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다른 친구의 이유 있는 동행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뉴욕
뉴욕과 같이 변화 무쌍한 곳도 없다. 뉴 암스테르담 이라는 첫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새롭게 펼칠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다. 결국 영국식민지가 되면서 뉴욕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지금의 모습과 함께 본격적인 미국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고작 300평방 마일이라는 작은 땅에 800만이 모여 살고 있으며 인구의 52%는 여성이고, 매 4분 4초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땅. 다인종 지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중국인이 많은 지역이면서 전세계에서 푸에토리코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푸에토리칸을 만나볼 수 있는 곳. 작은 땅덩어리에 어울리지 않게 722마일이 넘는 지하철과 철도 트랙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센트럴 파크라 불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공원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맨하탄 대부분의 스퀘어라고 불리는 광장들은 사실 무덤이 있덧 자리였고, 이제는 6만 여개를 훌쩍 넘는 푸드트럭은 도시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달러 피자가 사라진 뉴욕이지만 여전히 종잇장 처럼 얇은 피자는 이제는 더이상 이탈리아가 아닌 뉴욕만의 스타일로 재해석 되어 있다.
닮은듯 닮지 않는 전형적인 미국의 상징 뉴저지
뉴저지의 삶은 따분하다? 뉴저지는 시골이다? 이 모든 해괘한 해석에는 뉴요커들의 부러움과 시기가 함께 묻어난다. 자타 공인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뉴저지는 더이상 뉴욕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일까?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쇼핑몰을 가지고 있고, 뉴욕을 살리는 대동맥 역할을 하는 뉴저지를 제대로 바라보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의 저지섬의 새로운 버전이라는 뉴저지는 동부 지역의 허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가장 옛스러운 곳이면서 이제는 유흥과 향략의 천국이었던 곳이 라스베가스로 이동하면서 동부의 라스베가스라는 멸칭으로 불리게 된 아틀란틱 시티는 미국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기에 그 가치는 비할 바가 못된다.
땅의 비옥함을 무기로 18세기부터 가든 스테이트로 불렸던 뉴저지는 농업부터 의약품 산업까지 거의 대부분의 산업의 메카 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저지 파머로 단순화 하기도 한다. 물론 사시사철 라벤더, 베리 3대장, 옥수수, 복숭아, 사과, 호박 등 거의 모든 작물을 만나볼 수 있는 농장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별명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미국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산맥과, 평야, 그리고 해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자연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축복을 한몸에 받은 땅이라 하겠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프린스턴의 고향이고, 미국 승마팀의 본부가 뉴저지 글래스톤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평방마일당 가장 많은 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충분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1896년 첫 프로 농구 경기가 열린 트랜턴의 역사적인 사실이나, 권리장전에 처음으로 서명한 주가 바로 뉴저지라는 사실, 그리고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드라이브 인 극장을 처음 연 곳이 1933년의 캠든이었단 사실도 잊어서는 안되는 뉴저지를 상징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1846년 첫 야구 경기를 치른 호보큰은 그 자체로 미국의 역사의 상징이다.
이렇듯, 각기 다르면서도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두 지역이 하나가 되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방식이나, 형태가 다르고,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차이도 크다. 그렇지만 미국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이들 두 지역의 우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