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우는 소리가 나면 이유 불문 ‘무슨 일이 있다’고 오해하기 십상이란다. 가뜩이나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아동 학대 사건으로 사람들이 예민한데, 오해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말하기 이전 아이에게 울음은 심각한 고통의 표현이라기보다 의사소통 수단일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가 큰 소리로 울기라도 하지 않으면, 외부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때로는 창문 닫는 게, 오해가 아닌 진실을 막는 행위인 건 아닌지 씁쓸할 때가 있다.
집에서 온리원(only one)이었던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원 오브 뎀(one of them) - 아이 1, 아이 2, 아이 3... 아이 12 중 한 명 - 이 되는 충격적인 신분 변화를 겪는다. 혼자 독차지했던 장난감도 다른 아이와 나눠 쓰거나 양보하기를 강요받는다. 뺏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울면 되었다. 당장 엄마가 달려와 필요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시설에서는 아무리 울어도, 가정에서 엄마가 하듯 아이의 욕구를 충족하기란 불가능하다. 눈두덩이 빨개지도록 울면서 이리저리 바닥을 기어 다니는 꼬물이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엄마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이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리라.
집이라면 엄마가 오로지 아이 기호에 맞게 음식도 하고 스케줄을 짜지만
시설은 단체의 논리에 따라 다 같이 정해진 음식을 먹고 일정한 시간에 약속된 활동을 해야 한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에 어떤 아이는 집에 오면 짜증 부리고 잘 운다. 물론 그 아이는 어린이집에서도 잘 운다. 시설에서 아이가 어떤 변화를 맞닥드리는지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울음은 불가피한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잡는 적응 기간이 지나서도 울면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원장님이 3월에 들어온 아이를 익살맞게 '삼월이'라고 했다. 삼월이는 의례 잘 운다고 여기므로 한 달 동안 극진히 보살핀다. 그런데 오월이, 유월이가 와서 울면 교사의 심기가 복잡해진다. 학사 운영에 차질을 빚을 만한 부담이고 스트레스다. 어린이집에 처음 온 아이는 그냥 엥하고 울지 않는다. 세상 무너진 듯 온 힘을 다해 박박 운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조물주의 응답을 구하듯 처절하게 운다. 그런 아이 한 번 보고 나면 교사는 혼이 쏙 빠진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 달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리고 한 아이가 울면 멀쩡하던 다른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떼창 하듯 같이 우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