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사가 아파서 4
한동안 설거지를 하지 못했다
경력증명서에는 짧고도 강렬했던 며칠이 딱 근무일수만큼 적혀서 빼박
'일하다 힘들어서 도망친 아이'쯤된 거 같았다. 안그래도 너덜너덜 경력인데 영 마뜩잖은 흠집이 났다.
어느 정도 예상했고, 각오한 일이지만 충격이 적지 않았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잘린다는 것은.
난 다시는 이 업계에 얼씬도 하지 못할 만큼 경력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이게 어디 조리 분야에만 국한할까. 4대 보험 되는 직장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서류에서 탈락일 테니.
조리업계의 젊은 피- 새로운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내 꿈은
어느 망할 주방에서 장렬하게 산화했다.
조리실은 CCTV가 없어 증거가 없고, 동료가 없기에 증언도 없는 인권의 사각지대.
ooo 씨가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조사할 수 없다는 근로감독관에게,
그동안 작성한 메모와 서류, 문자 기록, 통화 내용 등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모두 제출했다. 이게 일방적인 주장인지 분명한 사실인지 직접 가서 확인해보라고.
난 이 직장 잃어도 젊어서 다른 일 할 수 있지만, 여기 이대로 두면- 나이 많고 힘없는 어머니들 계속 가서 당할 거라고.
원장이 휴게 시간 근로분을 입금했다.
감독관은 어린이집 현장 지도 감독을 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임금을 지급했기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지만, 추후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사건으로서 절차를 진행할 거라고. 주의 주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후회가 없다.
이제 뭐 하지?
손톱도 기르고 매니큐어도 발랐다.
심리 상담도 받고 운동도 했다. 그리고 한동안, 집에서 설거지를 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조리직은 국공립이라도 처우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십 년을 일해도 급여 수준이 턱없이 낮았다. 보육 교사와 비교하니 더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몸이 부서져라 일한 대가가 이 정도라니. 파스 값과 병원비에 절절매는 미래가 그려졌다.
사기가 떨어져서 도무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일하기 어렵겠구나.
그냥 돈 문제가 아니다. 십 년 일해도 박봉이라면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래 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가능성과 기회를 제쳐두고 주방으로 들어가기에,
나는 너무 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