상대방이 나보다 더 많은 지식과 더 그럴듯하게 설명을 해서 나를 압도해버리면 나는 그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상대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훨씬 더 논리적인 사람이니 인정하며 굴복할까?


아니다. 그때 우리는 오히려 패배감을 느낀다. 상대의 화려한 말발에 눌려 더 이상 따질 수는 없지만 결코 상대 감정의 정당성을 인정해줄 수는 없다. 단지 할 수 없으니 더 이상 따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겉으로는 승복하는 듯 보이지만, 마음속엔 복수심만 커져있다.

 

우리는 이런 결과를 원한 것일까?


전혀 아니다. 우리는 그저 나와의 약속에 늦거나, 별 것도 아닌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상대에게 그 사람이 나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로 듣고 싶은 말은 “아니야. 그건 너의 착각이야. 나는 언제나 너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 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얻은 것은 상대방의 복수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내가 늦은 날이나, 상황으로 인해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내가 들을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한 가족이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 남편이 자신의 수영실력을 믿고 아주 멀리까지 헤엄을 쳤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중에 안 아내가 남편에게 아주 크게 화를 냈다. 자기 수영실력을 믿고 바다수영을 하다가 얼마나 매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지 아냐고 따지고, 해안에서는 너울성 파도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데 그런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억울했다. 자신은 원래 매우 수영을 잘했고, 당시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서 충분히 안전성도 확보했다고 생각했기에 수영을 했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지나 간 일을 왜 지금에 와서 들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둘 모두 스스로는 사실에 근거했고 그럴듯한 논리도 있었다. 결국 서로 물러서지 않아 결국 크게 싸우고 말았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최초에 아내가 남편이 수영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가 듣고 싶었던 진짜 말은 무엇이었을까? 수영을 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남편의 사죄였을까?


아니다. 그녀는 다시는 자신을 두렵게 하지 않겠다는 남편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남편과의 갈등이라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자신이 최초에 느낀 감정을 잊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느낀, 남편이 사고를 당해서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금세 분노로 변했기 때문에 자신이 두려움이 아닌 분노를 느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하기 싫을 때 누군가 왜 안 하냐고 물으면 그냥 무서워서 못한다고 하면 상대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다. 무서워서 싫다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좋지 않은 이유를 대면서 하기 싫다고 하면 상대는 반대로 좋은 점을 말하면서 설득하려고 한다.


만약 아내가 그냥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당신을 잃게 되었을까 봐 너무 두려웠어요.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요.”,라고 말했다면 남편은 공감하고 그만둘 것이다. 하지만 바다수영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말 해기 때문에 남편은 거기에 대한 반론을 편 것이다. 남편은 잘못은 그저 아내의 두려움을 자극한 것인데, 그녀는 남편의 행동 그 자체를 비난하고 말았다.


최초에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할 때 공감이 일어난다. 두려움이나 슬픔과 같은 아이의 감정들이 전달될 때만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분노나 짜증과 같은 변형된 어른의 감정들은 반드시 그만한 근거와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납득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상대는 처음부터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런 사람을 설득해서 잘못을 인정시키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사실과 내가 펼칠 수 있는 논리로 상대를 승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실과 논리를 갖춘 것은 바로 ‘논문’이다. 논문만큼 치열하게 사실과 논거에 집착하는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일은 어떨까? 사실과 논리로 가득 찼으니 보고 이해하기 쉬울까?


전공 서적도 마찬가지다. 제품 설명서도 그렇다. 무엇이든 사실과 논리만 나열한 것들은 이해가 쉽지가 않다. 반대로 사실도 없고 논리도 없는 글들이 있다. 시나 수필이 그렇다. 그런 글들은 그저 창작자의 감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읽기가 쉽고 이해도 쉽다. 그저 그들이 전달하는 감정을 내가 공감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읽을만한지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지 정도만 결정된다.


그래서 실연을 당하고 나면 이 세상 모든 노래 가사가 다 내 얘기가 같아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들장미 소녀 캔디에 나오는 잘생김의 대명사 ‘테리우스’는 캔디와 강제로 헤어지게 된 후 타락해 술을 마신 채 삼류 극장에서 연기를 한다. 어느 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캔디는 그 무대에 찾아가 관객석 가장 뒤쪽에 서서 그런 테리우스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테리우스는 어느 날처럼 똑같이 술에 취한 채 연기를 하다가 착각처럼 울고 있는 캔디를 본다. 그 순간 테리우스는 갑자기 각성을 하고 제대로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연극 무대가 끝나고 캔디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날 무엇인가를 느낀 테리우스는 다시 원래 자신의 자리도 되돌아가 혼신의 연기를 하며 제대로 살아간다.


만약 이때 캔디가 테리우스를 만나 포기하지 말고 운명과 싸워야 한다고 설득하거나, 왜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냐고 ‘설명했다면’ 테리우스는 그 말을 받아들였을까?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테리우스 성격상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비아냥대면서 캔디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캔디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많은 말을 했다. 캔디의 마음에서 나온 침묵 속의 말들은 공간의 한계를 뚫고 테리우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제 우리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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