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주방 일하는 잡부’는 분명 아니다. 교육이 좀 많다. 보육 교직원 교육이 수시로 있다. 코로나 이후부터 일을 시작해서,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온라인 교육이다. 그 얘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폰만 있으면 교육에 내 개인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장이 말한다. ‘들을 만한 내용이 많아요.’‘가만 듣다 보면 재밌어.’‘남는 시간에 하세요.’
업무 시간은 단 두 시간이지만 교육에 저녁 시간을, 어떨 땐 주말 전체를 바쳐야 한다. 하지만 보수는 없다. 아동학대 예방 및 신고의무자 교육, 영유아 건강 영양, 식중독 예방교육, 긴급복지 신고의무자 교육, 장애인 학대 신고의무자 교육, 장애인식개선 교육,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개인정보교육 등등. 단순 수강만 하면 되는 교육부터 퀴즈, 시험을 일정 점수 이상 통과해야 수료증을 주는 필수 의무 교육까지 시기별 분기별로 있다. 어디 교육뿐인가. 학기가 시작하는 3월부터 점검, 평가, 서류, 교육 등 조리 외 신경 써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풀타임 근무자가 아님에도 주방에 관한 모든 일 해내기를 기대받는다. 딱 두 시간 일하는 자에게 높은 수준의 의무와 책임, 직업의식을 점점 더 요구한다. 괜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 밥 해주러’‘두 시간 알바 삼아’와 같은 마음으로 발을 들였다간 큰코다친다. 짧은 근무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이 분야에서 경력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위시하여 ‘직장 어린이집’‘민간 어린이집’ 등 규모 있는 시설의 일자리를 알아봤다. 급여 수준도 높고 처우가 좋다기에.
허구헌 날 간택되기를 기다리며 일 년 중 상당기간을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백수로 지내느니, 혹은 밥벌이한다고 무작정 이 일 저 일 뛰어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알바 신세로 전락하느니.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떳떳이 쓸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의 전문인으로 우뚝 서고 싶었다.
아줌마라고 애가 있다고 얼마나 거절당했는지 모른다.
경력 단절은 둘째치고 ‘엄마’라고 하면 면접관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사회가 가장 혐오하는 존재가 ‘애 있는 아줌마’라는 사실을 통절하게 경험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성 자체가 한국에서는 비호감인 것 같다. 결혼 전에는 ‘남자 친구 있나?’‘결혼 언제 할 거냐?’ 이런 질문으로 떨어뜨릴 빌미를 찾고, 결혼 후에는 ‘애가 있나?’‘갑자기 애가 아프면 어떡할 거냐?’ 등 질문으로 내치려고 벼른다.
일터에 나온 엄마는 일말의 모성도 보여서는 안 된다. 일단 미소를 띠고 ‘아이가 관심밖에 있는, 필요하면 언제든 보모나 부모에게 밀어둘 수 있는 물건’인 것처럼 설명하며 자기 모성에 침을 뱉어야 한다. 그리고 회사가 부르면 언제라도 ‘아이를 내동댕이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면접관이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사회에 진입하려는 모든 여성은 이처럼 ‘모성의 거세’라는 과정을 거친다. 자의든 타의든, 오로지 모성을 거세한 여성만이 간신히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 특히 중년 여성을 환영하는 유일한 곳은 ‘주방’이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자 웬만한 알바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 사장님이 알바보다 나이가 적은 걸 곤란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방에서 난 생생한 젊은 피였다. 사회에서 버림받다시피 했지만, 주방에서는 유망주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새 희망이 차올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일이라고 판단되면 했다. 급여와 상관없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내 시간을 가져다 썼다. 추가 근무라 해도 좋고, 시간 외 근무라 해도 좋았다. 대가가 없더라도, 업무 외 시간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성에 찰 때까지 끝까지 했다. 교육도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감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