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로는 부족하니?
만약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아내와 남편 중 누가 더 원인 제공자일까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참 곤란한 질문이다. 어떤 답을 하든 한쪽에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둘 다 서로 잘못이죠.”라고 중립인 척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욕을 먹을 각오로 말을 하자면, 정말로 특이한 상황들, 그러니까 한쪽이 유난히 더럽거나, 게으르거나, 책임감이 없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거나, 사치스럽거나 하는 것 등, 인간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진 경우를 제외한다면 부부갈등의 대부분의 원인 제공자는 남자 쪽이다.
여자가 남편에게 원하는 ‘보호’는 오직 남편만이 해줄 수 있으며 실제적으로도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남자가 아내에게 원하는 ‘인정’은 반드시 아내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결혼 후에도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바라본다.
남자는 결혼 전 엄마와 친구의 인정을 통해 살아왔다. 이제 결혼을 해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아내의 인정을 통해 살아가야 하는 전환의 시점이 왔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결혼과 동시에 아내로부터 완전히 인정을 받았다는 착각에 결혼 전보다 더 엄마와 친구들의 인정에 집착한다.
엄마의 인정을 원하는 남자와 이제 늙은 남편 대신, 아니 그녀 역시도 평생 남편으로 제대로 보호를 받아 보지 못해 불안해서 아들에게 보호를 원하는 엄마는 찰떡궁합이 된다. 그렇게 결혼한 아들에게 ‘인정’을 통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요구하는 시어머니와 이제는 그 남자가 내 남편이니까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며느리 사이의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결국 억울한 것은 아내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이 있지 않은가?
남자가 결혼 후 인정의 주체를 아내로만 바꿨다면 생겨나지 않을 문제이다. 만약 엄마가 아들에게 집착을 하더라도 그것은 좀 짜증 나는 문제일 뿐 부부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고부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아닌, 중간에서 양쪽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눈치를 보는 아들이자 남편이다.
말은 꼭 부모님이라서가 아니라 늙으신 분들을 도와야 하는 책임감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나이를 한참 먹고도 여전히 ‘엄마’에게 인정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그 숨겨진 아이가 보일 때마다 아내는 불안해진다. 남편의 말처럼 그런 행동들이 정말로 ‘늙으신 분들’에 대한 책임감이라면 그 책임감은 왜 아내의 부모님인 장인, 장모님에게는 작동하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엄마의 인정’을 넘어선 남자들은 꽤나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의 인정은 남아 있다.
남자들은 인정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 결혼 후에도 결혼 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직장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원한다. 평일엔 직장 동료와의 인맥을 위한 술자리 때문에 늦고, 주말엔 주중에 힘들게 일했으니 취미생활을 하면서 쉬어야겠다는 명목으로 밖에 나간다.
자신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수 없이 많이 대지만, 남자가 원하는 것은 그저 ‘인정’ 뿐이다. 남자는 인정을 받는 곳에서 진정으로 행복하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서툴러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힘든 남자들은 정시 퇴근을 한다. 주말에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다. 그리고 아내의 껌딱지가 된다.
결혼 초반엔 아내는 밖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남편을 고쳐보려고 노력한다. 이제 내가 인정을 해줄 테니 그만 밖으로 돌아다니라고 한다. 사실 여자가 남자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인정이기 때문에 그만 나돌아 다녀도 될 듯하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이미 자신을 ‘충분히 인정’한 상대로부터 받는 인정은 그리 큰 자극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인정 대상을 찾다 다닌다.
거기에 정신이 팔려 여자가 원하는 신뢰를 주지 못했다.
꼭 필요한 제품을 하나 사야 하는데 한번 사면 반품이 거의 불가능하며 가격도 몹시 비싸다면 처음 그 제품을 고를 때 정말로 심사숙고를 하게 된다. 더해서 이미 결정하고 구매를 해서 써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단점들이 보였다고 해도 그 문제들이 결정적 문제가 아니라면 최대한 좋게 넘어가려고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이다. 그러다 보니 단점이 꽤나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못 본 척 무시하고 쓰기도 한다. 하지만 도저히 쓸 수 없는 순간이 되고 나면 그동안 쌓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만다.
여자가 남자를 고를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여자는 남편을 고르는 시점에 이미 충분히 심사숙고를 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남편에게 엄마나 친구들에게 집착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면 여자는 그 단점을 고치려고 하거나 보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수년간의 노력의 시간이 헛되이 끝나면 아내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폭발하는 순간이 오면 우린 어떤 행동을 할까? 마음 같아서는 때려 부수고 싶지만 너무 큰 비용을 들였기 때문에 참는다. 대신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수납장 깊은 곳에 처박아 둔다. 눈에 띄면 과거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후회가 생겨나면서 화가 치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남편의 보호를 포기한 아내는 이제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한다. 남편을 시댁에 반품을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어딘가 처박아 둘 수도 없다. 그러니 내 눈에서 지우는 방법밖에 없다.
사실 설령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도 남자가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다. ‘인정’의 행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엄마의 인정과, 친구들 사이에서의 인정과, 직장에서의 인정에 집착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남편에 대해 신뢰를 잃은 아내는 불안함에 바짝 말라버렸다.
아내가 ‘보호’를 원한다는 사실을, 아내는 그 언제든지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길’ 원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돈을 벌어다 주고, 집안일을 도와주고 나면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언제나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면 돈도 자신이 벌어도 되고 집안일 모두 자신이 해도 오히려 불만이 없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아는 남자도 별로 없고 심지어 여자들조차도 자신이 남자에게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내가 얼마큼 신뢰할만한 사람인가?’ 보다 그 사람의 재산, 그 사람의 능력, 그 사람의 외모, 그 사람의 집안, 그 사람의 직장을 우선순위에 두게 된다.
남자의 돈이, 직장이, 연봉이, 집안이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믿기에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