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사가 어때서

어쩌자고 다시 기어왔

by 소울민트


다시는 조리 일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 쪽은 쳐다보지도 말자고. 과중한 스트레스로 그새 십 년은 삭은 얼굴을 매만지며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였다.


예전에 J목사가 '왜 상처를 받냐. 상처받지 마라. 받고 말고는 네가 결정하는 거다.'라고 했다.


이 말에 비춰 '내가 상처나 받는 수동적이고 피학적인 태도로 살고 있는가' 돌아봤지만. 이건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면이 있었다. 칼날이 스치는데 베이지 않고 배길 수 있는 가 말이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그저 나를 싸매고 위로하는 수밖에.




그즈음이었을 거다. 군부대에서 조리병 한 명당 터무니없이 많은 노동량을 할당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병사 혼자 500명분인가 밥을 짓다 허리가 아작 났다나. 그 유명한 '제대로 익지 않은 쌀과 고춧가루 한 두 점 붙은 깍두기 급식'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부실 급식에 대해 조리병을 탓할 일이 아니었던 거다.


내가 경험한 조리실 문제는 세 발의 피라는 걸. 젊은 남자들이 자기 삶을 희생해서 봉사하러 온 거면 당연히 잘 대우해야 하건만. 나라에서 마땅히 보호해야 할 군인,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노동 환경이 저 모양인데 민간은 오죽할까.


많은 게 변화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온갖 불합리와 부당한 조건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현실이 이렇다는 걸 알고 나니 내가 당한 기막힌 일도 상대적으로 미미해지고. 충격과 고통이 상당히 희석되었다.


크게 상처받는다는 건 '나 혼자'라는 인식이 가장 큰 이유인지 모른다. 남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고통, 나만 당한 일이기에 그토록 수치스럽고 분하고 슬픈 거 아닌가. 좀 간사하지만, 세상에 나보다 더한 일을 겪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면 적잖이 위안되더라.



집과 헬스장을 오가며 '손톱에 무슨 색 바를까''머리는 핑크 브라운 어때?' 이런 고민이나 하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 사람이 너무 편해지니까 슬슬 '오전에 어디 가서 알바라도 할까'싶은 마음이 들었다. 긴장은 종종 활력으로 대체되니까. 물론 관리비라도 벌어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도 있었다.


때마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에 면접 봤던 작은 어린이집 원장이다. '사람 구할 때까지 알바삼아 해볼래요?'


그녀는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풀스토리를 알고 있다. 급여를 받아내고 후속 조치를 취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가끔 차 마시고 밥 먹는 편안한 관계인데 '업주와 종업원'사이로 바뀌면. 친구를 잃는 거 아닌가.


망설였지만 내 필요와 맞아떨어진다. '사람 구할 때까지'라는 한도와 '알바삼아'라는 가벼움에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이튿날 답장했다. '할게요.'


'하루 두 시간 알바 삼아'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리 일을 다시 한다는 건 이미 '손톱 가꾸는 맛'을 아는 내게 인생의 시계를 돌린다던가 퇴보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었다.


구태의연한 생각인지 몰라도 여자로서 다시 손에 물 묻히기 싫었다. 조리모에 애써 볶은 머리 모양 망가지는 것도 싫었다. 화장 안돼, 귀걸이 안돼, 네일 안돼. 조리 전문가 한답시고 너무 내 욕구를 죽여왔는데 그걸 또 한다고?!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딱히 할만한 일이 없었다. 아는 거 는 게 가장 쉬웠다. 새로운 일을 익히고 도전할 시간적 금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달라진 관계에서 원장을 보는 일이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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