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바깥에서
푸우 방학을 맞아 국내 최대 독서 앱에 필요한 책이 있는지 검색해 보기로 했다. 권장도서 위주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 앱을 다운로드하고 검색해 보았다.
몇 권 보이길래 얼른 예약했더니 '스마트도서관' 서비스였다. 키오스크를 통해 단 두 권만 대출 가능했다.
그런데 엄마인 나도 대출하려면 로그아웃하고 엄마 아이디로 다시 로그인해야 하는 건가? 아니다. 가족 회원증을 불러오면 된다. 그러나 먼저 도서관에서 가족을 등록해야 했다.
나: 앱에서 '가족등록'이 되지 않아서요.
사서: 그건 저희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그래요.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습니다.
나: 도서관에서 등록해야 한다고 해서요. 지금 그 작업하러 왔습니다.
사서: 가족관계 증빙서류 있으세요?
스마트폰에 담아 온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시했다.
나: 가족관계증명서는 따로 살아도 다 나오기 때문에 아무 소용없어요.
‘굳이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 있을까’ 의아해하며, 바로 같은 폴더 안에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보여드렸다.
이후부터 ‘가족등록’은 무난하게 처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잘못한 건 없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위압감이 들었다.
8년 전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정에 머물 때, 푸우와 함께 처음 소아과 갔던 날을 기억한다.
"아니, 주민번호가 없잖아요."
“네? 그럴 리가요…”
간호조무사가 돌려준 푸우 여권에는 주민번호 뒷자리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대사관 통해 출생신고 마쳤고, 여권 신청해서 받았다. 해외 거주하는 부모로서 아이 신분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했다고 믿었다.
여권이 신분증이니까. 한국에서 아이가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권에 적힌 번호는 임시 번호였다. 당연히 주민등록번호는 한국에 주소지를 정하고, 주민등록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주민번호가 없다’는 간호조무사의 카랑진 일성은, 나와 내 아이의 신상이 제도 바깥에 있다는 걸 생생히 일깨워주었다. 소아과 로비에서 난 처음으로 내 아이가 ‘등록되지 않은 아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보호자가 어떤 처지에 놓이는 지도.
난 보호자도 고객도 아니었다. 시종일관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대우를 통해 나와 내 아이의 신분이 졸지에 불법체류자, 난민,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우주 미아급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어쩌면 미혼모 혹은 아동학대 가정이라 의심했을 수도 있겠다. 물론 그게 사실이라 해도 부당대우를 정당화할 순 없다.
번호 없는, 등록되지 않은 자라는 신분은 나와 그들의 경계를 뚜렷이 나누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으나 그들과 내가 접하는 공기는 달랐다. 나와 푸우만 붕떠서 대기권 밖 시공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삼십 년 이상 살아온 내 나라에서.
내가 당연하게 마시던 공기는 싹 사라지고. 나와 내 아이가 신상에 대한 불미스러운 의심을 받는다는 당혹감, 정상인으로서 신분이 유예되고 인격적 대우를 포함한 평범한 생활이 보류되었다는 낭패감에 휩싸였다. 난 그 길로 주민센터 달려가서 잠시지만 영원 같던 부랑민 신세를 신속하게 청산했다.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 제도 밖에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냉혹함이었다.
도서관 사서는 과연 우리 모자를 어떤 처지로 상정했던 건지, 어떻게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자마자 그런 날 선 반응을 보였던 건지 모르겠다.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이 편법적으로 회원서비스 이용하는 걸 경계했던 걸까.
우리 사회는 유독 ‘정상’이라는 매우 편협하고 배타적인 기준을 붙잡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얼마든지 쉽게 가혹하고 매몰찰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마치 그래도 된다는 보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세상에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본인은 그런 일이 영원히 없을 것처럼.
적어도 난 잠시 시스템 바깥에 있었다. 누구라도 어떤 사정과 이유로든 ‘부랑민’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정상적, 일반적, 평범함의 범주를 벗어나는 이들을 배척하기보다 도와줄 수 있기 바라며. 오늘도 ‘일반인’이라는 특권을 감사하며 누리고자 한다.