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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Newyorker Aug 30. 2020

첫걸음을 떼는 모든 대학생들에게

코로나 19 그리고 글로벌 메모리 빌리아 

인간은 기억을 하고 살아간다. 혹여는 기억의 여파로 트라우마를 양산해 자신만의 구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억은 인간이 살아는 가장 고차원적인 지식 공유 수단이면서 동시에 이를 통해 인류라는 문명을 완성해 나갔다. 지난 100년간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산업 혁명, 세계 1,2차 대전, 중국의 부상, EU연합, 제3세계 국가들의 성장, 그리고 지금의 패권전쟁까지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온 것만 같은 지난 백 년의 인류사는 그 전 수천 년 동안의 변화를 무색할 만큼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백 년의 풍요는 인류를 재앙에 이끌기에 충분했다. 

인간을 호기심의 동물이라고 한다. 미지, 또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가슴 뛰는 행복 회로의 일환으로 여기거나 마약과 같은 환각을 보이는 인간의 호기심은 지금까지 인류가 누리는 거의 모든 문명의 시작을 장식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했던 인공물들은 한결같이 추앙받았다. 

1869년 미국의 하얏트 형제가 니트로 셀룰로 오드와 장뇌를 혼합하면 단단한 물질이 발견되었을 때 이들은 두려움보다는 가슴 뛰는 행복 회로의 일환으로만 여겼다. 그리고 그 플라스틱이 장악한 지난 150년의 세월은 이제 인류의 종말을 앞당기는 양잿물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석유를 통해 이를 더욱 쉽게 합성할 수 있다고 알아낸 순간, 우리는 '유레카'의 기적 이면에 찌꺼기처럼 붙어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지는 못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영국의 세균 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역시 자신의 발견이 인류에게 생명 연장을 가져다주는 순 기제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후 세게 2차 대전에서 많은 사상자를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페니실린은 지금 인류 폭발의 시작을 완성하게 된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모든 삶이라는 것이 양면성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지금의 코로나 19는 76억이 넘는 엄청난 생명 개채들이 동시에 느끼는 공포라는 점에서 모든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변화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맞이하고 있는 미국은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 

이제 인류는 코로나 항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항체를 가진 자들 가운데에는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자와 후유증에 시달리는 자로 구분될 것이며, 지금도 걸리지 않고 남아 있는 이들은 백신과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자신을 유지해야 하는 남아있는 잉여자들이 될 것이다. 

2020년, 가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교육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새롭게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온 이들에게는 더 이상 이전의 표본이 존재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농담처럼, 2019 학번은 2020 학번과 같이 전형이 될 수 있는 선배를 가지지 못한 첫 번째 인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게 되는 전형은 결국 앞으로 수백 년간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경전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에게 몇 가지를 충고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과거에서부터 배우라. 


뉴 노멀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회가 구성되고 이를 통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인간관계, 사회, 그리고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지식 운송 수단은 기억이었으며, 그 기억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대화이다. 

지금도 방식을 달리하고 있을 뿐, 인간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대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체계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나 역시 강의를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미 지난 수개월간 변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온라인 교육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20년 가을 입학을 한 대학생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끊임없는 대화와 이해를 통해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은 고작 옛것이라고 치부되어 사라져야 할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어느 순간 우리에게 바이블이 되어 나타날지 모른다. 과거의 모든 기억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리고 그 기억의 각색을 통해 인류는 문명이라는 것을 발전시켜 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시간이 없다. 


지난 100년간 인간이 겪어온 시간의 흐름은 속도와 그 속도의 제곱을 통해 모든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했다. 인텔의 고든 무어가 1965년에 주장한 법칙인 무어의 법칙은 지난 20년간 반도체 집적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그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냈다. 그 기적은 단순히 이들에게 변화의 빠르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회적인, 문화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이다. 

이미 한세대를 20년 정도의 기준을 두고 구분했던 이전의 구분법은 더 이상 맞아 들어가지 않은 세대가 되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애를 낳고 경제 구조를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이 나와 10년 정도 차이가 있다면 과연 나는 같은 세대일까? 이미 나와 10년 이상 어린 세대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동시에 그들에 비해 10년이 더 어린 지금의 20대 초반은 내가 꿈꾸지 못했던 정보의 속도와 처리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싸움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물리적인 시간을 통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지금의 시간은 정체되어 있지도, 동시에 그 속도와 방향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세계 거의 대부분의 정치체제에서 지난 5년간 극명하게 보여온 것이 바로 양극화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물리적인 시간과 방향, 그리고 속도에 의존하기보다는 나만의 페이스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진 사회가 된 것이다. 더 이상 거대한 물결과 같은 수억 명이 동시에 애를 낳고 동시에 결혼을 하고, 동시에 사회적인 소멸을 겪는 세대는 이제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대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이들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가장 말단이면서 동시에 선봉에 서 있다. 즉 기존의 체제에서는 이들은 가장 말단의 시간, 방향인 이들은 다음 세대에게는 최초의 동기자가 되는 것이다. 즉 이들이 갖게 되는 양가감정과 동시에 이쪽과 저쪽 모두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터너는 1960년대 이미 리미널리티라는 개념을 통해 이곳과 저곳에 대한 구분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시간은 물론 정방향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이곳과 저곳이 분리된 상태에서 그 경계의 찰나를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코로나 19는 그 경계의 찰나를 더욱 짧은 시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유행을 이야기할 때 10년 주기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돌아온 복고의 유행은 절대 기존의 것과 같지 않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그 차이를 인지하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이 바로 터너의 리미널리티의 시간이 지나는 공간 인식이라 하겠다. 

만일 이러한 시공간 인식이 가능하다면 모든 인간의 변화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변화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그 변화가 미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며들 때 우리는 그것을 문화로 구분하게 된다. 

물론 변화의 폭과 속도가 더욱 급격해지는 방법도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법적인 변화는 그러한 변화의 일반론을 뛰어넘는 속도를 자랑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12:00이 되는 순간 법은 적용이라는 힘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것에서 드러나는 리미널리티의 속성은 그 구조와 방법, 그리고 물리력을 공허하게 만든다. 왜냐면 우리는 그 지나감의 찰나를 미처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코로나 19를 맞이하는 새내기들은 그 변화의 과정을 더욱 압축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기존의 세력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들에게 구조화된 틀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평온을 가져온다. 누구를 위한 평온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순간에는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기억하라. 


지금의 순간은 더욱 넓은 광의의 렌즈를 통해 보게 된다면 아주 짧게 지나가는 찰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그 상대적인 위치의 변화는 물리적인 변화를 이미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비디오, 사진과 같은 녹화 물든 왜곡의 심화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그 왜곡은 더욱더 견고한 물적 자료라는 태그를 허용하면서 강화를 시켜 나간다.

다시 말해 기억이 물적 자료에 의해 재장전되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기억의 기능을 잃게 하고 있다. 

나 역시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순간마다 사진첩에 저장된 이미지와, 구글 메일에 저장된 달력을 보고 나의 과거를 회상하듯이 우리는 이미 물적 증거에 의한 기억의 왜곡을 심각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 그리하여 신인류라고 불려야 하는 지금의 새내기들은 반드시 기억에 더욱 특화될 필요가 있다. 변화에 민감하고, 그 변화를 통해 얻어지는 부산물들에 대해서 확인하는 방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짤이라는 문화와 영상 정보에 특화된 이들에게 문자화 된 정보의 힘을 믿으라는 꼰대 같은 의식 수준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짤이 모이면 영화가 되듯이. 이들에게는 지금 직물을 직조할 수 있는 디지털 베틀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동시에 어떤 색의 실이 (짤이) 모였을 때 어떤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조합 기술은 결국 기억이라는 것의 활동에서 보상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70이 넘는 나의 교수님은 지금의 변화에 대해서 기록하고 또 기록하라고 강조하신다. 그녀가 살았던 지난 70년의 세월에서 그녀가 놓쳤던 순간들을 모두 모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문명이 사라지는 고통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아니 더 나아가, 인공물들에 의해 재단되는 기억을 아예 배제할 수 있는 기능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세대들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가상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쫓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배틀 그라운드 다시 보기는 나와 죽은 자의 시선, 그리고 내 시선이 머무는 특정 지역의 정보를 모두 담은 빅브라더 방식을 통해 어떻게 과거의 시간에 좀 더 정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이러한 방식의 정보 공유가 당연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기억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결국 더 넓은 의미의 인간됨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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