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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 Feb 10. 2023

마음의 거리

 외국에 살게 되면 그 순간부터 한국의 시간은 멈추게 된다는 말을 들었었다. 70년대에 고국을 떠나오면 고국에 대한 정서적 정보는 70년대에 멈춰 있어서 실제의 변화된 고국의 소식을 접해도 그건 그냥 그런 거고, 마음으로는 70년대가 계속된다고 누군가로부터 어디선가 들었다. 그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방금 한국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복잡하다.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도 바쁘고 번다했다.  내가 맺고 있는 여러 인간관계층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참 힘들었다. 남편과 아이들,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 직장 동료들,  담임반 학생들과 학부모, 중고등 친구들, 대학 친구들. 각각에 따른 내 인격은 조금씩 다 달라야 했고, 그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내지 자격지심은 점점 커져 갔었다.

 그러다 독일로 오면서 나의 인간관계는 우리 가족만으로 축소되었고, 어지간한 관계들은 끊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일 일차적인  양가 가족들과의  관계를 제외하고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인연의 끈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오래 못 보아도 한결같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건 멈춰진 시간 속에 있는 나만의 환상이었나 보다. 친구들의 삶은 10여 년 전 나와 마찬가지로 계속 치열했으며 치열하다. 그들에겐 나 이외의 인간관계가 복잡다단하게 맺어져 있기에,  한국에 사는 친구들끼리의 연락도 쉽지 않다고들 했다.

 그네들은 바쁘게 변화된 현재를 살고 있었고, 나는 멈춰진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마음에도 거리가 생겨났고 다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각자의 삶을 사는 방식이 다양하게 바뀌었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도, 주요 화젯거리도 서로 다르게 바뀐 것이다. 과거만 얘기하기엔 함께 나눌 시간도 부족하고 머릿속에 들어있는 현재형 화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그 현재형 화제는 서로 너무 다르다는 거다.

 나만 멈춰있어 아쉬운 걸까? 나도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별다르지 않았겠지? 친구와의 통화를 끝내고 내 맘이 요동친다. 자연스럽게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난 이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나의 청년기를 증언해 줄 친구들이 필요하다. 내 마음을 온전히 나누었던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다. 그네들을 잃으면 그 시절의 내 존재는 사라지고 마는 거다.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없는 거다.

 

 아무래도 노력해야겠다. 친구들로부터 더 삭제되기 전에, 친구들이  귀찮아할지라도 안부문자라도 더 자주 보내야겠다. 내가 너희들을 기억하노라고.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지기 전에.  이 인연의 끈이 더 기 전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에 왜 무심했나?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왜 잊었나?

 얘들아! 내 마음속 보석은  너희와의 추억뿐이야. 나를 잊지 말아 줘. 내 가장 뜨겁고 순수하고 투명했던 시절을 기억해 줄 유일한 사람들아,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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