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흘기는 것 같았다.
나와 인사할 때 그 순간에만 마지못해 여린 미소가 스쳤다.
인사도 그냥 인사인가. 가슴을 맞대고 볼을 내주는 비쥬(bisous).
친분 없는 사이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웃지 않으면 편협하고 옹졸한 여인이 되니까
대가족 모임이 있을 땐 얼굴 활짝 펴고 '미스코리아상'을 하고 있었다.
그 대가족도 그냥 대가족이 아닌, 전처 가족 포함한 대가족이었으니
웃었다기보다, 안면 근육 펼친 거다.
나는 점점 연기자가 되어 갔다.
시댁 거실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전처 사진이 붙어있었다.
지하 와인 저장고에는 2년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 와인 곁에, 전처 가족 와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리아는 오늘은 엄마 다음날은 아빠. 이런 식으로 전처와 낭군 사이를 오가며 지냈고, 시댁은 그 가운데 허브- 중간 기지 역할이었다. 전처 가족과 우리 부부를 잇는.
저녁 식사 중에도 밤에 누워서 티브이를 볼 때도
전화가 왔다. 소소하고 굳이 그 시간에 묻지 않아도 될 일로 연락해서 상의하곤 했다.
구여친이자 전부인이 내 친구야? 하루가 멀다 하고 보게.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전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내 일상이었다.
지나간 사랑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박물관에 걸린 그림 보듯 할 수 있지만
분명한 실체로서 내 눈앞에서 말하고, 웃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시댁에서 응당 내 자리인 큰 며느리, 형수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물러나지 않는 모양새라면
내 남자의 이혼은 끝난 게 아니다. 지금도 진행중인 거다.
이미 단단하고 완벽해 보이는 이 대가족 체제에서 대체 내 자리는 어디인가 알 수 없었다.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언어적으로 꿔다 논 보리 자루쯤 되었을까. 시댁에서 나란 존재란.
이물감을 느꼈다. 이 대가족 속에서 난 '이물'이었다. 이 완전한 평화, 이 완전한 균형. 내가 움직일 때마다 이들이 큐빅 맞추듯 짜 놓은 질서에 균열을 내는 것 같았다. 나만 빠지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매끄럽게. 잘 돌아갈 것만 같았다.
시댁 입장에서는 내가 굴러온 돌인데 박힌 돌 빼려고 드는 건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는 매우 악독한 처사'가 될 게 분명했다. 이때 나는 모두에게 마녀가 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여자 하나 잘못 들여서 집이 망하게 생겼다- 뭐 이런 얘기가 되겠지.
그리고 리아. 부모 이혼 후 '대가족' 체계에서 안정을 찾고 위안을 얻었을 리아에게
아빠의 아내로 인한 변화는 새로운 혼란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비록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어른이니 괜찮아야 했다. 둘 중 누군가 겪어야 하는 혼란이면 내가 겪는 게 맞았다. 내 눈엔 한없이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구조였지만, 리아에게는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두 동강 난 집을 이어 만든 환상적인 공간은 본질상 슬픔을 내재하고 있었지만. 리아는 그 안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어른들의 염려와 사랑 때문인지.
연기는 형편없어도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은 모두가 공유하는 진심이었다. 그 지점에서 생각하면 지금도 한 점 후회 없다. 대가족에서 찍소리 없이 지냈던 거.
물론 낭군이 고생했다. 모임에서 우아하게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지없이, 온갖 서러움과 분노의 악다구니를 쏟아냈다. 처음에 그는 가만있더니 나중에는 으르렁으르렁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다툼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더 부부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갔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죄인이자 은인으로서, 칼로 물 베듯. 아무리 다퉈도 갈라지지 않는 놀라운 회복력을 경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