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민트 Apr 26. 2022

시간. 에너지. 돈

당연했던 이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가끔 자다 깨어

방금 꿈에서 본 이가

이 세상 사람인지 아닌지 헛갈려 난감할 때가 있다.


점점 내 주위에 있던

당연했던 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어딘가 잘 살고 있겠지 했던 이들이

나와 같은 시공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내가 나이 드니

어릴 적 그렇게 싱그러웠던 잘생긴 사촌 오빠도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고

그렇게 시시비비 따져 조리 있게 말하던 엄마도 어느덧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고생을 많이 하여 이제 좋은 날 보기를 빌었던 큰고모는 오래 앓다 하늘나라에

미우니 고우니 으르렁대던 욕심쟁이 큰엄마는 몇 년 왕래가 없던 사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떠났다.


먹먹하고 아득하게 그들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총총 나섰다.

인사 한 번 못해보고.


평범하게 헤어졌던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거다.

늘 똑같을 것 같은, 항상 계속될 것 같은 그 인사가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눈 마지막 인사였다.

 



'콜라 오빠' 얘기를 하고 싶다.

어려운 형편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내게는 그저 '잘 놀아주던 착한 오빠'.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큰고모의 첫째 아들. 피부색이 어두워서였을까. 깡마른 몸에 까만 피부를 가진 그 오빠는 어린 내 눈에 영락없는 콜라였다.


평생 택시기사로 일했다. 우리 집에 아버지 보러 자주 놀러 왔었는데 어느 날부터 발길이 끊겼다.


무슨 사소한 문제로 틀어졌던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영문은 모르지만 아마도 각자 살기 바쁘단 이유로 챙기지 못한 모양이다.

 

재작년인가 호수에서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에 스스로 들어갔는지 실수로 빠졌는지는 모른다. 주변에는 술병이 있었다고 한다.   

 

큰고모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혼자 길러낸 다섯 아들

그중 유난히 일이 풀리지 않았던 첫째.


그래도 너무나 당연하게 택시를 몰고

볕 좋은 날 길 한쪽에 차 대고 쿨쿨 낮잠 자다

어느 날 뜬금없이 찾아올 것만 같은데


그 소식 듣기 몇 달 전, 동생 결혼식에서  게 마지막이었다.

모처럼 정장 차려입고 와서 먼저 반겨줬던 그날. 초록빛 넥타이가 멋졌다. 얼굴색도 좋았고.




시간. 에너지. 돈만 있다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가 생각한다.


'왜 요즘 그 사람과 만나지 않아?'물으면

흔히 '각자 살기 바빠서'라고 한다.


이 답은 생존하기 힘든 현실을 반영한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달마다 임대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한

대개는 일하느라 서로 챙길 시간이 없고 여력이 없고 물질이 부족하다.


요즘에는 추가 수입을 얻기 위해 본업 외에 부업까지 한다.  

너무 바빠서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시간은 아무에게나 내어주지 않는다.

에너지는 쓸데없는 일에 쓰지 않는다.

물질은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시간.

에너지.

돈.


이 세 가지가 있었다면


큰고모도

콜라 오빠도 그렇게 떠나지는, 떠나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쩌다 길에서 예쁜 모자를 보면

'우리 외할머니 사다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곧 씁쓸해진다. 외조모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 그 사실을 떠올리면 그만 끝이 어딘지 모를 상실감에 젖는다.  


내일은  것이 아니다.

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바쁘지만 지금

시간을 내고

마음을 쓰고

지갑을 열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 해야 한다. 돈은 언제나 부족하고

내일도 여전히 바쁠 예정이므로.




사람은  시간, 에너지, 물질로 돌보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자랐듯이.


예쁜 모자가 있어도 쓸 사람이 없고,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을 수 없고,

시간이 많아도 만날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인색한가.


모으기만 하는 동안 당연했던 존재들이 사라진다.


말 못 할 고통으로

남 모를 고충으로 시달리다 어느 날 홀연히. 밤하늘 별이 빛을 잃듯 자기  떠나 우주 어딘가로 향한다.


지금 떠오르는 누군가 있다면

시간, 에너지, 물질 중 하나라도 건네보자.


당신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했고

어느 날 세상에 없더라도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는지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