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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Newyorker May 15. 2020

증오의 언어 결국에는 분열을 키운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빚어낸 코로나라는 괴물 이론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세계 경제를 짓누르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미중 무역 분쟁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세계인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의 고래 싸움에서 새우로 전락했던 많은 선진국가들이 피해를 입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이라는 중요한 전환점과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싸움에서 부산물로 발생했던 분열의 언어가 세계를 뒤덮은 상황에서 연대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던져준 것이다. 

혹자는 이를 신의 시험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인류가 받아들여야 하는 대가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는 지난 문명 기간 동안 끊임없이 경고를 보낸 자연에 단 한 번도 공동의 대응을 해 보지 못했다. 어렵사리 마련했던 파리 기후 협약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력화로 끝났고, 세계 문화 패권의 소용돌이에서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갖던 서양은 스스로 국수주의를 택하면서 신자유주의 또는 자국 중심주의라는 패단에 빠지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그러했으며, 영국이 그러했고, 다행히 프랑스는 그러한 패단으로 가던 길에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정권이 등장 하긴 했다. 어찌 되었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들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컸으며, 자유주의 또는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진 국가들의 피해는 지금도 그 첨탑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것은 중국 때문이야 라는 DIVIDE AND RULE의 규칙에 따라 너무나 손쉽게 현재 상황을 단순화시켰다. 중국만 없었다면 우리는 코로나가 없는 시절에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중국이 없었다면 인류는 우산을 생산하지 못해 비를 맞아 오염되어 죽었을 수도 있다. (전 세계 우산 생산량의 90% 이상이 중국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국가들이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자원에서 나온 다양한 재화를 싸다는 이유로 사용하고 버리는 것에 동조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도 비난할 권리가 없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수 미국 시민들은 코로나에 대한 원인 제공자로 중국이라는 데에 이견을 갖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신념처럼 사수하는 수정 헌법 2조에 근간한다고 믿고 있는 무기 소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그리고 자유롭게 자신의 일상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의 힘으로 세운 권력을 무시하면서까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백만 명이 넘어 150만 명이 넘어가는 감염자를 양산해 냈고, 골든 타임이라고 볼 수 있었던 1월과 2월을 허비했다. 연방 정부는 그 기간 동안 선거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코로나를 위생이 불결한 아시아 국가들에게 발생하는 전염병 정도로 여겼다. 국내 자본 시장 역시, 돈이 되기 전까지 백신 개발에 나서지 않는 철저한 자본주의적인 시각을 보이면서 지금의 사태를 키웠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에 에볼라의 교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지금 연방 정부가 보여주는 분열의 시간은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이제 미국에서 태어난 자국민들까지 아시아계라는 이유만으로 혐오발언을 서슴지 않게 하고 있는 현 정부는 분명 많은 부분에서 뒤처져 있다. 그리고 그들이 겁 없이 쏟아내는 발언은 그 어떤 근거도 사실도 가지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위치의 권력과 자본의 우월성을 무기로 일반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이 부를 축적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겼던 인터넷과 금융 자본 시장은 이미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GDP의 40%를 장악하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단일 국가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숫자 놀음에만 빠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CBS 기자의 왜 경마식 대결주의적인 연장정부의 코로나 관련 사태 보도 행태가 문제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민주당 후보가 패배했을 때 그들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과연 절치부심했을까? 아니면 그저 또 다른 기득권의 한 축으로 호가호위했던 것일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차악을 선택하는 투표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의 미국 시대는 다분히 10년 전 한국을 닮아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당시 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의 알량한 “부자 되세요”의 꿈을 이명박에게 투영했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부자 되기를 원했다는 사실과 수조 원대의 횡령과 부정, 그리고 자본과 권력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자본 축적에도 우리는 스스로 틀리지 않았다는 자위를 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서 독재자의 딸을 뽑으면서 부채의식을 말했던 우리는 지금의 미국 정권에서 이 모든 그림자를 보게 된다. 

미국 우선 주의라는 말에 숨어 자신과 한 줌의 자기편들에게 돌아갈 부를 격정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일개 시민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작 4년 남짓을 보냈는데, 지금의 미국은 대도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세계 패권국가로의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갖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갈고닦아 관리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지금 미국에 남은 것은 관리를 하느냐 아니면 부수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냐의 갈림길이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을 뿐이다. 지금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이제 슬슬 뉴욕인들에 대한 혐오로 변질될 것이다. 미국에 코로나의 씨앗을 뿌린 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씨앗은 유럽에서 재생산된 것이며, 물론 유럽 역시 중국을 통해 들여온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모든 논쟁이 과연 어떤 소용이 있을까?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 테스트를 늘리는 방법에서도 미국 우선 주의와 편의주의에 사로잡힌 현 정부는 연대로 각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세계적인 연대를 통해 우리 인류가 서로 뭉쳐 하나가 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간이 테스트로 결과를 빨리 받아 볼 뿐 정확도가 떨어지는 코로나 테스트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6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테스트를 통해 내가 병이 걸렸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더군다나 우리는 지금 누군가와 공동체를 이어나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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