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찬우 Aug 29. 2021

너는 내 운명의 껌딱지 #10

너 먼저 내놔 바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무조건 한쪽만의 잘못일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부부가 겪어야 하는 수많은 갈등들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결혼의 의미는 세상살이가 그리 수월하지 않기에, 서로 마음이 잘 맞는 남녀가 함께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더해서 아이를 낳고 공동양육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하지면 결혼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남자는 믿음을 통해 여자에게 ‘보호’이란 행복을 제공하고, 여자는 믿음을 통해 남자에게 ‘인정’을 제공하는, 일종의 행복 교환이다. 그러니까 쌍방 신뢰를 기반으로 한 보호와 인정의 맞교환인 셈이다.


여자는 남자의 온전한 집중을 통해 행복해지고, 남자는 여자의 진심이 담긴 인정을 통해 행복해진다. 이 교환이 잘되는 부부일수록 행복하게 살아간다.


퇴근길에 옆집 여자가 힘들게 김장용 무를 나르는 모습을 보고 일을 돕고 온 남편은 기본적으로 선의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엔 ‘인정’에 대한 끝없는 욕구가 숨겨져 있다. 나보다 힘이 약한 존재를 돕고 나서 상대방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바로 남자가 원한 인정을 받는 순간이다. 그래서 만약 남자가 힘이 약했다면 그냥 못 본채 했을 것이다.


아내는 남편과 옆집 여자 사이에 이뤄진 거래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남편이 옆집 여자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받았는지를 아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자신과 이뤄졌어야 할 교환이 남편이 바쁘다고 해서 포기했는데 엉뚱하게도 옆집 여자와 이뤄졌으니 열불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창회에 나가서 잘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속이 상한 아내가 퇴근한 남편에게 그것에 대해 넋두리를 하는 이유는, 친구들이 자신보다 더 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남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그런 행복이 부럽다.


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너를 다른 남자랑 비교해보니 많이 부족해.”,라고 만 들린다. 인정을 받는 것을 갈구하는 남자가 그것도 가장 중요한 인정의 주체인 아내에게서 인정은커녕 무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니 삶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남편의 남을 돕겠다는 선의가 아내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와야 할 보호가 타인에게 간 것으로 느껴지고, 친구들이 부러운 아내의 마음이 남편의 입장에서는 무시로 느껴진다. 서로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크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된다. 이런 것들 쌓이다 보면 부부 사이의 깊게 파인 틈은 언젠가는 도저히 서로 건널 수 없는 상태에 놓이고 만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맞교환’이란 단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교환은 주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 처음부터 내가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줄 때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주지 않으면서 받기를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 부부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태도는 바로 ‘권리의식’을 줄이는 일이다. 남자는 보호를, 여자는 인정을 해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상대방이 나에게 줘야 할 것은 아니다. 만약 준다면 정말로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의 보호를 당연시 여기게 되면 남편의 능력을 다른 남자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가정에 소홀하다 싶으면 잔소리를 늘어놓고, 심한 경우 당신은 왜 그렇게 너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냐고 비난한다.


물론 옆에 있는 남편이 보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남편은  아내와 비슷한 또래이고 같은 시대를 살았다. 부모님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도 아내처럼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다. 물론 당신을 보호하는 일도 그 사람의 행복 중 하나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인정을 받는 일도 그 사람의 커다란 행복 중 하나이다.


정도가 심하다면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는 그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처음부터 남자의 성향이 외부에서의 인정을 받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면 제발 나가라고 시켜도 집안에만 있으려고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남자들의 경우엔 ‘밖에 나가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아주 작은 숨통이라도 틔어주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허락되지 않으면 남자들은 욕구가 실현되지 않는 불행을 경험하기 싫어서 욕구 자체를 만들어 내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삶을 가족을 보호하는 '로봇'으로 정의한다. 감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보호의 책임감만 자리를 잡고 만다. 덕분에 아내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최고의 존재를 얻긴 했지만 그 남자와 더 이상 '공감'을 할 수는 없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남편의 ‘보호’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 태도의 변화가 일어날 때 아내는 남편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남편의 노고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아내의 그런 진심 어린 감사함을 받는 순간 남편은 진정한 의미의 인정을 받는다고 느낀다.


남편은 그 감사함을 또다시 받고 싶어서 더욱더 노력한다.


아주 옛날에 TV 광고를 통해 한때 유행했던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라는 표현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여자의 감사함의 표현은 남자를 춤추게 만든다.


보호와 인정은 서로 찰떡궁합처럼 어우러진다. 딱히 서로에게 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남편이 언제나 아내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모습을 보이면 아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인정을 표현해준다.


문제는 그것이 권리가 되는 순간 주기보다는 받기만 원하게 된다는 점이다. 맞교환인데 서로 자신이 가진 것을 먼저 내놓지 않는다. 악당들조차도 마약과 돈을 거래할 때는 자신이 가진 가방을 상대방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진짜로 제대로 된 마약인지, 위조지폐가 아닌지를 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서로를 전혀 믿지 못하는 악당들도 그런 식으로 맞교환을 하는데, 서로를 가장 신뢰해야 할 부부가 서로 팔짱을 끼고 서서 “어서 나를 보호한다는 증거를 대봐. 그러면 내가 너를 인정해줄게.”, 하고 있거나, “어서 나를 인정해줘 봐, 그러면 내가 너를 보호해줄게.”라고 하고 있다.


누군가는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왜 꼭 상대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모든 거래는 나를 위해서 이뤄진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주는 일이 '자존심' 상한다. 주는 것도 없이 받기만 하고는 의기양양한 상대방의 모습을 꼴 보기가 싫다.


과거 한 때 분명히 상대방과 ‘함께 살만’ 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지금 같이 살고 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서로 멀어져 버린 것일까? 


이제 잠시 처음 그 순간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너는 내 운명의 껌딱지 #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