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들의 전쟁터', 실험실 고기
내 일생동안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바보 같은 말인데요?!
실험실 고기를 생산하는 이스라엘 기업 '퓨처미트'의 창업자이자 최고 기술 책임자인 야코프 나미아스 교수는 처음 실험실 고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었을때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당시 나미아스 교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대학에서 생물공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캠브릿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캠브리지는 하버드대학교, MIT 등이 있는 대표적인 교육도시다.) 찰스 강변에 있는 피츠 커피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에게 한 무리의 미국 연구자들이 찾아와 그에게 배양육에 관련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나미아스 교수가 이것이 '바보같은 소리'였다고 생각한 것은 세포를 증식시키는 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나미아스 교수는 "대부분의 유기체는 자신의 배설물을 수단으로 성장을 하는데, 배양육은 크기가 큰 상태까지 도달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증식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생물학 권위자인 나미아스 교수에게도 황당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유레카'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아이디어를 들은 후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줄기세포'로 만드는 실험실 고기
나미아스 교수의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은 '미분화 섬유세포'였다. 우리는 황우석 박사가 연구했던 '줄기세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고 있는 그 세포다. 분화가 되기 전 상태의 세포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분화 및 증식이 가능하다.
과정은 이렇다. 우선 소와 돼지 등 가축으로부터 조직세포를 분리해내야한다. 그 후 조직세포 내에 있는 줄기세포를 추출한다.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약 6주간 배양해 근섬유를 만들고, 지방을 혼합해 고기 형태의 모양이 갖춰진다.
실험실 고기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미국 회사 멤피스 미트의 데이비드 케이 매니저에게 배양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세포를 추출한 후 아미노산과 당분 등 영양성분을 주입해가며 고기를 배양한다"며 "맥주 공장에서 맥주를 만드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나미아스 교수는 미분화 섬유세포를 이용해 작은 분자를 분화시켜 지방 세포나 근육 세포로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지방이나 근육 세포가 자라기 시작하면 특수한 합성 수지(레진)를 함께 배양해 세포가 큰 크기로 증식되는 것을 방해하는 '필요없는 재료'들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나미아스 교수는 이스라엘의 바이오회사인 이보젠에서 비즈니스부서 디렉터를 맡고 있던 롬 크슈크(Rom Kshuk), R&D 전문가인 모리아 시모니 박사와 함께 퓨처미트를 창업했다.
2019년 10월 미국 시카고를 기반으로 한 S2G벤처스, 스위스 회사인 에메랄드 테크놀로지 벤처스, 미국 최대 육류 회사인 타이슨푸드의 투자 자회사 타이슨 벤처스, 중국계인 비츠&바이츠 등으로부터 1400만달러(166억원)의 투자를 받은 이스라엘 스타트업 퓨처미트테크놀로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실험실 고기는 기본적으로 줄기세포를 사용한다. 생물학, 수의학적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때문에 실험실 고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구자들이다. 의사 또는 생물학 교수 등을 하다가 학교를 나와 창업을 하거나 여전히 학교에 남아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소 배양육을 만들어낸 마르크 포스트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교 교수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는 줄기세포 배양방식으로 만든 소 배양육 햄버거패티를 세상에 내놨다. 그는 네덜란드 정부와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스타트업 '모사 미트'를 세웠다. 멤피스 미트의 우마 발레티 창업자도 심장학을 전공한 의사 출신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같아. 하지만 고기를 포기할 수 없어.
실험실 고기를 만드는 회사들의 문제의식과 취지는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회사들과 거의 같다. 과도한 축산업, 공장식 축산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식량난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 등이다. 때문에 이들도 일반적으로 생산되는 고기와 실험실 고기를 비교하며 "배양육 생산은 토지와 물 사용량을 9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채식주의자는 별로 없어보인다. 창업자들은 오히려 고기를 매우 사랑하는 '미트 러버'에 가깝다. 고기를 포기할 수 없기에 '식물성 원료로 아예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실험실에서 완전히 똑같은 고기를 재현해내는 것'을 택한 사람들인 셈이다.
멤피스 미트의 창업자 우마 발레티 박사가 한 인터뷰에서 소개한 창업의 계기를 살펴보자. 인도 남부 비자야와다에서 태어난 그는 실험실 고기 생산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12살 때의 잔인한 경험에서 찾는다.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잔인한 방식의 도축을 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갈등이 시작됐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JIPMER 메디컬 스쿨에 들어간 발레티 박사는 대학생 시절 잔인한 도축을 두번째로 목격했다. 갈등은 깊어졌다. 발레티 박사는 이같은 경험에도 '고기를 먹는 것을 그만두는 것'은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한다.
발레티 박사는 메디컬 스쿨에서 심장학을 전공했다. 이후 자메이카를 거쳐 미국에 온 그는 미네소타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심장 근육을 재생하는 연구를 했다. 심장 근육을 재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험실 고기의 근섬유를 만들어내는 것과 유사했다.
발레티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의 고민을 끝내기로 마음먹은듯했다. 발레티 박사는 줄기세포 생물학자 니콜라스 제노비스, 생물의학 엔지니어이자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지역에서 바베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윌 클렘을 만나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세 사람은 2015년 멤피스미트를 창업했다. 그리고 2017년 세계 최초로 배양육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내놨다.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투자회사들은 이들을 주목했다. 멤피스미트는 곧 25만달러의 초기 투자금을 받아 사무실을 멤피스에서 실리콘밸리로 이전했다. 2017년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세계 최대 곡물회사인 카길 등으로부터 17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미국 최대 육류회사 타이슨푸드의 추가 투자를 받아 총 투자 유치 금액은 2000만달러를 넘었다.
문제는 가격,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멤피스 미트의 실험실 치킨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놀랐던 것이 닭을 키우지 않고도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품만큼이나 놀라웠던 것은 가격이었다. 1파운드(0.45kg)의 고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1만8000달러(약 2035만원)였다. 일반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실험실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포스트 교수가 2013년 첫 햄버거를 생산했을 때도 같은 반응이 나왔다. 당시 배양육 햄버거 가격은 33만달러였다. 햄버거 하나에 무려 3억7000만원이었던 것. 지금은 많이 떨어졌지만 패티 1장에 500유로라는, 여전히 비현실적인 가격이 붙어있다.
멤피스미트와 모사미트, 퓨처미트 등 실험실 고기 생산 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품질을 높이는 것 이상으로 생산비를 낮추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멤피스 미트는 2018년 파운드당 생산비를 2400달러(271만원)으로 낮췄다. 멤피스미트는 2021년이면 시장에 출시 가능할 정도까지 생산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비드 케이 멤피스미트 매니저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 "비용과 맛, 두가지 부분에서 경쟁을 못한다고 생각하면 사업을 아예 그만두는 게 낫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퓨처미트는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과 수치를 언급하고 있다. 나미아스 교수는 세포 증식 과정에서 사용되는 소 태아 혈청을 대체하면 가격을 낮추기가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소 태아 혈청은 배양육을 증식할 때 꼭 필요하다. 그러나 생산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싸다. 퓨처미트는 소 태아 혈청을 중국햄스터난소세포(CHO)에서 파생된 작은 분자로 대체하면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퓨처미트는 세포를 배양할 때 사용하는 바이오 리액터도 자체 개발했다. 퓨처미트에 따르면 이 바이오리액터는 14일마다 0.5톤의 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 단순히 계산하면 한달에 2마리의 소를 도축해서 얻을 수 있는 고기 양을 얻을 수 있다. 실제 소를 기르는 데 12~18개월이 걸린다는 것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상당히 높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퓨처미트가 생각하는 단가는 2년 후 1파운드 당 10달러다. 1kg당 생산비가 2만5000원 정도까지 떨어지는 셈이다. 12월26일 기준 축산물품질평가원 기준 한우 지육경락가격이 1kg당 2만4171원(최고가 기준)정도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시장성이 있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푸드테크라는 말이 식품과 기술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실험실 고기는 식물성 고기에 비해 '푸드'보다는 '테크'가 더 강조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줄기세포를 활용해 배양육을 구현하는 기술 과정 자체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물로 생산된 배양육 자체는 식물성 고기보다는 더 익숙한 고기맛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식물성 고기가 고기와는 다른 재료로 최대한 비슷한 맛을 구현해내는데 집중한다면, 실험실 고기는 고기와 같은 재료로(그러나 외양간과 사료는 없이) 아예 같은 맛을 재현해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직 실험실 고기는 '상상속의 음식'이다. 일부 연구자들만 맛본 정도이기 때문이다. 투자금액을 봐도 수억달러를 유치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식물성 고기 회사들에 비하면 미미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분야에 대한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지 않다. 식품회사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움직임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실험실 고기를 본격적으로 생산해보겠다는 연구자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실험실 고기 회사들은 모두 2021년을 실험실 고기의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잡고 있다. 미래의 밥상에서 실험실 고기는 어떤 모습으로 놓여있게 될까?
by Jo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