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사가 아파서 3
선배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온몸이 쑤샥거리는데 내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이 밀려 들어왔다.
나 스스로 ‘No'라고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중간에서 끊거나 자르지 않았다. 배려? 이런 건 정상적인 사회에서나 가능한 덕목이다.
이곳에서 조리사는 사람이 아니다.
어깨, 등, 허리, 팔다리, 온몸에 일을 짊어지고 매단 채 하루 종일 덜컹덜컹 공장 돌리듯 내 육신을 혹사했다.
없는 힘을 내려니까 악에 받혔다. 체력이 소진되니 분이 올라와 눈이 살쾡이처럼 붉어졌다.
이래서 ‘몸 쓰는 일’하는 사람들이 거칠구나 싶었다.
조리도구 소독하다가 문득
‘선배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그래.’ 생각이 스쳤다.
혼자였다. 주방에는 직속 선배가 있는 것도, 동료가 있는 것도, 후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먼저 일했던 이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찍소리 없이 일만 했기에, 조리사의 잔혹사가 이어져왔겠지.
관습이라고? 악습이라면 없애거나 고치는 게 정상이다.
근로자 쉬라고 준 휴게시간이 업주를 위한 무급노동시간으로 악용되고 있었다.
휴게시간에 쉬지 못하고 오히려 더 일해야 한다. 일했는데 돈도 못 받는다.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6시간 근무하면 ‘30분’ 휴식인데 여기는 '한 시간' 휴식이다. 조리사 예뻐서 푹 쉬라고 두 배나 길게 휴식 시간을 잡았을까.
당장 나도 백 몇십만 원 아쉬워서, 어렵게 새로 시작한 경력에 흠집 날까 무서워서
조용히 지내려고 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배라고 하지만 사실 어머니 벌 되는 할머니들이다.
대개 엄마들은 결혼 출산 육아와 함께 경력이 단절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체념하고 살다 ‘자식 공부시키려고’ 용기를 내어 마트 계산원이 되고, 식당 종업원이 된다.
할머니가 되어서는 ‘자녀에게 부담주기 싫어’ 주방으로 온다. 주방은 열려있거든. 특별한 기술 없고 평생 밥을 지어온 중년 이상 여성들에게.
업주가 착취하기 좋은 가장 만만한 상대가 조리사 어머니들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수많은 어머니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꼼짝없이 당하겠구나 싶었다.
내게도 생계가 걸린 일이지만,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조금이라도 악의 고리를 끊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개선해보고자 적극적으로 내 입장과 여건을 설명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원장은 완전 다른 세상 사람으로서 나를 내려다봤다. 나를 도구로만 여기니 대화가 될 리 없었다. ‘국자가 말을 하네’ 이런 눈빛이었으니.
그는 내가 말하는 걸 매우 불쾌해했다.
아무리 예의를 갖춰도, 조리사가 말하는 거 자체를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분개하는 듯했다.
아니, 조리사는 생각이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