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기고자 하는 마음

축구장에서 쓰는 아이와 엄마의 성장 기록

by 소울민트

'반드시 골을 넣어야 해.'

'끝까지 밀어붙여야 해.'


수업을 앞두고 아빠가 푸우에게 다시 한번 확인한다.

웃음기 싹 가신 굳은 낯. 투우장 들어가는 소도 아니고 이게 뭐람.


옆에서 내가 얼른

'네가 즐겁게 운동하면 되는 거야.'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좋은 거지.'하고 중화제 풀듯 여유 가득한 음성으로 덧붙였다.


벌써 아이가 축구를 무겁게 느끼게끔 하는 건 못마땅하다. 하지만 꼭 이기고자 하는 마음. 이것도 축구의 중요한 구성요소일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지령(?)을 받아서인지 오늘 부쩍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배고픈 비글들 사이 배고픈 척 연기하던 레트리버가 어설프지만 웬일인지 손짓 발짓

온몸으로 허기를 어필하고 있다.


공 잡으면 뺏기고

또 놓치기를 반복하던 푸우가


부아가 치밀었는지

중거리 슛을 시도한다.


드리블하면 뺏기니까 아예 몸을 돌려 슈팅하거나

패스해버린다. 그렇다고 드리블을 생략하다니 웃음이 터졌지만 한 번. 두 번. 푸우의 슛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한 문이 닫히니 다른 문을 연,

드리블이 막혔을 때 타개할 방법을 찾은 푸우가 기특하다. 난 오늘 수업 이걸로 충분하다.


푸우 모습이 성에 차지 않아 물 마시러 들어온 애한테 '너 자냐?' 독설 날리던 아빠도 오늘은 칭찬왕. 잘했어. 푸우!


우리는 이만하면 됐다고 등을 토닥이는데 푸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기고 싶어요.'




푸우의 분투는 좀처럼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경기 종료를 불과 몇 분 남긴 시점

코치가 푸우에게 페널티킥 기회를 줬다.


속닥속닥. 푸우의 귀에 대고 뭐라고 하는 건지.

비장한 눈빛으로 선 푸우는 하루의 설움을 날리듯

강력한 슛을 날렸다. 펑ㅡ


놀랍게도 그게 수비수를 뚫고 골망을 흔들었다.


'저게 골이 되네.'

카메라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저 여자애는 푸우보다 더 신나서 환호한다.

얼떨떨해하던 푸우는 그 아이를 보고 비로소 성공을 실감한 듯 펄쩍펄쩍 뛰며 기쁨을 표현했다.


코치와 기분 좋은 하이파이브를 마치고 우리 쪽으로 와서 엄지 척.

눈에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이 가득 담겼다. 푸우에게도 저런 눈빛이 있었다.



승리의 밤이 지나고

통쾌한 골맛의 여운이 아직 입안을 맴도는 아침


두 번째 팀 Y 수업에 나섰다.


껄끄럽긴 하지만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현재팀 S와 비교해서 아이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지도 봐야 하니 따라나섰다.


Y팀은 항상 동적일 것을 주문한다.

공이 올 때 그냥 서있지 말고

발 구르고 있다가 드리블하며 이동하거나, 차라고 한다.

공을 갖고 걸어도 안된다. 천천히 밀면서 움직여야 한다.

찰 땐 멈추지 않고 바로 차야 한다. 달려와서, 공이 발 어디에 닿는지 끝까지 보고 차야 한다.


실수해도 좋지만 공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지시대로 세부 사항을 정확히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전체적으로 훈련 내용을 잘 소화하면 잘했다고 한다.


S팀 코치는 젊고 섬세한 데가 있다.

Y팀은 중년이고 좀 거친 편이다.


S팀 코치는 엄격하면서도 아이들 마음을 잘 알아줘서, 잘하는 아이뿐 아니라 처지는 아이도 감안하여 두챙긴다.

Y팀 코치는 훈련에 천착하여, 좋은 점과 좋지 않았던 것을 매우 정확하게 알려준다.


'아까보다 잘했어.'

'이번에는 틀렸어.'

'둘 중 다른 발로 찼어야 해.' 등등.

매우 진지하게 어린 선수들을 대한다. 대충 칭찬으로, 덮어놓고 탄식으로 얼버무리는 일이 없다.


S팀은 주마다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고 연마하도록 한다.

Y팀은 드리블, 패스, 슈팅 등 기초 훈련을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한다.




둘 중에 어느 코치가 더 나은가.

두 팀 중 어느 팀이 더 훌륭한가. 이런 식의 비교는 의미 없다.

지도 방향이나 방식이 다를 뿐,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은 동일하다고 믿는다.

태도와 화법면에서 좀 더 세련되거나, 투박한 차이는 있지만

둘 다 필요하다고 본다.

곱게 자라야 할 유아인 동시에

승부에 나서는 선수이기도 하기에.


기술도 접할 필요가 있고,

기초도 다져야 하는 게 맞으니까.


마무리 시합을 끝내고

Y팀 코치진과 어색하고도 반가운 인사를 마쳤다.

모든 아이들이 떠났는데 푸우는 계속 운동장에 남겠다고 고집한다.

뾰로통한 얼굴로 딱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주위를 뱅뱅 돈다.

놀이터도 싫고. 간식 사러 가는 것도 싫단다.


왜 그래. 엄마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아니란다. 근데 왜.



지난번 봤던 한 카페 포스터가 생각났다.

수제 딸기청을 넣은 딸기 라테. 시그너처 음료라고 소개했던 큰 광고 포스터.


'푸우야, 너 좋아하는 딸기우유 맛있게 하는 데 있어!'

무슨 영문인지 잔뜩 골이 난 아이를 잡아끌었다.


걷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다.


드디어 카페.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헤매다 겨우 발견했다.


딸기며 각종 과일 사진이 있는 주문 키오스크를 보더니

푸우가 눈을 빛낸다. 딸기 요구르트 스무디를 손으로 가리킨다.

딸기 라테가 시그너처라는데.


'어떤 게 덜 달아요?'

'둘 다 달아요... 그런데 딸기 요구르트는 딸기잼이 들었고, 딸기 라테는 수제청이 들었죠.'

새초롬한 20대 여자가 넌지시 핵심 정보를 건넨다.


그럼 딸기 라테지.


비슷한데 태생이 다르다.

수제청과 공산 딸기잼은.


Y팀과 S팀에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는

현저한 질적 차이가 존재 할런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절대 눈 풀지 말고 매의 눈으로 봐야지.




딸기 라테 몇 모금에 기분 좋아진 푸우에게 다시 물었다.

푸우야 아까 왜 화났던 거야?


'잘하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되지 않아 속상했어요.'


푸우 마음에 승부욕이 핀 걸까.


딸기 라테 홀짝이는 푸우 눈빛이 범상치 않다.



어제는 통쾌한 골맛에 흥분했고

오늘은 미미한 경기 운영에 씁쓸했다.


연이어 두 번 훈련 나쁘지 않다.


다른 것보다,

어제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늘 다시 마음 잡고 처음부터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게 아닌가.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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