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한 훈육

축구장에서 쓰는 아이와 엄마의 성장 기록

by 소울민트

푸우보다 한 살 어린아이가 있다. 작은 목에 버거워보이는, 제 눈빛보다 번쩍이는 금목걸이를 항상 차고 있다. 그런데 올 때마다 운다. 수업 중 수차례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두 번째 수업까지는 코치가 달래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했지만 세 번째부터는 단호하게 '이러면 축구 못한다' 내보냈다.


다른 아이들의 시간과 비용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유아 수업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수업에 손해를 끼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 아이가 깽판 치면 모든 아이가 깽판의 길로 나아가는 건 순식간이다. 깽판 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는 것도 수업에 분명한 방해 요소이다.




이 아이는 얼추 잘하는 아이다. 그런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본인보다 잘하는 팀원들을 보면 두렵다. 승부욕이 강하고 자기가 밀리는 걸 견디지 못하니 수업에 들어가기를 아예 거부하고 만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한 건 아니지만, 이 년째 축구 육아 중인 내 눈에는 그렇게 읽혔다.


아이 엄마는 조급하고 당혹한 마음에 아이를 다그친다. 데리고 나가서 혼내는 소리가 벽을 타고 쩌렁쩌렁 울리지만 소용없다. 그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기에. 모자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해할 수 없는 훈육이 있다.


아이에게 ‘넌 왜 자신감이 없어?’ 윽박지르면서 자신감을 요구한다.

칭찬하고 격려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감 갖기를 바라는지.

아이 자존심은 생각하지 않고 친구들 앞에서 호통치고 훈계하면서 어떻게 자신감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잔뜩 주눅 든 아이는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져서 울고만 있다. 변명하지도 않고 반박하지도 않는다. 저 아이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자신감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가엽게도 자기가 잘못한 거라고만 여기고 자괴감에 빠져 있겠지.




비슷한 예로, 자유를 주지 않으면서 창의성을 요구하거나

, 기를 다 죽여 놓고 리더십을 기대하는 일이 있다. 모두 아이러니하다.


교육이 억압과 학대, 스트레스는 아닐 텐데. 어떤 부모 혹은 지도자는 배움이 괴로운 거라 인식하게 한다.

한 강사가 제안했다. ‘아이가 둘 뿐이니 경쟁을 붙여보고자 한다.’고. 내 귀에는 ‘대놓고 차별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그가 그렇게 배웠구나.’ 그의 과거를 짐작할 뿐 내 아이에게 적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갇히고 닫힌 틀 안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게 억압, 학대, 스트레스를 뺀 교육은 상상하기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 벽 안에서 고함을 먹고 자란 아이는 벽 바깥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모른다. 뛰어놀 풀밭이 있고, 헤엄칠 물이 있다. 대체 아이가 왜 혼나야 하는가. 즐겁게 흥미를 갖고 참여할 때 자율성이 생기고 자신감도 따라오는 거 아닌가.




아이가 말로 채 설명하지 못하는, 혹은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을 읽어주고 위로해줄 수는 없을까. 좀 더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것은...?

어른이 아이보다 나으니까. 아니, 나아야 하잖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똑같이, 날마다 실수하는 초보 엄마로서 저 아이 엄마에게 연민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훌륭하게 생각해도 실생활에서 뜻한 대로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되는 건 아니니까.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격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