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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Sep 13. 2021

단 한 권의 책만을 쓴 작가

누구나 그럴수밖에 없다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습니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워낙 유명해서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책이름을 들어 본 분은 꽤나 많을 것입니다. 


이 책에 관해서 개인적으로는 좀 흥미로운 뒷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이 책을 쓴 작가 넬 하퍼 리(Nelle Harper Lee)는 평생 이 책 단 한 권만을 출판했습니다. (나중에 그녀 사후에 아주 오래전에 써놨다는 파수꾼이란 책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 그 글은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 원고였기 때문에 책이라고 부르긴 좀 그렇죠.)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입니다. 그 유명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쓴 작가는 평생 딱 이 책 한 권만 쓰고는 2016년도에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꽤나 특이합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가, 평생 단 한 편의 책만 낸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절필을 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몇 번의 새로운 소설에 대한 시도는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그녀는 왜 더 이상 책을 출간하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출판사에서는 끝없이 연락을 했을 텐데요.


미국의 인기 다작 작가 스티븐 킹은 그런 그녀를 두고 “처음에 너무 대박을 쳐서 다음 걸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합니다.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단지 저는 스티븐 킹의 입장처럼 비난의 뉘앙스보다는 그녀가 단 한 권의 책밖에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책은 사실상 단 한 권일뿐이며, 하퍼 리는 행운이면서도 불운으로 첫 번째로 출간한 책이 바로 그 책이 되었던 것이죠. 그러니 그녀는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작가가 쓴 책에는 자신의 삶이 온전히 녹아들어 가야 하는데, 우리는 단 한 번만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단 한 권의 책만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답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런 책을 낸 후에도 여전히 글을 쓴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미 쓴 책의 부록이나 각주 정도에 해당될 것이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즐겨보는데, 그분의 작품들도 첫 작품이었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후엔 같은 대상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모든 것이 함께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쓴 책에도 그 고유한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죠. 만약, 한 사람의 삶과 그 삶이 가진 고유한 개성이 온전히 제대로 녹아들어 간 글이 쓰였다면, 그 책은 아마도 그 작가에게만큼은 절대로 다시 쓸 수 없는 유일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마치 평생 위대한 작품을 그리겠다고 큰소리치다가 결국 죽기 전 마지막 잎새를 그렸던 베이먼처럼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보면 자신만의 첫 번째 책을 쓰는 일은 참 무섭습니다. 평생 동안 그런 책을 쓸 수 있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렵지만, 운 좋게 쓰고 나도 그 후 다시는 그만한 책을 쓸 수 없으니까요. 그나마 억지로라도 쓴다면 같은 내용이지만 그 사이 좀 더 쌓인 경험의 힘으로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글은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 1월쯤 한 권의 책을 썼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쓴 글들이라서 출간을 해보고 싶었지만, 글의 범용성의 부재와 쓰기 능력 부족으로 인해서 쉽지 않더군요. 포기하고 그냥 묵혀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브런치 사이트를 알고는 정리해서 올리기 시작했죠.


저는 원래 한 편의 글을 길게 쓰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브런치 사이트는 대부분 짧게 올리더군요. 그래서 저도 짧게 잘라서 올렸습니다. 글을 그렇게 쓰니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짧은 글이라서 부담이 없으니 쓰고 나서 반복해서 표현이나 문맥 등을 고쳐 쓸 수 있게 되더군요. 저는 그 과정에서 꽤나 강한 집중을 경험했습니다.


지난 두 달 반 정도의 시간이 저에게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네요.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뭔가를 쓰는 것은 저만의 ‘첫 번째’ 책이 그저 반복될 뿐이니까요. 그래도 저 개인적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종류의 글 말고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점입니다.


운 좋게도(?) 소설은 제 전문분야가 아니니 아마도 평생 동안 저만의 작품이라고 꼽을만한 글을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마음껏 써도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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