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pinpi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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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이 떠나고 여자가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울었던 곳. 여자의 데이즈 친구 불살러, 아이디만 생각나고 이름이 가물가물한, 가 디자인해서 선물해 준 개인 웹페이지.
전상이 떠난 다음 해인 2002년부터 시작해서 여자가 아이들과 뉴질랜드에 온 2012년, 그리고 3년 더 유지하다가, 13년 만에 도메인 갱신 및 개인 웹사이트 유지를 포기했었다.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아니기도한 여자.
물론, 현재 17년째 유지 중인 네이버 블로그의 과거 글을 볼 때도, 과거의 여자에게 지금의 여자가 동의 못하는 게 많은데, 그때의 글을 보면 과연 어떨지, 사실 여자는 자신 없다.
전상이는 여자 부부가 결혼한 다음 해인 1995년 6월 10일 토요일 아침 9시 28분에 태어나, 정확히 6년 6개월을 살고, 2001년 12월 11일 화요일 아침 9시 28분에 이승을 떠났다. 전상이 떠난 지 일 년 반 후인 2003년에 여자는 지금 작은 아이를 얻었다.
사고 후 한국에서 11년을 더 살다, 지금 큰 애 중학교 2학년 올라가기 직전인, 2012년 12월 11일,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4년 기러기 생활을 했다. 남편은 뉴질랜드에 2016년에 합류했다.
날짜를 나열해 보니 그 어떤 의도도 없었는데, 여자에게는 마치 숙명인 듯 느껴진다.
6년에다 6개월을 더 살다 갔기에, 당시 전상이가 혼자 건널목을 건넜어도 법적으로 부모 책임이 아니란 것을 여자는 그때 알았다. 사거리 건널목을 혼자 건너게 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란 것도 그 때야 알았던 무식하기 짝이 없던 엄마였다.
분당 신도시 효자촌 사거리 건널목의 신호등과 횡단보도, 우회전 체제 등이 그리 위험했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도 최근 페친님 포스팅을 보고서 알았다. 당시 한국이 OECD 국가 중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 1위 국가란 것도 여자는 그때 알았다.
일곱 살, 세 살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파트타임 방송국 일에 목숨 걸고, 밤을 새워 일을 하고, 그래서 그날 아침에 유치원 등원 길을 같이 따라나서지 않은 일이 용서받지 못할 일인 것도 그때 알았다.
그때 찍어 인화한 사진을, 언제 저 사진 두 장을 찍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는 지금도 다이어리에 넣고 다니는데, 어떻게 저런 횡단보도가 있을 수 있는지, 지금 보면 놀랍기만 하다.
사고를 냈던 마을버스 운전기사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여자 혼자 죄인이 되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에서 수사망이 옥죄어오자 몇 개 있지도 않은 냉장고 음식물을 빼내더니 아서가 그 안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닫는 장면이 있었다. 여자는 그 심정을 이해했다.
월드컵 개최, 4강 진출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2002년, 여자는 남은 작은 애, 지금의 큰 애를 데리고 이불장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아 양팔을 뻗어 장롱문을 닫고 세상의 빛과 소리를 차단했다. 여자는 장롱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보며 전상이가 누웠던 관 속이 이랬겠단 생각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