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틈을 주세요
축구장에서 쓰는 아이와 엄마의 성장 기록
여기 부모는 아이 맡기고 장 보러 간다던가 차마시러 가는 일이 없다.
축구 수업 부모는 어디 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참관한다.
부모끼리 담소를 나누더라도,
일단 한 두 명씩 일어나 펜스 앞에 서면 나중에는 모든 부모가 기립하여 훈련 모습을 지켜본다. 사진 찍기도 하고 간혹 자기 애가 딴짓하고 있으면 주의를 준다.
그러다 ‘게임’이라고 일컫는 미니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돌변한다.
‘뛰어. 받아. 잡아. 패스...’
무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마스크까지 끼고 달음질하느라 헐떡 벌떡. 곧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뚝뚝 떨어지는데 흥분한 부모는 소리친다. ‘걷지 말고 뛰어.’
아이 사정은 안중에 없다. 펜스 밖에 선 부모는 종종 잔인하다.
한 아이는 부아가 치밀었는지 뛰다 말고 펜스 앞까지 와서 제 엄마 입 막는 시늉을 한다.
이미 몇 번 귀 막고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몸짓을 했는데, 그 엄마는 멈추지 않고 잔소리 폭격을 이어갔다. 코치도 제지했지만 그때뿐이다.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다시 시작이다.
며칠 전 히딩크 감독이 방한해서 당시 애제자인 박지성(전북 현대 어드바이저), 이영표(강원 FC 대표이사)와 함께 인터뷰를 가졌다.
유소년 축구에 대한 제언 중 ‘아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흥미로웠다.
지금 패스해야 하는지
슈팅을 할지 드리블을 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단다.
뭘 했으면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를 물어본다.
무조건 ‘틀렸다’ 하지 않고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방향을 제시하고 생각을 열어준다.
부모가 소리치면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부산하게 돌아다닌다. 다리는 얼어있고 표정은 굳었다. 그 방향으로 뛰라니까 뛰는데 왜 뛰는지 모른다. 차라니까 엉겁결에 차는데 그러다 골이 나와도 크게 기쁘지 않다. 골을 넣고도 어리둥절 서 있다.
‘쟤는 왜 저러니’가 아니라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지나치게 몰아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돼지가 아니다. 요즘은 동물도 권리가 있다고 존중받는다.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훈련을 하더라도 인간성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축구도 사람이 하는 거다. 질문하고 설명하며 기다려줘야 한다.
사람이 하면 달라야 한다. 축구가 뭐라고, ‘축구 훈련하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아이 인격을 무시하는가. 조기 교육이 학대로 흐르는 건 종잇장만큼 얇은 순간 아닌가 싶다.
이런 현실에서 가끔 유소년 캠프 사건 사고가 터지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탄식한다. 어쩜 사람이 저런 짓을 할 수 있냐고. 어려서부터 사람 대우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건데 누구 탓을 할까.
질문은 아이를 인격적인 존재로서 존중하는 방식이다.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게 하지 않고, 수시로 다그쳐 두뇌를 정지시키지 않고, 충분히 유연한 환경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사용하게 한다.
아이는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생각하는 존재로 성장한다.
아이는 운동하지만 사고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다.
몸만 크지 않고 마음과 생각의 크기도 자란다.
벌써 5년 전이다. 낭군을 지켜본 세미 프로팀 관계자가 ‘본능적으로 차지 않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오래 훈련한 엘리트 선수는 생각할 필요가 없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건데 확실히 다른 관점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생각한다고 머뭇거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능동적으로 경기를 풀어 나가야 할 시점에 맥없이 같은 자리에 머물며 뭔가 달라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본능 축구'하라는 얘기는 반복 훈련으로 감을 기르라는 거지 생각하지 말라는 건 아닐 게다.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댄 게 꼴 보기 싫었다는 거지 생각한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으리라.
본능은 기본기에 관한 거고 사고는 활용에 관한 거.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고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나눌 수도 없다. 기본기와 사고력은 상호 보완한다.
본능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능력을 죽여서는 안 된다.
윽박지른다고 기본기가 몸에 익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격적인 훈련 기조하에,
본능이든 사고든 때에 맞게 발현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발달하도록 훈련하면 가장 이상적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