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녀야 했을까
여자의 큰 아이는 세 살 때 네 살 위 형을 잃었다.
"엄마, 전석이는 왜 말을 안 해?"
보자기 자락을 어깨너머로 펄럭이며 동생과 슈퍼맨 놀이를 하던 전상이는 오른쪽 눈에 안대를 붙인 채 여자에게 물었었다.
아침에 멀리 뽀뽀를 하며 나갔던 형이 안 돌아오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놀이방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혼자 맡겨진 채 있다가 아빠가 데리러 와서 같이 갔을 곳, 일곱 살 형의 장례식장. 엄마는 무엇을 하는지 저를 챙기지 못했을 테고 누구의 손에 맡겨져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여자는 장례식장에서의 아이를 도통 기억해 낼 수 없다.
누군가의, 아마도 여자나 여자의 남편일 수 있겠지만 여자에겐 기억이 없다, 손을 잡고 화장터에 따라갔다가 형의 뼈가루가 든 하얀 항아리를 차에 싣고 분당 차병원에 갔겠지. 아토피 검사 예약이 있다며 여자는 또 그걸 챙겼었다. 거기서 여자는 의사 선생님께 아이의 형이 죽었다고 말하며 울었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 여자는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움을 느꼈었다. 초등 입학은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아이 인생의 첫걸음일 텐데 그러질 못했었다. 흔히 말하는 한글도 못 떼서였을까. 그 어떤 불안이 여자를 그리 날 서게 했을까.
첫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물똥을 자주 싸서 엉덩이도 자주 헐었었다. 여자가 몸을 풀었던 시댁의 시어머니가
"니 젖은 메젖이여."
하시며 분유를 사다 타 먹이셨었는데, 여자는 또 그게 그리도 서러웠다. 자라며 감기도 자주 걸리고 배도 늘 아프고 양쪽 시력이 차이가 심해 좋았던 눈인 오른쪽 눈을 안대로 가렸던 첫 아이 전상. 유치원 때부터 한글을 어떻게 익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느새 책을 읽고, 영어 책을 여자와 같이 외워서 잘 때마다 누워 서로 대사를 주고받곤 했던 아이. 그러다 떠난 아이였기에 여자에게 이제는 첫째가 된 전석이의 느린 속도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통통하게 태어나 여자의 젖을 잘 먹고 황금 똥을 누었던, 친정 엄마가 여자의 집으로 와서 산바라지를 해주셔서, 산후 행복이 이런 거구나 느끼게 해 주었던 둘째 아이.
여자는 전석이 말이 늦고 배움이 늦은 걸 형을 잃은 충격 때문이라 믿고 싶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배움의 요구가 가속화될수록 아이의 화장실로의 도피 시간이 길어졌다. 내과도 가고 대장 항문 외과도 다녔다. 기어이 원형 탈모도 오고 턱을 돌리는 틱도 왔다.
휴일의 짧은 외출에서도 찻 속에서 구구단을 외우느라 숨을 몰아 쉬었을 아이.
여자는 결국 아이를 데리고 국도 옆 정신 병원을 다녔다. 한 시간 놀이 치료 후 십분 엄마 상담. 여자에겐 그 시간이 자신의 진료 시간이란 걸 모르지 않았을 터.
레테의 강이라도 건넌 걸까. 어째 한국에서의 일은 이제 여자에게 너무나 까마득한 일이 되어 여자의 뇌리 속 기억이란 게 대체 맞는 것인지 스스로 의문을 던질 뿐.
이 아이는 가끔 손을 둥글게 모으고 고개를 쭉 내밀며 여자에게 말한다.
“자, 이렇게 해볼까요? “
놀이 치료, 미술 치료한 이야기다.
‘그래, 그때 약도 같이 먹었지.’
여자는 그때의 아이에게 속죄를 한다. 또 그때의 여자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엄마 그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 밀어서 자전거에 이마 부딪혀서 찢어졌었잖아. 나한테 소리도 지르고. “
여자는 그저 말한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때의 나를 용서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