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이자 초혼으로, 엄마이자 계모로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내 가정이 재혼가정인지, 내게 의붓 자녀가 있는지, 내가 말하지 않는 한 모르지만.
나는 초혼인데, 낭군이 이혼하고 나와 결혼했기에 재혼이다.
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는데, 낭군에게 딸이 있기에 자동으로 계모 신분(?)이 되었다.
재혼 VS 초혼
엄마 VS 계모
이 구도로 생각해보자면, 난 재혼에서 계모로 이어지는 조합보다는 당연 초혼 - 엄마 조합이 맘에 든다.
전래동화, 명작동화에서처럼
난 가여운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누굴 학대하려고 계모가 된 게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더니 계모가 되었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셨다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무슨 말 끝에 ‘계모라 무서워.’라고 했다.
엥?
모든 의붓 엄마가 그런 건 아닌데.
아이가 어려서부터 접하는 계모는 질투하고 포악하고 학대하고 미워하는.. 그리고 무서운 존재다.
이 거대한 사회적 인식, 강고한 믿음, 편견 어린 교육 앞에 ‘그건 아니야’ 말하는 게 힘겨웠다. 무력감을 느꼈고 죄지은 것 없이 스스로 변명하는 것 같았다.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계모를 대변하는 듯한 착각이 들어 부담스럽기도 했다.
의붓 부모 괴롭힘으로 유명을 달리한 아이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그럴수록 ‘이 가정이 재혼가정이고 내가 계모이며 의붓딸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굳이 떠들고 다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사실. 자랑스럽지 않다.
내 아들에게조차. 제도권 교육에서 ‘계모=악한 존재’라 배우는데 ‘내가 계모야’ 했다가는 충격받을 것 같다. 최대한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말하거나 야금야금 알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늘 무너질 듯 바들바들 떨면서 대단한 비밀 털어놓듯 할 건 없잖아. 난 힙한 엄마(이고 싶으)니까.
내가 정보를 주기 전에 아이가 이미 계모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가득 담아온 게 아쉽긴 하지만, 최고가 아니라면 최선을 하면 되지.
사람들은 다 이유불문 계모가 나쁘다고 한다.
내 아이 혼자 ‘아니야. 그렇지 않아’ 말하는 게,
일반. 평균. 다수와 다른 인식을 갖는 게 어쩌면 가장 두렵다.
아이 혼자 외로우면 어쩌지... 또. 별 걱정을 다한다.
다시 말하지만,
‘난 초혼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남편을 배제한 철저히 내 입장에서는 그런데, 왜 결혼과 함께 더러운 계모 이미지를 덧입어야 하나. 억울한 면이 있다.
결혼했으면 한 거지
초혼이니 재혼이니 따지는 것도 촌스럽다.
그냥 엄마면 엄마지 꼭 친엄마니 새엄마니 따진다면 그렇단 말이다. 덮어놓고 ‘계모래’ 눈 흘기고 수군댄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우는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가족 단위- 아빠, 엄마, 자신으로 구성된 단순한 가정에 속한 줄 알고 있다. 꿈에도 제 엄마가 계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주말마다 통화하는 누나가 이복 누나라는 것도, 이혼이니 재혼이니 상속이니 다툼이니, 복잡한 어른 사이 이야기를. 이런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슬슬 말해야겠다. 내가 계모라고.
훌륭하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잘못한 것도 없다. 그렇다. 아무도 묻지 않고 내가 말하기 전에는 누구도 모르니까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계모는 악하다’는 관념을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그래서 말한다. 아니다. 틀렸다. 계모가 아니라 사람이 악한 거다.
듣든지 안 듣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