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사가 어때서 3

자존감 문제없는데 가끔

by 소울민트

일 마치고 장 보러 가기도 하고, 날씨에 따라 겉옷이나 우산 넣고 다니기에 좋아 면으로 된 넉넉한 가방을 잘 들고 다녔다. 하루는 조리복 갈아입는 창고 같은 공간에서 앞치마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누군가 잽싸게 들어왔다. 딱히 창고에서 할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곳에 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내 동태를 감시하는 것. 괜히 어정쩡하게 서서 너무 속이 빤히 보이게 행동하니 아무 말없이 내내 민망했다.

그가 숨죽이고 주목했던 앞치마 주머니에는 볼펜 한 자루와 식품 정보를 적는 종이가 들어있었다.


'날 의심하는구나.' 창고에는 조리복 외에 양파, 감자 등 저장 식품이 있었고 행사 선물로 구비한 장난감과 간식도 있었다. 자존심 상하게 고작 잡동사니나 슬쩍하는 좀도둑으로 보는 건가.

내가 그동안 사람 말을 경청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배려한다고 했던 모든 선하고 바른 삶의 모습이 한순간 싸구려 비닐 플라스틱으로 변질된 것 같았다. 싹 걷어서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가 아니면 된다지만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 형성되는 사회적 동물로서 자아는 분명 상처 입었다.


의심은 그 사람 문제다. 의부증, 의처증이 병인 것처럼.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땐 꽤 혼란스러웠다.




퇴근 시간이 되어 가방을 챙기는데 또다시 그 병적인 시선을 느꼈다.

아무 근거 없이 '저 여자의 가방은 근무시간에 몰래 넣은 절도 물품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의 시선.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일 거라는 시선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긍정적인 힘을 준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자존감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였다.


핸드크림. 연초에 원아 부모가 교사 모두에게 선물했다며 내 몫으로 건네줬다. 원에서는 쓸 일이 없어 물기 닦고 퇴근길에 써야겠다 싶어 가방에 넣는데, 그 순간 편집증적 시선이 쏟아졌다.

'이거 나 쓰라고 준 핸드크림이잖아. 내가 뭘 잘못한 건가.' 강렬한 레이저에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혹시 내가 착각한 건가 기억을 되짚어봤다. 내가 의심할 여지를 준 건가 내 행동거지를 찬찬히 스캔해봤다.


상자에 감사 메시지가 쓰여있었다. 선물 맞다.


의심이란 그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선물로 받은 핸드크림을 가져간 게 잘못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유발한다. 개인에나 조직에나 도움 될 게 없다.




동료가 없다. 선배도 없다.

속상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오랜만에 조리 선생님께 연락해서 하소연했다.


음식 싸온 적 있나고 물으셨다.

전혀 없었다.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런 걸 받는 게 결국 내게 짐이 될 거라 생각해서

콩 알 한쪽도 갖고 나온 적이 없다. 주더라도 거절했다.


이렇게 처신해도 의심받는구나 억울함이 몰려왔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의심은 병이다.




그러다 지난해인가 조리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번뜩 스쳤다.

조리사는 투명 가방을 갖고 다녀야 한다는 어느 조리사 이야기. 조리사는 '손버릇이 나빠서 물건을 슬쩍할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 쉽다면서 투명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자조 섞인 글이었다. 그땐 뭘 그렇게까지 하고 넘겼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내게 그때 읽었던 그 글만큼 절실한 게 없었다.


그렇다. 투명 가방이었다.


당장 투명 가방이 없으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비닐봉지에 휴대전화, 이어폰 등을 넣어 다녔다.

일주일 뒤 인터넷에서 주문한 투명 가방이 도착했다. 제법 견고한 사각 투명 가방이었다.


그 이후 내 고민은 싹 해결되었다.


혐의의 시선이 사라지고 내가 주머니를 뒤적이든 가방을 여닫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투명 가방에 작고도 사적인 소지품을 흔들며 출퇴근하는 마음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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