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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Sep 08. 2021

이제 좀 같이 가자

우리는 가끔, 삶에서 미묘하지만 사실은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함을 느낀다. 그런 문제들은 딱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에 막막하고 심한 경우엔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는 없으니 해결책이 있는지 찾아보려 애쓴다.


누군가 무심코 한 농담에 웃지 못하고 상처를 받고, 누군가 얻은 행운에 축하를 하는 마음보다 질투심이 나고, 누군가 잘난 모습을 보면 호감보다는 열등감을 느낀다. 누군가 나를 칭찬해도 마냥 좋아하지 못하고 그냥 하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하고, 누군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의심부터 하며, 가끔 나와는 달리 순수한 감정 속에서 반응하는 사람을 보면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생겨난다.


그래서 이것만 해결하면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존감을 높이는 법,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상처 받지 않는 법, 대화를 잘하는 법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심리학이나 철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이 내려가서 ‘나는 왜 사는가?’라는 식의 존재적 질문 앞에서 선다. 하지만 질문이 단순해질수록 답은 오히려 더 모호해진다.


다행스럽게도 시중에 파는 많은 책들이나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많은 강연에서 자존감, 인간관계, 상처, 공감 등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준다. 그것도 꽤나 쉽고 명확하게 해 주기 때문에 이해는 쉽다. 단지 늘 그렇듯 그런 이해를 실제 현실에 옮기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그나마 그런 문제들이 내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 달라붙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누가 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내 월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해결하면 좋겠지만,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삶 자체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단지, 그렇게 살면 행복하기 힘들 뿐이다.


다리가 부러진 문제는 아파서 견디기 힘드니 모든 일을 제쳐두고 병원에 가겠지만, 행복하지 않은 문제는 반드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끔, 아니 꽤나 자주 마음속이 시끄럽다. 결국 또다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미 경험했던 과거가 또다시 반복될 뿐이다.


왜 그럴까? 그동안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는데 왜 그 문제들은 해결이 되지 않을까? 정말로 답답하다. 정말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운명인 것일까?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다. 그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아서 그렇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니?” 그래, 그런 반응이 충분히 나올만하다. 행복하지 못해서 답을 찾고 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행복하지 않아서’ 라니, 정말로 한 대 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진짜 그렇다.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충분히 행복해지면 자존감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충분히 행복하면 상처도 잘 받지 않고, 질투심도 안 느껴진다. 충분히 행복하면 열등감을 느낄 일도 없고, 누가 칭찬해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충분히 행복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부러워했던 ‘맑고 순수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된다.



내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행복해지면’ 그런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뜻이다. 돈에 진짜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돈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돈이 아주 많으면 된다.


정말로 그렇다면, 수많은 개별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우선 행복해지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생각엔 여전히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아주 쉽다. 따로 많은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믿고 있는 내 삶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으면 된다. 좀 더 풀어서 표현하면, 내가 이미 가지고 있다고 것들이 당연히 내 것이라는 권리의식을 버리고 나에게 주어진 감사한 선물이라고 여길 수 있으면 된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기를 ‘거부’한다. 하지 못하거나, 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하기를 거부한다. 분명히 행복해질 수 있지만 갑자기 급 정색하는 얼굴로 거부한다.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하지?",라고 화를 낸다.


당연하다. 내가 지금 불행하다면,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인데,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들조차도 내 것이라는 정당성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그것은 기분 나쁨을 떠나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설령 그러고 싶어도 잘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그렇게 변한다면 나도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들 자기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경쟁하는 마당에 나 혼자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겠는가? 모두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나 혼자 평화를 위한답시고 총구를 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진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다고 믿어도 내가 가진 것들이 그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혼자서는 평생 노력해도 비닐봉지 하나조차 못 만드는 내가, 인류라는 거대한 등에 올라타서 얻은 것들이다. 그나마 내 몸뚱이 하나 정도만 내 것인데, 그것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닌, 내 부모님이 만들었다. 부모님의 몸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분들은 또다시 그분들의 부모님이 만들었다. 그 누구도 홀로 만들어진 존재는 없다. 또한 그 어떤 것도 혼자 힘으로 얻은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 그저 전체의 일부로써 태어나서 살아가다가 죽는 과정 중에 갖게 된 모든 것을 잠시 빌려 쓰다가 반납하는 것이다. 거기에 내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진실은 이미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면 나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거부한다. 내 안에 있는 피해의식이 그것을 막는다. 이미 수많은 손해를 입으며 살아왔는데 힘들게 노력해서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는 없다.


행복해지기만 하면 다 해결될 문제들을, 행복해지기 위해서 꼭 쥐고는, 결국 해결하지 못해서 행복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정말로 내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내려놓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내가 먼저 앉은 공원의 벤치부터, 내가 힘들게 배워서 기억하고 있는 지식들, 내가 성과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내가 가진 능력들, 내가 힘들게 농사지은 텃밭의 수확물까지 모두 다 내 것이라는 당연함 대신 내가 그것들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도 다행스러운 감사함으로 채우면 된다.


이미 가진 것들을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한 시선을 바꾸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미묘하지만 사실은 심각한 모든 문제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해결되고 만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권리와 당연함 내려놓을수록, 자연스럽게 나는 점점 우리들 중 일부가 되어 간다. 그동안의 흐름과는 반대로 '나의 시대'가 '우리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들 모두 그동안 혼자서 많이 힘들었다. 삶을 완전하게 만들려고 그 많은 힘든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삶은 원래 처음부터 완전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삶은 그저 우리가 함께 함으로써 '온전해지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온전함'을 '혼자 하는 완전함'으로 아주 오랫동안 착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그러니 스스로 완전하지 않다고, 왜 그렇게 수많은 것들을 갖지 못하냐고, 왜 그렇게 능력이 없냐고 자신을 비난하지 마라. 그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닌 그저 타고난 숙명이다. 너와 나는 원래 각자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함으로써 온전해져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자신에 대한 비난의 시선을 거두고 그만 앞을 봐라. 거기엔 누군가 당신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 것이다. 아직 확신이 없어서 당연히 머뭇거리게 되겠지만, 그냥 두 눈 딱 감고 그 손을 잡아 보자. 그 손을 잡고 한참을 걷다가 보면 당신도 언젠간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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