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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Newyorker Aug 17. 2020

뉴욕에서 코로나가 알려준 이민과 이주민들의 경계

Migration과 Immigration의 차이

뉴욕에 온 지 꼭 10년이 지났던 지난 6월 13일.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알 수 없던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내가 그날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그날, 축하라도 하고 싶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물론 그때는 미처 미국에 온 지 10년째인 날을 기념하기 위한 생각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지난주 월례 행사처럼 이제 밖을 나가고 있는 코로나 19 상황이 나의 가족에게는 여전히 3월과 같은 마음이다. 택배를 가져오는 순간에도 혹시 몰라 모든 물건을 알코올로 닦아 내고, 일주일치 식량은 배달을 감행하면서도 잊지 않고 반드시 조리 과정까지 시뮬레이션을 거쳐 종류를 정한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게 사실이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지금껏, 뉴욕이라는 지역에서 10년간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이다. 이들이 보는 나에 대한 이방인에 대한 시각이 이상하게 느껴질 무렵, 나는 10년의 결과물인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나 스스로에게 수십 번 나는 이민자 인지 되뇌었다. 

나는 2008년이라는 시점이 미국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믿는다. 2005년, 내가 처음으로 만나본 뉴욕은 적어도 이민자라고 할 만한 사람만큼의 유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유학생 커뮤니티는 이민의 중요한 변수였다. 이들이 학위를 끝내고 과연 H1-B(미국의 취업 비자를 분류하는 명칭)를 통해 과연 이곳에 남는지, 아니면 본국(한국)으로 돌아가는지가 결국은 이민의 질과 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맘때 국제사회에서도 똑같은 질문에 봉착했다. 


10년 가까이 국외에서 살고, 

가정을 꾸린 사람들을 이민자로 봐야 하나?  

동시에 이들은 이민자라는 분류에게 철저하게 배척당해 온 게 사실이다. 이들 유학생, 주재원 가족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이름이 '곧 떠날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곧 떠날 사람들은 항상 이민자에도, 그렇다고 한국인으로도 취급받지 못했다. 

나 역시 이 사회에서 철저한 곧 떠날 사람으로서의 삶을 7년간 살아오고 지난 3년은 드디어 이민자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OECD와 미국 정부는 이제 나를 이민자로 분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영주권은 그렇게 나를 곧 떠날 사람에서 이민자로 분류하는 중요한 변화 요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학술적인 명칭의 변화가 과연 우리네 삶을 규정 지을 수 있을까?

사실, 이곳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하나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데 바로 각 개인의 신분에 대한 물음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물음을 할 수도 있고 공유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기 전까지 신분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오히려, 학생이면 '아, 아직 이민 온 사람이 아니구나' 또는 이제 막 직장을 잡았다면 '이제 H1-b' 들어갔겠네,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이주민과 이민자를 또 갈라놓고 있다. 

사실 영어에서는 이민자와 이주민을 달리 사용한다. 이주민을 뜻하는 Migation 은 글자 그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인구를 뜻하는 말로, 유목민들에게 주로 사용하거나 지리적인 위치 이동에 변화를 보인 인구들에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반면 immigration은 지리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이동을 통해 나타난 성격 변화에 좀 더 집중한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다가 학교를 이유로 이주한 이들은 Migation 이 되겠지만,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학교를 위해 이사를 했고, 이제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거나 특정 시간 이상이 흘렀다면, 우리는 Immigration으로 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조건의 구분이 항상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즉 이주는 공간의 이동을, 이민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섞은 것이라 볼 수 있지만, 10년이 넘게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이민자로 불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OECD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지역 간의 이주민들에 대한 성향 표준화를 통해 이민에 대해서도 규범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이민자로 분류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법적인 거주권이다. 즉, 해외에서 몇 년을 거주했건 간에 해당 시민이 거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그를 이민자로 보기보다는 국제 이주민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결국 법적인 이민자로서의 권위 획득이 이주민과 이민자를 나누는 잣대가 되는 것인가? 


코로나 19가 처음 세상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뉴욕 메트로 지역에서의 엑소더스는 세계적인 뉴스가 된 지 오래다. 뉴욕의 최상류 층은 너나 할 것 없이 뉴욕의 화려함과 붐비는 도시의 모습을 좋아했지만, 코로나로 6피트라는 마법의 공간이 필요해진 이들에게는 거대 메트로 폴리탄은 바이러스가 득실 거리는 공간으로 순식간에 전락했다. 

이민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뉴욕을 벗어났지만, 완전히 떠나기 어려운 사람들은 인근 위성도시로, 조금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좀 더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곳으로 각자 살길을 위해 떠났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변화가 목격된다. 

 

그렇게 떠나던 무리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자신의 생활 터전을 놔두고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모국으로 날아갔다. 6월이 되자 잠잠해진 중국의 코로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중국이 가장 안전한 국가가 되어 있었다. 이미 초기에 떠났던 유학생들은 부랴부랴 다시 입국하기에 바빴다면 여기에 터전을 잡고 10년 넘게 살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중국으로 떠났다. 

내가 아는 한국 사람들 가운데 이제 막 그린카드(미국 영주권의 별칭)를 받는 사람 상당수가 5월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터전을 떠났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리적인 이동을 감행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가장 늦게 뉴욕을 떠난 한 이웃은 여름 동안 지내기 위해 떠나면서 9월에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 이웃은, 온라인으로 처리가 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미국에 있을 이유가 없다면서 자녀를 데리고 한국에서 겨울을 나겠다고 돌아갔다. 물론 자택 근무가 불가능한 남편은 남아 있지만 말이다. 






코로나가 이민자를 역 이주자로 바꿔 놓았다. 

 

이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에서 해외 유입 감염자가 되던지, 아니면 14일간 자가 격리를 마친 한국 시민으로 돌아가면서도, 미국의 시간에 지배를 받는 역 이주자가 되어 있다. Migation 이 지역 간의 이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상황이라면 이들은 정확히 반대의 이주를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immigration이 보여준 유입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기존의 것을 물리적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서의 이민자가 되어 버린 순간이다. 

나는 지금 이들이 느낄지도 모르는 부조화에 대해서 고민한다. 왜냐면 나 역시 그 역할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남은 미국 땅에는 진정한 의미의 이민자와 이주자들의 역할이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OECD가 주창하던 합법적 이민이나 특정 시간의 경과를 통해서 이주가 이민으로 결정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모국에 소셜 캐피털 (Social Capital) 이 남아 있는지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차이점 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자신의 부모나 형제 정도의 생물학적 네트워크와, 동시에 충분한 자본이 뒷받침된다면, 이들은 지금 택한 미국 사회에서의 이민자 신분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 이미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의 시민권을 포기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단순 계산으로 작년 (2019년) 대비 두배가 넘는 사람들이 독수리 (미국의 시민권을 상징이라는 독수리라는 은유로 많이 사용한다)를 포기했다는 점은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리고 시민권 포기의 이면에는 한국 이민자들이 보여주는 역이주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신기루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택하는 첫 번째 이유가 경제적인 윤택함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은퇴 이민이라는 이름으로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지에 이민을 결정한 사례가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노후에 경제적인 윤택함을 위해 해외 이주를 결정하는 경향이 짙었다. 

반면 젊은 층은 경제적인 이득 이외에도 개인의 발전이나 교육을 위한 경향이 좀 더 확고하다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등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 역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고등 교육 시스템을 통해 나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경제적인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유학을 결정한 것이었다. 지금도, 코로나 19가 창궐하는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숨죽이고 있는 이유도 여전히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 졸업장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머무는 10년 동안, 다양한 변화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자신의 모국에서 결핍이 생성된 부분을 미국이라는 대제국에서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신기루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현하는 소수의 선택된 자들을 보면서 나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아메리칸 드림이라 부르면서 손에 잡힐 수 있는 무언가로 여기곤 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만나온 많은 한국 이민자들은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곳, 바로 미국에 머무는 것을 결정했다. 그렇다면 왜 일까? 

아직까지는 기초적인 연구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정립되지 않은 이들의 성향을 함부로 일반화하는 것은 분명 오류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나 확실한 건 이들에게 더 이상 미국은 꿈의 국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은 그저 관심이 많은 국가, 또는 어렸을 적부터 문화적인 연동이 높아 상대적으로 쉬운 문화권 밖 삶이 가능한 곳일뿐니었다. 그래서 캐나다나, 호주도 그들에게는 충분한 대안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즉 이들은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을 채우고 자신들이 남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민을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역이주는 그렇게 빠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민자라는 신분은 그저 이곳과 저곳을 자유자재로 드나들기 위한 법적 수단일 뿐, 이들을 이민자, 또는 소수계 이민으로 규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모국과 이주 국가를 오가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뿐, 이들에게 국가는 그저 세금과 입국 출국을 제약하는 정치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코로나 19 이후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역 이주민으로 정착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그들은 단순히 코로나 19가 무서워 도망간 게 아니다. 자신들의 물리적 터전을 바꿨을 뿐, 자신들의 인생을, 그리고 합법적인 수단 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과연 migation으로 한정할지, 여전히 Immigrant로 구분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개념으로 이들을 이해할지에 대한 기로에 서 있게 된다. 

나 역시 그것에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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