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느린 아이에게
축구장에서 쓰는 아이와 엄마의 성장 기록
유아 축구를 보다 보면 발견하는 특징이 있다.
첫째, 공을 보고 몰려다닌다.
둘째, 서로 공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셋째, 가장 중요하다, 같은 팀끼리 공을 두고 다툰다.
아직 팀이라기보다 각자 잘하려는 경향이 강해
같은 팀임에도 불구하고 공을 뺏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종종 본다.
푸우는 가장 느린 편에 속한다.
원래 성격이 느긋한 데다
큰 욕심이 없다 보니 열심히 뛰긴 해도 아무래도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이 뜨면 굶주린 듯 달려드는 비글 강아지들 틈에서 푸우는 '배고픈 비글을 연기하는' 배부른 골든 레트리버 같다. 게다가 가만 보니 얘가 원칙주의자 기질이 있다.
비글이 공을 쫒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깝다. 생각이나 계산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러다 보니 코치가 정한 규칙을 무시하기도 하는데 푸우는 결코 지시를 거스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코치가 '바를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 번갈아 점프하며 들어오라' 지시한다. 처음에는 다들 따르다가 하나둘씩, 나중에는 전부 일자로 우르르 달려들어온다. 그러나 푸우는 끝까지 애초 규칙을 엄수하며 꼴찌로 들어오는 식이다.
특유의 활기와 고집으로 괄괄대는 비글들 사이에서 안 그래도 발이 느려 어떨 땐 안타까운데
우리 푸우에게도 기회는 올까.
기회는 왔다.
어느샌가부터 푸우는 공을 쫒기만 하지 않고
대열에서 이탈하여 뚝 떨어져 있기 시작했다.
본능이 부딪히는 치열한 볼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공을 잡으면 번번이 빼앗기곤 하던 푸우가
최후방 디펜더 혹은 섀도 스트라이커 위치에서 기회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맞이한 5초간의 원맨쇼.
온 시선이 푸우에게 쏠린 마법 같은 순간이 왔다.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죽이며 푸우를 지켜봤다.
가장 느린 아이가 어떻게 발에 걸린 공을 살살 굴려 성큼성큼 목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비록 5초 후 항상 그렇듯 발 빠른 누군가 공을 채가면서 종료했지만, 가슴 벅찬 5초의 스포트라이트는
푸우가 축구를 시작한 이래 단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푸우 가슴에 어떤 여운으로 남았을까 궁금하다.
모두가 스트라이커일 수 없다.
발이 빠르지 않고, 공을 잘 빼앗지 못하고, 반대로 잘 지키는 재주도 없지만
푸우가 축구라는 환경에서 스스로 자기 자릴 찾아 변화를 시도하고 마침내 기회를 얻어낸 경험 - 부디 소중하게 간직했으면 한다.
성실하고 우직하게 훈련하다 보면 누가 아는가. 그 5초 안에 어떤 이변이 발생할지.
또한 가장 느린 아이가 언제까지 느리기만 하라는 법도 없다.
가능성은 열려있다.
기회의 문도 열려있다.
앞으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지 알 수 없지만
축구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세상 곳곳
골맛뿐 아니라 다채로운 승리의 맛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푸우답게 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