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라는 신앙을 전수하려면
축구장에서 쓰는 아이와 엄마의 성장 기록
구장에서 손을 베베 꼬고 있다.
동료들은 악착같이 공을 지키고 뺏으려고 하는데
푸우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나, 걷거나, 쉽게 주의를 놓치고 딴생각하는 모습도 보였다.
2주쯤 된 거 같다. 이런 모습이 나온 지.
좋지 않은 싸인이라 생각하여 바로 빼내고 싶었다.
본인이 하겠대서 넣어놓고
조금 나아졌나 하고 보면 변화는 미미했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말고 할 거면 제대로 하자' 타일렀지만
알아 들었는지 모르겠다. 만 5세 일곱 살 아이.
'아이가 좋다는데 지켜보시죠' 코치가 말했으나
용납하기 어렵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 보이는 거.
게다가 다른 과목도 아니고 축구.
혼자만의 일탈로 그치는 게 아니라 팀에 피해를 끼칠 수 있으니.
여기 분위기가 어디 그냥 공 뻥 차고 '아 잘했네 박수' 인가.
놀이. 재미. 흥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각 잡고 훈련이다. 이 아이들은 이미 꼬마 선수들이다.
워낙 진지해서 작은 방황이나 일탈이 묻히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 년 전 타 팀에서 상급생 하나가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수업에서 배제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무엇보다 푸우가 그런 '수업 분위기 저해하는 못난이'로 전락하면 어쩌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단체에서 문제아 취급받기 시작하면 곤란하다. 익숙해지면 돌이키기 힘들다.
푸우 아빠는 태권도 때문이란다.
일주일에 한 번하는 수영 갖고 뭐라 하지는 않는데
주 사흘인 태권도 수업은 하루가 멀다 하고 팬다. 안 그래도 평소 푸우가 조금만 늘어지면 '태권도가 푸우를 피곤하게 한다'며 타박인데. 지난 며칠간 태권도는 반드시 타도해야 할 원흉이 되었다.
정말 태권도가 문제인가. 아니다.
태권도는 하루 50분 수업에 불과하다. 무술이라기보다 유아체육, 몸놀이에 가깝다. 이 정도 신체활동은 자칫 체력에 부담이 될 수 있는 '훈련'이라고 볼 수 없다.
푸우가 원해서 스스로 택한 과목이기도 하고, 거의 모든 또래 아이들이 하고 있어서 혼자 안 할 수도 없다. 지금도 애들 사이에서 벨트 색 갖고 말이 나온다는데. 학폭 사건이 왕왕 일어나는 현실에서 순한 푸우에게 잠재적인 자기 방어 수단은 필수다. 아직까지는 진지하지 않아도 '태권도를 한다'는 거 자체가 푸우에게 심리적인 '자신감 패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이 무엇일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푸우에게 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공이 오는 게 무서워.' 푸우가 말했다.
'공이 오면 차면 되잖아.' 반문하자
'공을 다른 방향으로 차면 어떡해.' 한다. 푸우는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수할 권리 있는, 수천수만 번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아이가
어쩌다 실수가 두려워 움츠리고 옴짝달싹 못하게 된 걸까.
이제 부모의 시간이다.
축구 훈련이 과도하다. 금요일 저녁 수업을 마치고 다음날 오전부터 한 시간 반 다시 수업한다.
푸우는 토요일 훈련까지 하니 힘들다고 이미 몇 번 얘기했다.
처음에는 '축구를 잘하고 싶다'며 아빠 뜻에 흔쾌히 따랐던 아이가 막상 해보니 버거웠던 것이다.
아빠는 양 훈련에 각기 다른 이점이 있다며 푸우가 피곤하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고, 받아주지도 않는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이어지는 총 2시간 30분에 달하는 축구 훈련을 줄일 생각이 추호도 없다.
푸우 딴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토요일 훈련을 소화할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금요일 훈련에 소극적이 될 수도 있겠다.
특히 지난 일요일에는 축구팀 행사로 오전 내내 뛰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까지 축구한 거다.
가관이었다. 헐랭헐랭 설렁설렁. 투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느슨한 태도로 경기장을 어슬렁거렸다.
본인은 힘이 다 빠져서 쉬고만 싶은데 억지로 집어넣어 놓으니까 그 모양이 되는 거다.
팀원이 부족하다며 여기저기 깍두기같이 불려 다니기까지 했으니 푸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경기에 대충 임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리라. 반항도 아니다. 쉴 틈이 없었으니 경기중에 쉴 수밖에 없었던 거지.
무기력하게 움직이는 푸우에게서, 꼭 일 년 전 봤던 그 상급생 문제아(?)가 떠올랐다. 당혹스러웠다.
푸우에게 축구는 아빠가 전수한 신앙 같은 거다.
꼭 모태신앙 같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장에 다녔는데 별 열정은 없는.
열정이 있더라도 아빠 열정이 너무 뜨거워 부담스러운.
아빠 신앙이 바로 자녀 신앙이 되는 건 아닌데.
스스로 깨달아야 금요 훈련, 토요 훈련, 철야 훈련, 새벽훈련까지 참여하는 건데.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땐 어떤 좋은 것도 좋은 것이 될 수 없다.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쏟아부어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 그냥 강압이다.
기다려줘야 한다.
원하게 해야 한다.
스스로 갈망하도록, 배고프게 만드는 게 신앙을 전수하려는 부모의 최선 아닐까.
푸우는 작은 사람이다. 강요하지 말고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설득하더라도 선 넘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떠먹이다가는 탈 난다.
운동장에서 방황하는 푸우 모습은 신앙심 깊은 교인들 사이에서 어리둥절했던 내 모습과도 닮아있다.
여기저기서 '주여, 주여'하면서 뜨겁게 세계 인류와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데 나 혼자 멀뚱멀뚱했다.
내게는 그들과 같은 신앙이 없었다. 기도를 하면 했지 머리 위로 손을 올리거나 팔을 뻗어 휘저을 만큼 간절하지 않았다.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열망이 없었다. 거기 계속 앉아있는다고 없는 신앙심이 생길까. 위화감만 들뿐.
'기도 언제 할 거야?'
'소나무 뿌리 뽑을 때까지 기도해야 해.'
'좀 더 예배 나오라고.' '오늘 몇 번 기도할 거야?'
'더 열심히 교회 나와야 해.'
'좀 더 기도하라고.'
앞서 언급했듯, 지금 축구가 가볍게 경험할 수 있는 취미반 수준이 아니다. 여느 체육활동처럼 '놀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푸우를 이 팀에 두는 게 혹시라도 축구라는 신앙을 강요하는 게 될까 봐. 미안하다.
'아빠가 자꾸 축구 못한다고 해.' 드디어 푸우가 단서가 될만한 중요한 불만을 토로했다.
푸우를 미적미적 망설이게 한 두려움의 결정적인 원인은 아빠의 높은 기대와 타박. 일 수 있겠다.
푸우 아빠는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푸우를 보고 답답해하다가,
어렸을 때 운동장에 선 본인에게 소리치며 화냈던
아버지 모습이 기억났단다.
자신도 지금 푸우처럼 운동장에서 겉돌던 때가 있었다고.
앞으로 절대 푸우를 다그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빠도 엄마도 모두 반성했다. 푸우의 변화를 촉구하기보다, 부모로서 먼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그러면 푸우 수업 태도도 자연스레 돌아올 것이다. 느리더라도 차분하게 한 발 한 발 본인의 훈련을 완성해가던 푸우가 벌써부터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