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의 인정이 필요해요
지금부터는 남자들이 ‘경쟁’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그런데 아마도 많은 남자들은 나는 그리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데?라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경쟁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남자들도 꽤나 많은 편이다.
하지만 사실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들은 둘 중 하나이다. 그 경쟁 대상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다고 해도 경쟁해서 이길 자신이 없을 때이다. 대상에 관심이 있으면서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은 그저 피하는 것이다.
이것을 비겁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경쟁이 처음부터 승자가 되길 바래서 하는 것인데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왜 쓸데없이 남을 승자로나 만들어 주는 경쟁을 하겠는가? 70대 노인이 20대 젊은이와 100M를 운동 삼아 함께 달릴 수는 있지만 순위를 두고 경쟁을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남자들이 경쟁을 해서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는 아예 따로 있다.
생각해보라. 게임에서 이기고, 당구를 이기고, 골프를 이기고, 농구를 이기고, 내기에서 이기는 것이 어떻게 삶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나마 직장에서의 승부는 이기게 되면 빠르게 진급을 하고 나중에 사장 자리에 오르기 때문에 이해라도 가지만, 게임, 당구, 골프, 농구, 자전거, 낚시에서 승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삶에 도움이 되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여 노력하는 것일까?
남자들이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렇다.
남자는 맘모스 사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서 받는 고기의 양이 달라진다. 또한 남자는 여자에게 얼마나 인정을 받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런 식으로 남자에게 있어 ‘인정’은 단순한 행복의 추구가 아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으며, 자식도 남길 수도 없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보호’가 그렇게나 중요한 생존의 조건이듯, 남자에게 있어서 ‘인정’은 생존과 생식 그 자체가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사실 인정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누가 나를 인정해주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때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해 줄 도구가 바로 경쟁이다.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에 운동을 잘하는 남학생은 수많은 여학생들로부터 눈길을 받는다. 이것은 오히려 성적이 일등이 남학생이 받을 수 있는 눈길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다. 성적은 그 승부가 나는 시점이 한참 후인 간접적인 경쟁인 반면, 운동경기는 그야말로 눈앞에서 당장 그 승부가 결정되는 직접적인 경쟁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모두 그런 순간을 꿈꾼다. 만약 꿈꾸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포기한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포기했다고 해도 그것이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얼마든지 자신이 유리한 경쟁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긴다.
맨 손으로 산을 오르고, 역사에 빠져들고, 요리를 잘하려고 노력한다. 그것 하나하나가 모두 다 '남보다 나은 나'를 목표로 한다.
남자들의 매 순간마다 자신이 얼마나 ‘인정’을 더 받을 수 있는지가 관심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도, 상대를 설득할 때도, 뭔가를 발표할 때도, 술자리에서 개똥철학을 늘어 놓을 때도 그렇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더 인정받는듯한 사람을 앞에 두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적대감과 열등감이 생기고 반대로 자신보다 덜 인정받는 듯한 사람이 있으면 호감이 생겨나며 우월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인정을 받는 사람이 ‘나를 꽤나 인정해주면’ 그 즉시 열등감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엔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난다. 또한 자신보다 덜 인정받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면 ‘아랫사람’을 더 인정받을 수 있게 이끌어 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잘난 상대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거나 심한 경우 무시하면’ 열등감이 엄청나게 심화되면서 상대가 이룬 모든 것들을 비판하는 ‘적’이 되어 버린다. 또한 자신보다 못났다고 느끼는 상대가 자신의 잘남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매우 어처구니가 없어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심한 혐오와 적대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남자들의 관계는 수평적인 여자들과는 달리 수직으로 서열화된다. 주변 사람들을 가능하면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들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눈다.
남자들이 태어나 최초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존재는 바로 ‘엄마’이다. 물론 아빠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어린 시절엔 남자 역시도 여자만큼이나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수많은 두려움의 감정들을 ‘공감’해주는 엄마의 존재가 해주는 인정은 생존 그 자체로 느껴진다. 엄마의 인정이 바로 자신에 대한 ‘보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이 되면 그 대상이 친구들에게로 바뀐다. 그 시절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그래서 그때부터 경쟁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후 모든 행동이 다 경쟁이고 이기려고 한다. 그 대상도 다양하다. 운동 경기, 게임, 성적, 더 많은 경험, 강함, 심지어 잉여스러움도 경쟁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오면 그 대상의 폭이 확연히 줄어든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성공, 돈, 권력과 같은 것들만 경쟁의 대상이 된다. 소위 ‘머리만 좋아서 학창 시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찐따’들의 반란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많은 남자들이 좌절을 경험한다. 이제는 축구만 잘한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다행스럽게도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내’의 등장이다.
사실 한 여자의 남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일이다. 남자와 달리 한번 선택하면 돌이키기 힘든 여자들은 정말로 많은 것들을 따져보고 남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여자의 남자가 되는 것 자체가 남자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인정’을 받는 일이다.
남자가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대상이 최초의 엄마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아내로 바뀌어 간다.
이제는 아내의 인정만 제대로 받아도 살아갈 만한다. 그런데 반대로 결혼 후에 아내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남자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는 단지 그날 속이 상해서 친구들의 행운을 부러워했을지 모르지만, 남자의 입장에서는 원하는 인정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무능력한 자신에 대해서 다시 떠올리는 계기로 작용하고 만다.
인정을 받고 싶지만 못 받는 것도 자체도 힘든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인정은커녕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이때 남자들이 받는 상처는, 여자가 다른 여자와 부딪혀 다쳤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다른 여자의 상처를 살피면서 자신이 덜 다쳤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약국에 가서 소독약을 사 오라고 지시를 하는 상황과 같다.
실제로 남편이 무능할 수도 있고, 상대방 여자가 확실히 더 다쳤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인정을 원하는 상대방을 인정은커녕 무시를 하고, 보호를 원하는 상대방을 보호는커녕 다른 사람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모습이고 있다. 당장 보기엔 합리적인 판단일 수는 있지만, 사실 그 어떤 행동보다 비합리적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원하는 것에 정확히 반대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