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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Dec 13. 2022

특공무술이 뭔가요

꼰대리즘과 육아 사이


아직 모르겠다.

육아한답시고 축구, 태권도, 수영까지 연결해봤지만

특공무술......?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으므로* 점점 사전적 의미의 육아에서 멀어지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특공무술과 육아는 쉽사리 매치가 되지 않는다.


체험 수업 기간까지는 무난했다. 

조금 어색하긴 해도 지도자 모두 경어를 써서 아이가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도록 돕는 인상이었다. 


또래 한 명 없이 검은띠, 빨간 띠 형들이 즐비한 환경이라 염려되었으나, 

유아체육보다는 실제 기술 수업 비율이 높은 특공무술에 더 마음이 기울었고, 아이도 폴짝폴짝 텀블링을 시연하며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형들에 매료되어 흔쾌히 등록했다. 


그리고 거의 한 달째 잠시 볼 일 보러 다녀오지도 못하고 창문에 딱 붙어 수업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요즘에는 요령이 생겨 안보는 척하면서 틈틈이 본다. 차라리 보지 않으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기술 자체 부상 위험은 둘째치고 웬 애들이 이리 거친 지. 낭군이 여태껏 아이 주변에서 가장 거친 남자였고, 아이와 놀 때 항상 경계하는 요주의 인물 1호였는데, 여기 와서 보니 한 살 위 '형'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이파이브하는데 뭔 '김치 싸대기'하듯 그 조그만 손바닥을 갈기는지 깜짝 놀랐다. 놀이 중 일어나는 일이고 지도자는 제지하지 않기에 저걸 가만 둬야 하나 내심 안절부절못했다. 못 본 건지, 보고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건지.    


그러나 이유 없이 발을 밟으며 쫓아다니는 보라띠 곱슬머리를 보고는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리하게도 지도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었다. '푸우 발 밟지 마.' 짧게 경고하고 돌아왔다. 

그날 저녁 푸우는 도장에서 이름 모르는 또 다른 형이 '반말하지 말고 존댓말 하라'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래 봐야 초등학교 저학년이.  




수업 면면에 지나간 군사 문화의 옛 향기가 배어있다. 특히 지도자의 언행에서 군에 기반을 둔 진한 꼰대의 기운, 일명 '꼰대리즘'이 풍긴다.  


대열이 흐트러지면 '엎드려뻗쳐'

한 사람이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정말 잘한 한 두 명에게만 '잘했어'


수업 내내 까칠하고 위압적이고 칭찬은 인색하다.  


잘 따라오지 않는 아이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동료 무리로부터 비난받도록 둔다. 

동작이 맘에 들지 않으면 금세 눈가가 서늘하다. 앞구르기 하다 실수하자 정색하며 손아래 선생에게 '저 쪽 가서 연습시켜'한다.


발 방향을 거꾸로 하자 '아이씨. 이쪽이라니까'하며 자세를 교정해준다.

 

콩만 한 아이들이 펄딱팔딱 뛰고 구르고 나는 퍼포먼스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상당한 긴장과 압박이 가해진다. '외울 필요 없다' 풀어주는 듯하다가도 '연습 안 하면서 벨트는 받고 싶지?' 긁는다.




이건 갈구는 거 아닌가...?

지도라기보다 회사에서 선배가 후배를, 혹은 군대에서 고참이 후임병을 '갈군다'하는 상황에 나올 법한 언행. 그들의 화법과 지도방식은 가학성을 띠고 있다.


푸우는 기합이 작다고 여러 번 지적받았는데, 

기합이 작다고 타박하는 것 역시 기질과 성향에 따라 폭력이 될 수 있다. 

언어폭력도, 정서 폭력도 똑같이 치명적인 폭력이다.  


낯선 환경에서 함구증을 보이는 푸우같은 아이에게는 마음을 먼저 편안하게 해 주고, 기합을 왜 하는지 의미를 설명해주는 편이 훨씬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수월한 방식이었을 거다.  




체육 교육은 학대 없이 불가능한가. 


아이의 행복이나 과정의 즐거움이 아닌, 결과물에 욕심을 내다보면 '학대'로 흐르기는 얼마나 쉬운가. 

아이는 자기 보호 능력이 부족하고 판단력이 미숙하기에, 권위 있는 성인 지도자의 지시에 피동적으로 따르기 쉽다. 설령 잘못된 것이라도 거부하기보다 흡수해버린다.


참관 3주째. 지도자가 대뜸 나더러 '푸우를 위해' 이제 그만 떠나 달라고 했다.

아이가 도장에 적응하는데 방해가 된다면서. 


떳떳하면 혹은 그만큼 떳떳하다는 걸 보이기 위해, 요즘 웬만한 체육 과목 학원에서는 학부모가 원하면 언제든 수업을 참관하도록 한다. 지금껏 경험한 축구. 태권도. 수영이 그랬다. 수영은 통유리에 커피 머신을 두고 참관 공간을 카페처럼 꾸민 것도 모자라 학부모에게 4 채널 CCTV 화면까지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보여주기 식일지라도.


이 도장은 아마도 후자의 이유로 등록 전 내게 참관 공간을 소개했다. 그러나 실상은 은근히 불편하게 하고, 꾸준히 눈치를 주더니, 이윽고 수업에 오지 말라고 했다.

 


  

수업을 지켜보는 학부모는 한 달 내내 나 혼자였다. 

대부분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 마치고 바로 차량으로 등원했고, 다시 차량으로 하원했다. 아마도 맞벌이 부모가 일하는 동안 학원 뺑뺑이(?) 도는 중일 게다.  


'날씨가 쌀쌀하니 긴팔 도복을 입혀달라'는 공지 뜬 지 이주일이 지나도록 반팔 차림의 아이들이 여직 눈에 띈다. 


그들의 부모는 도장에서 보내는 사진 혹은 띠와 메달을 보고 

'우리 애가 잘하고 있구나' 안심할 테지만, 

자기 아이가 아이다움을 용납받지 못하고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의 학대와 굴종에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무조건적인 수용을 강요받고 있지는 않은지.   


체육 교과목 지도자는 엄밀히 말해서 아동교육 전문가는 아니다. 그들이 존중을 모방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최소한 자격증을 보는 건데, '아동 교육 관련 온라인 수료증이라도 보유하는 성의'조차 없는 지도자가 수두룩하다. 아이를 다루면서 어떻게 아이에 대해 공부하지 않을 수 있는지. 사실 학부모가 요구하지 않으니까. 당연한 현실일 수 있다.   


방문하는 무술 학원마다 적당히 무식하고, 가혹하고, 강압적인 지도자가 '인성 교육' 한다고 자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아닌, 지도자에게 인성교육이 시급했다. 

그들은 아이를 '잡아' 두려움에 의해 움직이도록 하는 게 생활 지도이며 인성교육이라 믿는 것 같았다.

마치 사사건건 통제하고 지배하여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게 지도자의 능력인 것처럼. 


아이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르다.

적응하는 속도와 시간도 다르다. 그건 잘못이 아니다. 탓하고 혼낼 일이 아니라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게 어른의 품위이고, 우리가 아이에게 몸소 본을 보임으로써 알려줄 수 있는 인성 아닐까. 


꼰대 지도자들이 '인성교육'한다니까 하는 얘기다. 

     



푸우는 도장이 무섭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푸우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강인함과 자신감이 덕목일 이곳에서 동심의 두려움을 이해받기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 런지 모른다. 


애초에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보이는 독선과 아집에 수십 번 절망이 솟았지만 부모 된 책임감으로 성실히 겸손히 끝까지 설명하려 노력했다. 


이유는 한 가지. 아이가 좋아하니까.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배우고 싶다 의사 표현하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특성을 존중하지 않고, 아이의 두려움에 어떤 공감 능력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현장, 어쩌면 실제 세상보다 혹독한 훈련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손을 잡아끌고서라도 이 속에 들어온 것은 분명 푸우의 용기이고 의지였다.




억센 청바지와 작업복으로 가득한 세탁기에 얇은 속옷을 넣지 않는다. 

소재별로 각각 세탁하는 게 가장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얇은 소재는 세탁망에 넣어 보호하고 울코스로 돌려야 훼손 없이 모든 세탁물을 안전하게 세탁할 수 있다. 푸우는 엄마를 세탁망처럼 의지한 것뿐이다. 

아이가 안심할 만한 다른 적절한 보호 수단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시커먼 형들로 가득한 도장에 쑤셔 넣으려 한 것은 아이 입장에서 충분히 무서운 일이다. 물론 가장 끔찍한 공포의 대상은 그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다.  

 

무술의 세계에 씩씩하게 제 발로 들어오는 아이가 있는 가하면

형제나 친구와 같은 디딤돌을 딛고 진입하는 아이도 있다. 푸우는 외동이고 주위에 무술 하는 친구가 없으므로 그저 무술에 입문하는 디딤돌로서 엄마가 필요했던 거다. 유약하게 엄마 다리 끼고도는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그리고, 좀 유약하면 어때. 아이인데. 

   



처음으로 현장을 떠난 날. 울었다는데 안 봐도 뻔하다. 그 누구도 푸우를 달래주지 않았을 거다. 


"원래 운동하는 사람들이 거칠어."

"선생님은 어렸을 때 울면 혼났어.'남자는 우는 거 아냐.'라고."

"귀에 통역기를 달아야 해.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병이 나지?'라고 하시면 속으로 '움직이지 않아요.'라고 바꿔 들으면 돼."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이렇게라도 배워볼까?"  


아이에게 쿨한 척 얘기했지만 마음이 착잡하다.   


대개는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지'라고 하는데. 

강하게 키운다는 게 대체 뭔가. 


아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자굴에 넣듯 도장에 집어넣고 차 마시러 가는 거?

아이의 두려움을 헤아리지 않고, 무시하고, 아직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누군가에게 맡기고 사라지는 거? 실제 그는 '한이틀 울다가 사흘째부터 그쳤다'는 상급생의 예시를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정서학대다.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과 건강한 성장에 해를 입히는 행위를 부모가 앞장서서 행할 수는 없다. 

무서울 때 무섭다, 슬플 때 슬프다 말할 줄 아는 게 진정한 용기이고 강함이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푸우는 지극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지도자에게서 아이의 두려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해 유감이지만 

최대한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기다려주고, 아이가 무도계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는 판단이 들면 빠질까 한다. 거기까지가 내 몫이다.   


이게 과연 무술 육아 집필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른 무엇보다도 도장에서 부모 참관에 호의적이지 않아 소감과 감상을 얻기 어렵다는 게 일차적인 이유이다.  



* 법정 육아 휴직 대상 자녀의 연령은 만8세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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