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이십삼년 전

by 이강련

목소리가 들렸다.


‘어, 분명히 유치원 갔을 시간인데?’

여자는 목을 빼 소리가 들리는 부엌 창 밖을 내려다 봤다. 또래 아이들이 막 유치원에 가는지 재잘거리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보다.’

그러고는 책상으로 돌아 와 밤 새 써서 보낸 보고서, 수신 확인하고, 작은 녀석 마저 아침을 챙겨 먹이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강전상 어린이 집이지요?”

그 후의 일은 무엇이 먼저인지 여자에게 또렷한 기억이 없다. 여자는 작은 아이를 생전 안가본 옆 동 1층 놀이방에 맡겼고, 택시를 탔고, 병원 응급실에 들어 갔고, 응급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소리내어 울고있는 유치원 원감 선생님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의사 선생님한테 끌려 들어가 어느 방 의자에 앉혀졌고, 아이를 보여 준다는 말을 들었고, 보여 준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장황하게 사고 경위를 늘어 놓는 의사 말을 자르고 전상이가 죽었냐고 물었고, 어디냐고 물어 커튼이 쳐진 그 방으로 커튼을 젖히고 들어갔다.

낯익은 바지와 운동화가 비닐 봉지에 쌓여 침대 바닥에 놓여 있었고, 아침에 손바닥 뽀뽀를 하며 보낸 아이가 침대 위에 낯설게 누워있었다. 다리 살은 찢어져 뼈가 보였고 골격은 비틀어졌고 이가 돌출되어 있었다. 피가 뭍은 채 아직 차갑게 식지 않은 그 아이를 그 때 꼭 못안아 준 게 여자는 내내 후회가 되었다. 사실 만지기가 무서웠다.

응급실 바로 아래 병원 장례식장이 있다는 편리함도 그 때 알았다. 이틀 후 다시 만난 꽁꽁얼린 아이. 비틀어지고 찢어진 몸으로 꽁꽁 얼린채, 참 안어울리는 수의를 입은 아이. 저렇게 작은 수의도 있다니, 수의를 원망하며 동태처럼 얼린 그 아이를 여자는 그제야 꼭 안아주었다.

이 세상 떠나기 전, 그래도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라고 인사하고 간 아이. 부엌 창 밖으로 여자를 불러내 보고 간 아이.

‘다음 생엔 나 보다 더 좋은 엄마, 더 좋은 세상 만나렴.’


여자는 되뇌이고 되뇌었다. 그 말은 사실,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내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빌고 또 비는 염원이자, 여자의 죄책감을 극대화하는 죽비였다.

어린 자식을 못 지킨 죄인이라도 밥 먹자고 불러내 재미있는 얘기 해주고, 웃게 만드는 친구들이 여자는 그 때 참 고마웠다. 멀리서도 장례식장에 와준 분들 목록을 여자는 23년이 지난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여자는 자신을 보고 조심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던 주위 사람들, 또 어쩌다 만나도 무슨 말을 할 지 몰라 한 마디도 못하고 있다가 여자가 먼저 자리를 떠야했던 사람들, 또 멀라서 보고 모른 척 돌아가고, 여럿이 얘기하고 있다가 여자가 지나가면 말을 멈추고, 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냥 같이 있어주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밥 먹고, 그래주는 사람들이 참 고마웠다. 그 시간 만이 하루 중 유일하게 울지 않는 시간이었다. 같이 있고, 같이 먹고, 같이 오래 얘기하는 것, 혼자 두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이란 것도 이 멀리 뉴질랜드 와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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