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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 Mar 31. 2023

영양제

나와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같은 류라는 걸 알아봤다. 둘 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말라깽이였으니까.  우리가 먹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나 거식증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다만 신경이 예민한 편이라 해야 하는 업무나 학업에 더 집중하느라 먹는 데에 소홀했을 뿐이고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먹는 것은 또 참으로 좋아했다. 생각해 보니 무얼 먹느냐 보다 누군가와 더불어 먹는 그 분위기를 더 좋아했었나 보다. 그래서 혼자서는 무얼 챙겨 먹는 걸 귀찮아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며 서로 같이 밥먹는 식구가 되고 아이들이 생겨 챙겨 먹이게 되면서 먹는 즐거움을 알았고, 맛난 것을 먹는 것 또한 행복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로 어린 시절 안 먹던 음식을 나이 들며 찾아먹게 되는 신기함을 얘기하며 "이 맛난 걸 왜 어릴 땐 몰랐을까?"라며 잘 먹지 않던 젊은 시절을 이젠 안타까워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이젠 물 말아 김치만 얹어 먹어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둘 다 배둘레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  물만 먹어도 살찐다는 갱년기에 이르러 운동도 자주 못하는 데다 식탐까지 더해졌으니 별 도리 없이 뱃살만 찌는 중이다. 그래서 남들 챙겨 먹는다는 영양제를 우리 부부는 챙겨 먹을 일이 없었다. 이렇게 잘 먹는데 무얼 더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으니까.

 그러다 재작년부터 남편 나이 50줄에 들어서며 여기저기 건강 적신호가 들어왔다.  독일살이 10년 넘게 애들 일 말고 우리가 병원을 간 일이 없다가 갑자기 연달아 둘이 차례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젠 정말 관리를 해야 하나 싶어졌다.

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지방간이 문제라는 걸 잘 알고는 있었지만(알고만 있었음), 나는 특별한 문제를 모르고 있었는데 주치의는 내가 비타민d와 칼슘, 철분이 매우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서 요즘 영양제 몇 알을 챙겨 먹고 있다. 살만해지면 게을러져서 며칠 까먹기도 하지만 , 그동안 내가 살아온 기간 중 가장 성실하게 먹는 중이다.

젊은 시절 언제였던가, 알약 몇 알만 먹고살면 좋겠다고 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고! 그때 그 당시 나의 그 주둥이를 한 대 톡 쳐주고 싶다. "알약을 먹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잘 챙겨 먹어라." 충고까지 하면서.

앞으로 이 알약들이 더 늘어나게 되려나 두렵다. 그저 맛난 것만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알약들은... 맛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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