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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Apr 21. 2022

내 시간은 무한리필 X

타인의 시간은 소중하다


째깍째깍째깍째깍


조바심이 난다.

일 - 운동 - 휴식 - 가사 및 식사 - 한글 교육(육아) - 글쓰기로 이어지는 루틴이 흐트러질까 봐

혹여라도 망가질까 봐 쫓기듯 달음질하는 일상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오만 사람이 다 성가시다. 심지어 가끔 우리 푸우도.


내가 정한 육아시간 외 추가 놀이나 산책을 요구하면 과장 조금 보태서 피가 거꾸로 솟는다.


좋은 말로 거절하는 것도 이골이 났다.


 



'시간은 소중하다'는 명제 앞에 광기를 띄며 매달리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물론 시간을 사수하는 데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다.


무한리필 음료처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내가 성실하지 않아서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내 삶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심지어 이 빵조각도


내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내 삶을 우습게 보는 것과 다름없다.


타인의 시간은 소중하다


내 시간을 빼앗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뇐다

이것을 주장해야만 할 정도로 야만한 현실을, 절망을 곱씹으면서.

 



엊저녁 순한 푸우가 자꾸 바깥에 나가 놀자고 했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는데.

나중에 창문을 열고 아아- 소리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누군가 응답하기를 바랐다고 하더라.


상황이 이런데

무슨 일을 집에 가져가서까지 해오라고 할까.


'남는 시간'에 하라고?


시간 안에 일을 끝냈으면 됐지

추가 업무, 시간 외 업무 얹어주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면서.



'가족 같은' 풀타임 근무자도 아니고

초박봉을 감안하고라도 파트타임을 택한 건 그만큼 시간이 절실해서였다.


내게는 '남는 시간'이 이백만 원 삼백만 원과 바꿀 가치가 있었다.


난 돈이 아닌 시간을 택한 거다.


이 시간을 빼앗는 건 도둑질이고 강도질이다.




누가. 왜. 내 시간의 발목을 붙잡는가.


자꾸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한 듯 요구하니까

없는 시간을 쪼개서 남는 시간 만들어야 하니까


애꿎은 푸우에게 불똥이 튄다

결국 내 생활 반경에서 가장 약자인 아이에게


가장 사랑하는 이들 돌볼 시간을 잃고

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못된 엄마여서

내가 나쁜 아내여서가 아니다


100원 주고 1000원의 이익을 내려는 몰염치한 야만성 때문이다.



뼛속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으려는 태도-

공공연한 착취 혹은 학대를 오늘은 어떤 방법으로 쳐낼까


내 뼈와 살을 내놓는 건 어디까지나 근무시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어떻게 하면 이 파렴치한들이 깨달을까




당신이 내 상사인 건 근무시간 동안만이라고

근무지를 벗어나면 난 전화를 끄고

내 삶의 주인임을 천명하는 작은 의식을 행한다


부디 푸우와 놀아줄 시간은 빼앗기지 않기를

글 쓰는 시간은 지킬 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째깍째깍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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