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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Apr 15. 2022

각진 턱이 살아가는 법

1.

많은 업체가 면접 볼 때 지원자의 관상을 보고 회사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한다는 얘길 들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관상 좋은 사람을 뽑는다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상 성형, 면접 성형이 졸업과 함께 통과 의례처럼 이뤄진단다.


그래서일까. 누구보다 각진 턱을 지닌 나는

어딜 가도 '고집쟁이겠다, 완고하겠다, 제 멋대로일 것이다' 등 부정적 편견에 부딪혔고 턱을 다듬으라는 압박에 시달리곤 했다. 갸름한 턱, 매끈한 브이라인이 아닌 각진 턱은 잔머리 끌어모아 가리던지 목숨 걸고 깎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내 턱이 어때서.'

이렇게 당당했던 나도

점차 사회화(?)되어 화장으로든 머리카락으로든 적당히 커버 치는 것으로 세상의 시선과 타협했다. 조금 주눅 들었을 런지도 모르겠다. 어쩌겠나. 나도 취직하고 먹고살아야지. 돈 주는 사람 눈에 들어야지 어쩌겠나.



2.

난 세상이 젊은 여성에게 요구하는 갸름한 턱ㅡ

두루두루 어울리고 고분고분 순응하는 자세를 갖지 못했다.


머리를 내려 턱을 가리라는 미용사에게

'난 내 턱이 좋으니 드러내 달라'요구하고

팔자 세게 생겼다는 길거리 어르신에게

'부모님이 주신 귀한 얼굴인데 무슨 말씀인가요' 항변했다.


거칠지만 감히 말한다. 난 턱을 없애지 않은 대가로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무수한 고초를 겪었다. 취업 턱을 넘는 게, 기회의 문을 여는 게 남들보다 10배는 힘들었다. 수많은 권력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벌써 '드센 사람'으로 낙인찍고 눈밖에 내기 일쑤였다. 그 누구도 날 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재목이라 믿어주지 않았다. 각진 턱을 가진 여성으로서 난 한국 사회에서 철저히 비호감 소수인종으로 치부되었다. 남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수많은 무례함과 부당함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차라리 망상 가득한 편견을 드러내는 이를 상대하는 건 쉽다. 보이지 않는 차별, 흔적이 남지 않는 폭력에는 저항할 방법이 없다. 날 알기도 전에 '넌 이런 인간이지' 판정 내린 개인과 조직, 사회에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삶은 얼마나 피로한가. 난 턱을 둘러싼 편견에 점점 무기력해졌고, 이제 더 이상 세상의 눈에 들고자 애쓰지 않는다.


내 턱이 좋다.

물론 가끔 애교머리도 몇 가닥 내리고

어두운 갈색으로 음영을 넣기도 하지만

난 날 사랑하고

내 작은 솜털부터 거친 발톱까지 소중하다.


어딘가에는 턱이 각진 여성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 분명 있을 것이다. 생각이 분명하고 색깔이 선명한 여성이 왜 쓸모없을까. 어째서 모든 여성은 순종적이어야 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내가 이상한 건가, 한국 사회가 이상한 건가.


이제는 나이 먹어서 턱보다는 턱과 함께 이뤄낸 화려한 경력에 대해 의심받는 편이다. '대체 왜 한 직장에 오래 있지 않았는지'가 늘 그들이 나를 내치는 키(key) 질문이다.


‘턱 때문이지요.’ 하면 믿어줄까. 떠돌이 꽃씨처럼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한 채 이곳저곳 떠돌면서도, 끝끝내 내 진실을 붙잡아 얻어낸 작지만 소중한 결실들이 있다 한들. 누가 끝까지 들어줄까.


얄상한 낯으로

한우물만 파면서

아니라고 얘기하면 안 되고

잔머리 굴리고 눈치 봐야지만

그 사회의 합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인가.


그런 사회에 수용되는 게 꼭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3.

겨우 면접 약속을 잡았다.

늘 칼을 잡지만 좀처럼 다치는 일이 없는데

하필 퇴근할 때 문에 손을 부딪혔다. 손톱 사이 검붉은 핏물이 피어올랐다.


상서롭지 않은 징조로 여기고

긴장하며 면접을 봤다.


학벌에 대해

경력에 대해

성품에 대해

면접관 3인의 유치하리만치 집요한 공격이 이어졌다.


어 근데 이게 웬일인가.


난 그들의 볼썽사나운 질의를 이리저리 받아치며

춤추듯 즐기고 있었다.


턱을 가리지 않으니

거칠 게 없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란 말

여기서 그 말만큼 진리가 또 있을까.


턱을 깎고

내 본모습을 부정하고

그들 사훈과 사칙과 기업문화에 딱 맞는 인재 인양 속여 면접에서 통과한들


그 누구에게 진정으로 이득인가.

난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서로에게 복된 만남이 되려면

천생연분과 같은 인연을 만나려면

솔직해야 한다.


나도 상대도.


이제 보니 검붉은 피를 쏟은 게 징조는 징조였다.

명치에 답답하게 맺혀있던

이십 년 묵은 삶의 체증이 쑤욱 빠져나간 상징적인 경험.


지금껏 그래 왔듯, 난 이 턱 가지고 살란다.

그것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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