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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루터란아워 Feb 06. 2020

'반감을 주던 곳'에서 '위로를 받는 교회'로

청년 그리스도교 봉사자를 만나다 ⑥

상가건물 개척교회의 한 봉사자 이야기


19/10/30 인천의 음식점에서. 제자들교회에서 찬양 인도자와 교사로 봉사하는 최하영 씨. 인상 깊은 경험으로 다시 찾아온 학생들과 만났던 것을 꼽았다(모자이크는 당사자 요청).




여기에서 봉사하기까지


제가 중2 때, 할아버지가 위독하셨어요. 그때 제 아버지도 목사였는데 원래는 회사에 다녔죠. 옛날에 서원하셔서 회사를 관두시고, 초6 때 그렇게 되었죠.


안 그래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었죠. 괜찮다가 갑자기 어려워지니까. 자연스럽게 반감이 있었죠. 이게 뭐기에 나를 힘들게 하나.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아빠가 하고 싶다니까, '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저는 몸소 깨닫게 된 거죠. (아빠가) 아예 학교만 다니셨으니까. 전도사 페이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게 엄청 힘들어졌으니까 반감이 들었죠.


중2 때 기도를 했어요. 기도했죠. 뭐라고 했겠어요?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했죠. 결국 어떻게 됐겠어요. 돌아가셨거든요. 자연스럽게 여기(교회)랑 멀어졌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앞에 철학원이 있었어요. 거기에 대해서도 아빠가 영적으로 좋지 않다고 해서 아침에 금식하고 그러셨죠. "아빠, 제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했는데도 돌아가셨는데, 아빠가 철학원을 두고 기도해도 없어지겠냐, 사기 치는 거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었죠. 그때가 이사를 준비하던 상황이었어요.


적응할 만하면 이사를 하고, 적응을 하면 사역지를 옮기니까, 그러다 보니 힘들었어요. 저는 적응을 이제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친구랑 친해지고, 너무 좋은 친구들 만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는데 꼭 내가 적응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완전 짜증 나는 거예요. 제가 있지도 않은 존재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나.


그래서 그때 사활을 걸고 질문했어요. 그냥 "아빠, 차라리 보여줘라, 그럼 믿겠다. 응답도 없는 하나님에 대해 보여줘라, 그러면 아빠가 그렇게 하라 하는 목사 하겠다." 저보고 목사하라고 회사 다닐 때부터 말씀하셨거든요. 그때 철학원을 본 거죠. "우리가 이사하기 전까지 철학원이 없어지면 내가 아빠가 이사하는 장소로 따라가고 아니면 내가 여기에 남겠다. 남는 것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남겠다."


고1 때였어요. 그때도, 남아서 알아서 할 테니 가라. 근데 없어지면 목사의 길을 가겠다. 왜 그랬냐면 확신이 있었거든요. 절대 안 없어진다는. 아침에 금식 기도한다고 없어지진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안에 확신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야자 하기 전에 저녁 시간이 있잖아요. 저는 저녁에 친구들이랑 나가서 먹었어요. 근데 나가는 길에 누나한테 문자가 온 거예요. 거짓말처럼 없어졌죠.


"하영아, 어떡해." 제가 공부를 그렇게 못 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제 마음은 그랬죠. ‘이게 진짜인가, 이게? 원래 빼려던 거 아니야?’ 그날 아버지는 난리 났죠. 그래도 제가 졌으니까, 원래 천안이었는데 여수로 옮기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변호사를 생각하다가 고2 때는 심리상담가, 고3 와서는 교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신학은 전혀 생각이 없었죠. 그때 성적은 그래도 좋았으니까 무조건 교대에 붙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기만 지원을 했고 1차도 붙었죠. "아빠, 이거 하나만 넣었다. 이거 되면 하나님 뜻 아니냐? 아니면 막으시겠지."


2차 면접이 있었는데 처음 질문이 이거였어요.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좋은 점이 뭐가 있었나?" 저는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없었거든요. 매일 신앙 관련되어 다투기만 했지. 그 생각이 계속 나서 면접을 말아먹었어요. 그리고 이게 내 길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정시 때, 신학대를 지원해서 들어갔죠.


그 이후로 신앙생활을 이어갔어요. 신학대에 갈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오게 되고, 막 잠언 말씀이 떠오르더라고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뭔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19/10/29 금요철야 예배에서 최하영 씨가 찬양 봉사하는 모습



돌아온 학생들을 통해 받은 위로와 가르침


가장 고민하는 것은 지역 전도인 거 같아요. 청년들도, 집사님들도 다 멀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거리가 뭐가 문제냐 말하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되거든요.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려도 출발하는 시간이 다르면 알게 모르게 지치거든요. 마음이 항상 일정한 것도 아니고. 개척교회로 시작해서 지역교회로 가는 것이 목적이죠.


행복 모임이라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오픈 셀이 있어요. 지역주민들을 자연스럽게 전도하는 모임이랄까? 결국은 관계 전도가 중요하죠. 저희가 길 가다 모르는 사람을 막 붙잡고 데려올 수도 없잖아요. 이곳 상가건물의 부동산이랑 카페에서 소모임을 가져요. 원래 우리는 2층 학원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같은 상가건물) 4층으로 이동한 사례거든요. 1층 상인들도 전도 대상자였어요. 자주 인사드리는데, 그분들이 한번은 여기를 보셨대요. 여기 성결교회가 건강한 교단이냐. 자기가 교회를 쉬고 있는데 한 번 가보겠다. 감사한 거죠. 사람이 한 명, 한 명씩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이게 어떻게 되나 하는 의문도 있고 감탄도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아요.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축구 전도를 한 번 했어요. 중2 때 만난 아이들이 지금 대학교 1학년이 되었거든요. 축구로 끌어들였지만 완전하게 정착시키지 못한 것 같아요. 축구하고 먹을 걸로 잡아 와요. 그런데 예배드린다고 하면 절대 안 오고. 교회 마당만 밟는 거죠. 그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좀 새롭게 시작하려고요. 지금 중2가 왔어요. 딱 생각을 했죠. ‘과거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중학교 2학년들이 대학교 가서 다 떨어지지 않았던가.'


근데 진짜 어렵죠. 요즘 애들은 더욱더 어렵죠. 한동안 고민을 엄청나게 해봤어요. 그러던 찰나에 스무 살 된 그 친구들이 예배는 안 오지만, 소그룹 모임에 잠깐 오더라고요. 그때 엄청 크게 위로를 받았어요. 찾아와주는 것은 교회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위로가 되더라고요. 같이 공도 차고 라면도 끓여주고, 따뜻하게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가장 중요했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 일에 조급해해선 안 되는구나. 이게 큰 위로였어요.


[글/인터뷰] 김도헌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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