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그리스도교 봉사자를 만나다 ⑦
어떻게 교회 봉사가 당연한 거야? 하면 정말 좋은 일이지. 그런데 (봉사자에게) 고마워해야지.
무엇보다 이것은 엄마, 아빠 잘못도 있다고 봐. ‘교회 봉사는 당연하다.’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닌데, 어쨌든 최소한의 감사의 표시도 보이질 않잖아.
내가 다른, 예를 들면 장애인 봉사나 근로 봉사를 해서 기록이 남는다고 쳐. 나에게 이득이 남는 일이라 하더라도 일단 봉사단체는 고맙다고 얘기를 해주잖아. 그러면 정말 사람으로서 이해가 가잖아.
그런데 (교회는) 그냥 봉사를 만약 했어. “어, 그래 잘했네.” 봉사 안 하면, “어떻게 안 할 수가 있나.” …시험 기간에 장난 아니었지. 서러울 때도 많았지. 탓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 제일 서러웠던 점은 중·고등학교 때, 주말에 놀러 가고 싶었던 거? 맨날 뭐 하느라 바쁘고…. 안 그래도 목사님 아들은 이사도 많이 가는데, 진짜 목사 아들은 다 공감할 거야.
제일 처음 했던 봉사는 아빠가 전도사였을 때였다. 엄마 역시 전도사를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쯤에 그 교회에 딸려 들어가서 교회 뒷정리를 맡았다. 초등학교 3학년 보고 하라했다.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장로님이 하라 했다.
‘(장로님이 나를 향하여) 앞으로 전도사님은 나오지도 않으려나?’ 이러는 거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뭔 생각이 들었겠어? 청소라도 하자는 생각을 했지. 교회가 200명 정도 되는 규모였는데, 중학생들이 사용하는 예배당을 청소하고 방송 관련 봉사를 했지. 그런 일을 눈치로 시작했어.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 한 번도 없었어.
PK는 보통 장로님들 눈치 한 번쯤은 다 겪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우리 아빠를 비난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라도 잘 해서 이런 소리 (장로님이)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트집 잡히는 것도 싫었고, 솔직히, ‘네’ 하는 것이 편했다.
나는 토요일도 교회로 끌려갔다. 그곳은 우리 집이랑 한 시간 거리였다. 엄마는 토요일, 일요일 근무했다. 엄마는 (자식이랑) 같이 교회 일을 하고 같이 있을수록 자식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가 일하러 나가는 길에 나도 (교회에) 끌려나갔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할 게 없었다. 심지어 교회에 친구들도 없었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성가대도 나가고 의자 옮기는 일도 도와주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봉사의 농도라고 해야 하나. 이전까지는 간단한 봉사를 중간에 많이 시켰더라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정기적인 봉사를 요구한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유치부 교사나 교회 수련회 같은 것들. 교회의 메인 행사가 있으면 ‘네가 나가서 그냥 무조건 해라!’ 이런 느낌이었다.
아버지도 그렇고 집사님도 그렇고 교회 봉사를 많이 시켰다. 또 집사님이랑 장로님이 눈치를 많이 주었다. 개척교회에서는 봉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교회 봉사를) 안 하면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네가 제일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당연하게 내가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지. "목사님 아들로서 이 정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히 모든 교회 일은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이니까." 우리 엄마, 아빠도 그렇게 시켰고 당연한 거라고 얘기했었지.
봉사하니까 갑자기 고등학생 때가 생각난다. 봉사를 안 하면 너는 안 된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봉사를) 거절했었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시험 기간에 바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바로 아빠 욕으로 돌아갔다.
“목사님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면 자식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싫다고 말하나." 바로 그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이건 진짜 많이 있었어. 나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았거든. 그런데 나를 시키면 편하고 아무 탈 없고 뭐 그냥 편하니까 많이 시켰지.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는 나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전가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장애인 봉사를 했다고 가정하자. 내가 거기서 잘 못하면, 나만 욕먹으면 된다. 그리고 (봉사단체에서) 다시는 나를 부르지 않겠지. 내가 유치부 봉사를 했을 때였다. 내가 실수했다. 그런데 내 잘못이 교회 커뮤니티를 통해 엄청나게 빨리 퍼졌다. “목사가 어떻게 자식을 키워서 저 모양이냐.” 어렸을 때부터 (이런 모습을) 많이 느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전도사를 하다 장로님에게 트집 잡혔다. 그래서 3년 동안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게 가장 기억에서 컸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장로님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
한번은 설교할 때, 한국교회를 비판한 내용을 했었다. 어떤 장로님은 좋게 받아들였지만 다른 장로님은 자기가 찔려서일까 껄끄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도사에게 그렇게 설교할 자격이 있느냐, 너 말고도 다른 전도사 많다, 내가 아는 전도사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장로님들이 많이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이 하는 일이니까 이것을 하는 것은 신성하고 당연하다.’라는 느낌? 봉사도 자발적이어야 하고 내가 싫을 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보통 안 된다. 이게 제일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다닌 교회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권력의 독점인 것 같다. 이게 뭐만 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며 자신의 일을 진행하는 것이 진짜 잘못된 것 같다. (자신을) 일종의 신의 대리인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의 비리가 교회에 그대로 일어나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조용히 있고 욕하기만 하지.
그리고 교회가 2030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2030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 같다. 쉽게 공모전이라든지…. 교회가 (젊은 세대를 위해) 공모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몇몇 특수한 교회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교회에서 하는 일은 수련회나 찬양 예배, CCM 가수 초청 정도. 강연이라 해도 목사님 부르는 것이 끝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기도하라고.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젊은 세대들은 뭐하나, 하기는 하는가?” 이런 이야기나 한다.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30 세대에게 무관심한 것이 맞는 말 같다. 대부분의 교회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 더 사람이 많이 와야 하는데. 사람들을 어떻게 교회에 오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교회가 2030 세대를 위해 어떻게 봉사할 수 있을지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2030 세대들이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더는 교회가 메리트가 없다. 안 그래도 바빠서 죽겠는데 뭐 하러 교회에 가겠는가. 결국은 어디를 가나 찬양 예배뿐이고, 2030 세대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2030 세대가 교회에서 공감하고 교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가 하는 행동은 “너 신앙 가져야 행복해져! 너 지금 교회 안 가면 지옥 가! 너 천국 갈려면 교회 가야 해!” 이런 식의 강압적인 행동만 하고 있다.
비슷한 예시가 있다. 공모전을 하는 교회가 있어서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일요일에 잠깐 예배를 드리고 동아리처럼 공모전을 하는 곳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까 두 시간 반 동안 예배를 드리고 한 시간 반 동안 소감문을 적어야 하며 두 시간 동안 공모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3분의 2를 예배 활동으로 하고 나머지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에서 졸면 안 되고 핸드폰 뺏고 그랬다. 왜냐하면 예배에 집중해야 하니까. 4시간 동안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요셉 이야기만 했다. 꿈을 꾸는 내용을 누가 모르나, 어쩌라는 거지. 4시간 동안 들은 내용을 글로 쓰라는데 너무 강압적이었다.
어느 날 문신을 한 형(?)이 교회를 왔었다. 왜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가 전도사였을 때, 담임 목사가 그 형더러 나가라고 했다. 이유인즉, 문신을 한 사람은 교회 예배를 드릴 자격이 없단다. 나는 되게 의문이 커졌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교회에 다닐 수 있다고 했는데. 사마리아인도 교회에 다닐 수 있는데 문신을 가진 사람은 교회에 갈 수 없나.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어떤 느낌이냐면, 성경의 바리새인이 우리 교회랑 다를 게 무엇일까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민 문제였다. 개척교회를 세우는 우리 아빠가 난민에 대해서 반대를 했다. 맞다. 반대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우리 아빠는) 그런데 ‘난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여서 이슬람이 우리나라에 오는 순간 한국 기독교가 망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무 이기적이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생각만큼은 걷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이랑 너무 반대 아닌가?
적어도 난민이 무슬림이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선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넌 이슬람이니까 배척하고 이슬람이어서 안 된다는 것은 사마리아인 비유(가 가리키는 문제)랑 똑같다. 그런데 많은 목사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가. 성경이랑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교회에 정해진 규칙과 규율이 없는 것 같다. 각자 알아서 한다던가. 기독교 (자체)의 문제이기보다는 개신교의 허술한 부분에 한국적인 그런 문화가 들어가서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여름이면 여름방학 수련회, 겨울이면 겨울 수련회…. 수련회 기획도 하고 청년부, 중고등부 다 가봤고 할 수 있는 봉사들은 대부분 해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진짜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나님을 만나거나 신앙을 강화하자는 것이 목적이지만 돈벌이 수단인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러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사업화가 된 것 같다. 애초에 수련회가 중요한 이벤트이긴 하다. 수능 기도회도 그렇고. 무엇보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억지로 했다. 장애인 자원봉사를 내가 했었던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도 의미가 있고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닌 교회는 그런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았다.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
물론, 좋은 교회도 있다.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교회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반박될 수 있는 요소가 정말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문제를)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기도 싫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싫은 것일지도….
[글/인터뷰] 김도헌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