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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Jun 02. 2023

셀프 계산이 난감한 이유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다ㅇㅅ

롯ㄷㅁㅌ

같은 대형 매장부터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무인 상점까

셀프 계산대를 두고 있다


'셀계'덕분에,

피로 절은 짜증 가득한 계산원을 상대하지 않는 점이 장점이라면,


잠재적 절도범 중 한 명으로서 혐의 짙은 넉넉한 장바구니를 뚫어질 듯 감시당하다

'계산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다가온 점원에게 지금껏 계산한 내역을 샅샅이 검사받거나, 1분마다 간헐적 간섭을 감내하는 일은 단점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거의 항상 셀계앞에 서면 기분이 언짢았다.



막스 달튼 전시회 5.29.


모처럼 방과 후 아이 손을 잡고 집에서 꽤 먼 단지 내 무인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렀다. 더운데 저가 아이스크림 하나 더 쟁이겠다고 미련을 떨었다.


드물게 그곳에 아이스크림을 채워 넣는 아주머니와 마주쳤는데, 하필 아이와 계산하다 계산이 엉켰다.


아이가 제품 바코드를 읽히면 나는 봉지에 담는 식이었다.

센서가 어떤 바코드에는 민감하게 반응해서 두 번씩 찍히고, 또 어떤 바코드에는 감감무소식이고.


셀프계산대 주변 점원이 왜 그 일대를 서성이는지 잘 알기에, 혹여라도 아이와 함께 불미스러운 의심이라도 살까 싶어 더 철저하게 "어, 이건 왜 두 번씩 찍히지."하나하나 체크하며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주렁주렁 의심을 달고 있는 푸른 잎사귀. 5.31

항상 그렇듯 은밀히 감시당하는 분위기에서

불쾌함을 누르며 찍고 있는데

벌써 세 번째, 바코드가 두 번 연달아 찍혔다.


당황한 아이 손길이 빨라지는 걸 보고

실수할 것 같아

 "괜찮아. 천천히 해." 할 때

아주머니가 오더니, "뒤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제가 할게요"하며 아이를 밀어내고 남은 아이스크림 대여섯 개를 마저 처리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대로 얼떨결에 결제하고 나왔다. 그런데 기분이 나빴다.



막스 달튼 전시회. 5.29

사실 뒷사람이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 우리 차례였으니 당연히 우리가 계산하는 게 맞고. 아주머니가 어떤 사유로든 대신 계산하고 싶으면,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바코드 찍는 게 쉽지 않죠? 괜찮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강호동 씨가 계산하고 있었어도 밀쳐내고 그렇게 계산했을지 궁금하다.


속도의 차이는 있고, 기계 다루는 솜씨나 바코드 찍는 기술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 그게 품위고 예의다.


그게 싫으면 무인상점에 오면 안 되고, 셀프계산대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알고 있었다. 뒤에 사람 있는 거.

그래서 두 번, 세 번 다시 계산하지 않으려고, 한 번 계산할 때 정확하게 하려고 더욱 긴장했다. 물론 빨랐으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가 무슨 전문 계산원도 아니고. 바코드 리더기를 길들일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셀프 계산'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졸지에 '뒷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파렴치한 모자'가 되어 버렸다.


그 아주머니는 어떻게 뒤에 기다리는 아저씨 입장만 중요하고, 우리 입장은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유난히 같은 작업을 해도 아이가 하면,

여자가 하면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이 입장을 존중해 주세요.' '조금 여유를 갖고 대해주세요.' 하면, 맘충 소리들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니 애를 안 낳지 싶다.




아이와 함께 쌍으로 민망한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 계산 실수를 감안하고서라도 빠르게 대충 찍고 나왔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엄마로서 그 무례한 처사로부터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미안하게 남는다.


다음번에 비슷한 일을 만나면 더 현명하게 아이를 위해 처신할 수 있기 바란다. 당연하다. 난 아이 편에 선다. 다들 자기 입장 대변하지 않는가. 아이는 엄마가 아니면 그 누구도 헤아려주지 않는다.


설령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 다른 어떤 아이라 하더라도, 난 아이 편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다들 그렇게 아이 편에 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막스 달튼 전시회. 5.29

아무쪼록 셀프계산대가 대중화된 만큼 그에 맞춘 에티켓도 기반을 잡았으면 한다.


속도와 기능 차이 감안하고 순서 기다리기, 돕고 싶으면 먼저 의향을 묻기, 모든 고객을 잠재적 범죄자로 상정하고 대하지 않기 등.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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